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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Johann Wolfgang Goethe, 작가, Germany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독일의 시인·극작가·정치가·과학자

한국.net

[출생] 1749년 8월 28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사망] 1832년 3월 22일 (82세)
바이마르

[20분 Youtube 동영상]


[직업] 시인, 소설가, 극작가

[국적] 독일

[활동 기간] 낭만주의

[배우자]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

[학력사항]
1765 ~ 1768 라이프치히대학교 법학

[경력사항]
바이마르공국 재상
1775 ~ 1785 베츨러 고등법원



[요약]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 ~ 1832년 3월 22일)는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이다.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이다.

주저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
《파우스트》 등이 있다.



[요한 괴테 연보]
1749 8월 22일 프랑크푸르트 출생.

1765 라이프치히에 있는 대학에 입학.

1767 첫 희곡 《연인의 변덕 Die Laune Veliebten》을 집필.

1768 각혈을 동반한 폐결핵에 걸려 학업을 중단.

1771 프랑크푸르트에서 변호사로 개업.

[찬조 K-Pop]


1772 베출라 고등법원에서 견습 생활을 하다 이미 약혼자가 있던
샤로테 부프를 만나 사랑에 빠짐.

[찬조 K-Pop]


훗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의
소재가 됨.

[찬조 뮤지컬]


1773 《파우스트 Faust》 집필 시작.

1774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완성.



1776 바이마르에서 추밀원 고문관에 임명.

1780 《파우스트》의 원고를 아우구스트 공 앞에서 낭독.

궁정여관 루이제 폰 괴흐하우젠의 필사로 훗날
《초고 파우스트》의 출간이 가능해 짐.

1782 황제 요제프 2세로부터 귀족의 칭호를 받음.

1788 평민 출신의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와 동거.

1789 아들 아우구스트가 태어남.

1808 《파우스트》 1부 출간.

1810 《색채론 Kurzer Entwurf Der Naturwissenschaft》을 완성.

1823 에커만(J.P Eckermann)이 찾아와 비서가 됨.
훗날 《만년의 괴테와의 대화
Gesprache mit Goethe in den letzten
Jahren seines Lebens》집필.

1829 《빌헬름 마이스터 Wilhelm Meister》집필.

1831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
《파우스트》(2부)를 완성.

1832 3월 22일 사망.

[교육 및 작가활동 시작]
왕실고문관인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네 엘리자베트 텍스토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북독일계 아버지로부터는 '체격과 근면한 생활 태도'를,
남독일계의 어머니로부터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짓는 흥미'를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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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천재교육을 받았으며, 7년 전쟁 중
그의 고향이 프랑스군에게 점령되었을 때
프랑스 극과 회화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레트헨과의 사랑(1763년-1764년)이 깨어진 후
16세 때 입학한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재학 중(1765년-1768년), 안나카타리나 쇤코프와 연애를 하였고,
이 체험을 통해 로코코풍의 시나 희곡을 발표하였는데
목가조의 희극 <애인의 변덕>, <공범자>가 그것이다.

분방한 생활로 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하여 요양 중(1768년-1770년),
수산네 폰 클레텐베르크(1723-1774)와의 교제를 통하여,

경건한 종교감정을 키웠으며,
또한 신비과학이나 연금술에 흥미를 기울였다.

회복 후,
177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법률박사 학위를 얻었다.

그러던 중에 헤르더와 상봉해, 문학의 본질에 눈뜨고 성서,
민요,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등에 친숙해졌다.

그의 영향으로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알게 되고
당시 지배적이었던 프랑스 고전주의 미학에의 반발이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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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센하임의 목사의 딸인 프리데리케 브리온을 사랑하여
민요풍의 청신소박한 서정시를 지었고,

대승원의 건물을 보고 고딕 건축의 진가를 터득하기도 하였다.

귀향후 변호사를 개업(1771년)하였으나,

관심은 오히려 문학에 쏠려 《괴츠 폰 베를린힝겐》(1773년)의
초고를 정리하고 다름슈타트의 요한 메르크(1741-1791)와
친교를 맺었다.

1772년 법률실습을 위해 베츨라어 고등법원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샤를로테 부프(1753-1828)를 알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슈투름 운트 드랑기의 대표작인
희곡 《괴츠 폰 베를린힝겐》 및 비극 《클라비고》,

[찬조 K-Pop]


비극 《슈텔라》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여
작가적 지위를 확립했다.



[초기 바이마르]
1775년 4월 릴리 쇠네만과 약혼했지만 얼마 후 파혼하고,
당시 18세였던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의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 공에게 초청되어 11월 바이마르에 도착했다.

바이마르 시절 전기의 약 10년간(1775년 - 1786년)에는
정무를 담당하여 추밀참사관, 추밀고문관, 내각수반으로서

치적을 쌓는 한편 광물학·식물학·골상학·해부학 등의
연구에도 정진했다.

그 밖에 카를 아우구스트 공의 모후 아나 아말리아,
시인 크리스토프 빌란트, 고전적 교양미가 풍부한

폰 크네벨 소령, 궁정가수 코로나 슈뢰터 등 궁정 안의 사람들과
밀접한 친교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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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이런 정무나 사회 및 자연연구를 통하여
자연과 인생을 지배하는 법칙을 터득하고 자기 억제를 배우며

슈투름 운트 드랑적인 격정을 극복하여 점차 평정과
원숙의 도를 더해 갔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에 의한 감화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찬조 K-Pop]


그녀는 우아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일곱 아이의 어머니였으나,
괴테의 이상적인 여인상이었다.

부인에 대한 애정과 동경, 절도와 체념, 이러한 것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시인에게 내면적인 평정을 갖게 하였다.

[찬조 K-Pop]


이런 내면적 변화에 응하여 저술된 것이 비극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산문판 1779년),
《토르콰토 타소》(작성: 1780. 3. 30 ~ 1789. 7. 31)와
서정시 <인간성의 한계> <신성(神性)> 등의 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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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그러나 다른 한편 초기 바이마르의 이 10년간은
궁정생활의 중압으로 마음의 안정을 빼앗겨 정돈된
창작활동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으므로 1년반에 걸쳐서

이탈리아로(1786년-1788년) 여행을 떠났다.

이에 관해서는 후일 《이탈리아 기행》(1816)과
《제2차 로마 체재》(1829)에 자상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괴테는 남국의 밝은 자연과 고미술에 접함으로써
고귀한 내용을 완성된 형식으로 표현하는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운문판 1786년)와
《토르콰토 타소 》(최초출판: 1790년 2월)는 그의 대표작이며,

《에그몬트》(1787)는 슈투름 운트 드랑에서 고전주의로 옮겨가는
과도기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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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괴테는 1788년 6월 무렵에 독일로 귀국하여,
그해 7월에는 크리스티아네 폰 불피우스와 동거하여
1789년 12월 25일 장남 아우구스트를 낳았다.

그런데 1789년 7월 14일에 발발된 프랑스 혁명으로

괴테는 1792년에는 아우구스트 공을 따라 제1차 대프랑스 전쟁에
종군하여 발미 전투(1792년 9월)와
마인츠 포위전(1793년 4월-1793년 7월)에 참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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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직후 독일 문학사상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괴테와 실러의 상봉이었다.

1794년 7월말, 예나 자연과학 회의의 귀로에 종합적,
직관적인 괴테와 이념적, 분석적인 실러는,

괴테의 식물변형론을 통해 상호 이해하여,
1805년의 실러 별세 때까지 친교를 계속했다.

양자간에 교환된 서한은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가장 귀중한
자료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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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러와 사귀는 동안에 저술된 주요작품에는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95/1796)와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1797)가 있다.

실러의 사후, 만년에 접어든 괴테는 《시와 진실》등
일련의 자서전을 저술하기 시작하는 한편,
이미 착수했던 창작의 완성에 힘썼다.

《친화력(親和力)》,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와
《파우스트》를 완성했고, 또한 《서동시집》(1819),
《마리엔바트의 애가》(1823)를 저술했다.

그의 만년에 관해서는 요한 페터 에커만(1792-1854)의
《괴테와의 대화》에 상술돼 있다.

[말년]
괴테는 83세까지 장수했지만
아들과 아내 모두를 먼저 여의었기에 이를 늘 서글퍼했다.



10살 밑이던 후배 실러와도 친구처럼 지냈는데
1805년 실러도 만 45살 한창 나이에 병으로 죽고 말았다.

실러는 귀족이 된지 3년이 채 안되어 이제 좀 잘살게되면서
글도 본격적으로 더 쓰고자 하는 한창때에 갑자기 가버렸다.

겨울을 싫어했던 괴테는 봄이 채 오기 전에
바깥 나들이를 떠난다.

그러나 날은 아직 추웠고 노쇠할 데로 노쇠한 괴테의 몸은
차가운 바람을 견디지 못했다.

괴테는 독한 감기에 걸렸다.

담당 의사는 괴테의 사인을 폐렴과 심부전이라고 기록했다.

괴테의 임종 당시 그의 곁을 지킨 식구는

과부가 된 며느리 옷틸리에 폰 괴테(1796~1872),
손자인 베르터 폰 괴테(1818~1885)와 프라이헤르 폰 괴테(1820~1883),
손녀인 알마 폰 괴테(1827~1844) 이렇게 4명이었다.

괴테는 며느리에게 잘 대해주었으며
당연히 재산을 그녀에게 모두 물려주었다.

살아있을 때에 이미 부와 명예, 모든 것을 누렸기에
괴테의 80살 생일 때는 고향 마을에서 그날을
경축일로 기리며 잔치를 열었을 정도였다.

괴테는 세상을 떠나기 전 그를 만나러 온
여러 유명인사들에게 인사를 하고,

며느리의 손을 잡으면서 이제 마음껏 살라는 말을 한 다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좀 더 빛을… 조금 더 빛을…"

[찬조 K-Pop]


[죽음]
1832년 3월 22일,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심부전으로 82세에 사망했다.

[추모 K-Pop]


그의 의사 Carl Vogel에 따르면 그의 마지막 말은
Mehr Licht 였다 ! (더 많은 빛!)

[추모 K-Pop]


그러나 괴테가 죽은 순간 보겔이 방에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는 바이마르 역사 묘지 의 Ducal Vault에 묻혀 있다.

에커만은 그의 유명한 작품인 괴테와의 대화를
다음 구절로 마무리했다.

[괴테가 죽은 다음 날 아침,
나는 그의 지상의 옷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깊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괴테의 충실한 종 프리드리히는 나에게
괴테가 누워 있던 방을 열어 주었다.

괴테는 등을 대고 누워서 잠든 듯 쉬었다.

괴테의 숭고하고 고상한 얼굴에는 심오한 평화와 안전이
깃들어 있었다.

그 거대한 눈썹은 아직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의 머리카락 한 가닥을 원했다.

그러나 존경심 때문에 그것을 끊을 수는 없었다.

시체는 알몸으로 누워 있었고, 하얀 시트에만 싸여 있었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큰 얼음 조각을 그 근처에 배치했다.

Frederick은 시트를 옆으로 치웠고
나는 팔다리의 신성한 장엄함에 놀랐다.

가슴은 강력하고 넓으며 아치형이었다.

팔과 허벅지는 우아하고 가장 완벽한 모양이었다.

온 몸 어디에도 뚱뚱하거나 야위고 부패한 흔적은 없었다.

완전한 사람이 내 앞에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이 나에게 안겨준 황홀함은
불멸의 영혼이 그런 거처를 떠났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들었다.

나는 괴테의 가슴에 손을 얹었고 깊은 침묵이 흘렀다.

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기 위해 몸을 돌렸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초연은
1850년 바이마르에서 이루어졌다.



지휘자는 프란츠 리스트 였으며,
그는 1749년 8월 28일에 태어난 괴테를 기리기 위해
8월 28일을 선택했다.

[찬조 K-Pop]


[업적]
궁정극장의 감독으로서 경영·연출·배우 교육 등
전반에 걸쳐 활약했다.

1806년에 《파우스트》제1부를 완성했고 별세 1년전인 1831년에는
제2부를 완성했으며, 연극을 세계적 수준에 올려놓았다.



자연과학 분야에 까지 방대한 업적을 남겼으며,
연극면에서는 셰익스피어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고전작가들을 평가했고,
또한 그리스 고전극의 도입을 시도하였다.

[종교]
괴테는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리스본 지진(1755)과
7년 전쟁(1756-1763)을 계기로 신앙에 회의를 가졌다.

1782년 괴테는 "난 반 기독교인이나 말뿐인
기독교인(un-christian)이 아니라
비 기독교인(non-christian)이다."라고 말했다.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이탈리아 기행》

《파우스트》

《서동시집》

시 [프로메테우스]

['거짓' 신들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함
- 괴테의 시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여 그대의 하늘을
잿빛 구름의 안개로 덮어라!
엉겅퀴 머리를 자르는
어린이와 같이
떡갈나무나 산꼭대기에 덤벼 보아라!
그러나 나의 이 대지는
내게만 맡겨야 한다.
그대의 힘을 빌지 않고 세운 내 오두막
그리고 내 아궁이와
그 불을
그대는 시샘하고 있는 것이다.

신들이여 태양 아래서 너희들보다
가련한 존재는 없으리라
너희는 째째하게도
희생물로 바친 제물이나
기도의 한숨으로
너희 위엄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어린이나 거지같은 인간이
어리석은 소원을 아뢰지 않으면
너희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어린 시절에
아무런 사리 판단을 못하였기에
태양을 향해 의혹의 눈을 던졌나니
거기에 나의 슬픔을 들어 줄
귀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나와 마찬가지로 괴로움을 위로하는
그런 마음이 있으려니 생각해서였다.

누가 거인족의 폭력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었는가.
누가 죽음과 노예 상태로부터
나를 구해주었는가
그 일을 한 것은 성스럽게 불타는
나의 마음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젊고 착하기만 했던 나는
속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천상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신들에게 감사했었다.

그대를 숭상하라 하는가, 왜 그런가
그대는 한 번이라도 무거운 짐을 진 인간의
괴로움을 가볍게 해 주었던 일이 있었던가
그대는 한 번이라도 고뇌로 몸부림치는 인간의
눈물을 씻어 준 일이 있었던가.
나를 한 인간으로 단련시켜 준 것은
전능한 '때'와
영원한 '운명'이 아니었던가
그것이 바로 나의 주요 그대의 지배자이다.

아름다운 꿈의 이상이
완전히 열매 맺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인생을 증오하고
사막으로 도망치기라도 해야 한다고
그대는 망상이라도 하고 있는가.
나는 여기에 앉아서
내 모습 그대로의 인간을 만든다.
나를 닮은 종족을 만드는 것이다.
괴로워하고 울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리고 그대 따위는 숭상하지 않는
나와 같은 인간을 만든다.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 족의 영웅.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주어 인간에게는 문화를 준 은인이 되었으나,
그로 인하여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고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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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명언================

♣ 반드시 진리가 구체화할 필요는 없다.
진리가 우리의 정신 속에 깃들이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리하여 종소리처럼 힘세고 자비롭게
공기 속에 울리기만 하면 충분하다.

♣ 백만 명의 독자도 기대하기 어려운
작가는 단 한줄의 글도 쓰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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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의 힘은 위대하다.
그러나 펜의 힘은 더욱 위대하다.

♣ 보람있는 일에 복종하는 것이 인간의 지혜이다.
그 일을 방해하는 것들을 정복해 나가는 것이 곧 생활이다.
정복이 없이는 생활의 내용을 얻지 못한다.
우리의 하루는 정복의 노력으로 빛나야 한다.

♣ 부정한 것이 부정한 방법으로 없어지는 것보다는
부정이 행해져 있는 편이 오히려 낫다.

♣ 불에 피운 향이 인간의 생명을 상쾌하게 하는 것처럼
기도는 인간의 마음에 희망을 북돋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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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의(不義)를 발견하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불의는 남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이 발견하고자 애써야 할 것은 이러한 진리이다.

♣ 비겁자는 안전한 때에만 위압적으로 나선다.

♣ 사람들은 누구나 친구의 품안에서 휴식을 구하고 있다.
그 곳에서라면 우리들은 가슴을 열고
마음껏 슬픔을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일을 실행할 만한 힘을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법이다.
자신에게 그같은 힘이 있을까 주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 사람의 성격이 가장 잘 나타날 때는
누군가와 마주 대하여 말하고 듣고 웃을 때다.



♣ 사람의 욕망은 내버려두면 한이 없다.
끝없는 욕망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자기 욕망에 한계를 갖는다는 것은 목표를 분명히 가진 것이 된다.

♣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이다.

♣ 사랑이 없는 삶,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생활,
그것은 하찮은 환등기가 비춰주는 '쇼' 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슬라이드를 잇따라 바꾸어 비춰보지만
어느 것을 본들 모두가 시시해서 다시 되돌려 놓고는
다음 슬라이드로 다급히 바꾸고는 한다.

♣ 사랑이여, 너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꽃이며 휴식없는 행복이다.

♣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또한 기쁨이 있다.

♣ 30분이란 티끌과 같은 시간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 동안이라도 티끌과 같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 상세히 검토해보면 모든 철학은 지리멸렬한 언어로
번역된 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 생명은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발명이며,
죽음은 더 많은 생명을 얻기 위한 기교이다.

♣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쉬지도 않고.

♣ 선(善)을 행하는 데는 나중이라는 말이 필요 없다.

♣ 선의의 말이 좋은 장소를 점령한다면
겸허한 말은 보다 좋은 곳을 점령한다.

♣ 성격은 인격에 의한 것이며 재능에 의한 것은 아니다.

♣ 세상에는 어느 하나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과오도 범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 있다.

♣ 세상에서 해방되는 데에 예술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또한 세상과 확실한 관계를 갖는 데에도
예술을 통하는 것이 가장 좋다.

♣ 순간은 참으로 아름답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공부하고, 일하고, 노력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영원히 아름답다.
순간이 여기 있으리라.
내가 그와 같이 지낸 과거의 날들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리라.
이러한 순간에야말로 나는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 시간이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지 말라!
게을리 걸어도 결국 목적지에 도달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하루하루 전력을 다하지 않고는 그날의 보람은 없을 것이며,
동시에 최후의 목표에 능히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 시인은 진실을 사랑한다.
시인은 반드시 그것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 신만이 완벽할 뿐이다.
인간은 완벽을 소망할 뿐이다.

♣ 신문을 읽지 않으면
나는 마음이 태평하고 자못 기분이 좋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남의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자기 눈앞의 의무는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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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은 모든 지식의 시작이 아니라 끝이다.

♣ 신앙의 가장 사랑스러운 자식은 기적이다.

♣ 나누어 통치하라는 말은 훌륭한 표어다.
합병하여 지도하라는 말은 더 나은 표어이다.

♣ 나는 시를 만든 것이 아니다.
시가 나를 만든 것이다.

♣ 나는 인간이었다. 그것은 싸우는 자란 것을 의미한다.

♣ 나는 죄와 더불어 실책을 미워한다.
특히 정치적 실책을 한층 더 미워한다.
그것은 수백만의 인민을 불행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기 때문이다.

♣ 나에게 혼자 파라다이스에서 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을 것이다.

♣ 남에게 기만당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스스로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 남의 좋은 점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남을 칭찬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남을 자기와 동등한 인격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 남자가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지성과는 전혀 별문제다.
여자의 아름다움, 젊음, 애교, 성격, 단점, 변덕, ...
그 밖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가지를 좋아하지만
결코 여성의 지성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이미 사랑이 깊다면,
지성은 우리들을 연결하는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불타오르게 하고 정열을 불러일으키는 힘은
지성에게는 없는 것이다.

♣ 남자는 세계가 자신이지만, 여자는 자신이 세계다.

♣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은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습득할 수 있지만, 나의 마음만은 오직 내 자신의 것이다.

♣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남의 장점을 존중해 주고 남의 기쁨을 자기의 것인 양
기뻐하는 자이다.

♣ 누구나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경험한 선배의 지혜를 빌지 않고
실패하며 눈이 떠질 때까지 헤매곤 한다.
이 무슨 어리석은 짓인가.

뒤에 가는 사람은 먼저 간 사람의 경험을 이용하여,
같은 실패와 시간낭비를 되풀이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선배들의 경험을 활용하자.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다.



♣ 눈물과 더불어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자는
인생의 참다운 맛을 모른다.

♣ 당신은 항상 영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항상 사람은 될 수 있다.

♣ 당신이 만약 참으로 열심히라면 "나중에"라고 말하지 말고,
지금 당장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을 시작해야 한다.

♣ 대중의 시중을 드는 자는 가련한 동물이다.

♣ 독일인들은 착한 심성을 가진 민족,
다시 말해서 가족적 삶에 대한 성실성과 의욕을 지닌 민족이다.

♣ 두 가지 평화로운 폭력이 있다.
즉, 법률과 예의범절이다.

♣ 마음에는 예의란 것이 있다.
그것은 애정과 같은 것이어서 그같이 순수한 예의는
밖으로 흘러나와 외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 마지막에 할 일을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 만들어질 것인가는 처음부터 결정된다.

♣ 모든 것은 젊었을 때 구해야 한다.
젊음은 그 자체가 하나의 빛이다.
빛이 흐려지기 전에 열심히 구해야 한다.
젊은 시절에 열심히 찾고 구한 사람은 늙어서 풍성하다.

♣ 모든 국민은 각자 자기의 천직에 전력을 다하라.
이것이 조국에 봉사하는 길이다.

♣ 몸가짐은 각자가 자기의 모습을 비치는 거울이다.

♣ 무식한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허위의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두려워하라.

♣ 문학은 단편의 지편(紙片)이다.
세상에 일어난 일과 세상에 말해진 말 가운데
극히 작은 부분이 쓰여져 있다.
그 쓰여진 것 중에서 극히 작은 부분이 남아 있을 뿐이다.

♣ 미(美)는 감춰진 자연법칙의 표현이다.
자연의 법칙이 미에 의해서 표현되지 않았다면
영원히 감춰져 있는 그대로일 것이다.

♣ 미(美)는 예술의 궁극의 원리이며 최고의 목적이다.

♣ 가설은 건축공사가 진척되고 있는 동안
건물주변에 여러 가지로 구축되어 건물이 완성되면
제거되는 발판에 불과하다.

♣ 가장 유능한 사람은 가장 배우기에 힘쓰는 사람이다.



♣ 가장이 확실하게 지배하는 가정에는
다른 데서 찾아 볼 수 없는 평화가 깃든다.

♣ 감정과 의지에서 나오지 않는 예술은
참된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 격언에 가로되, '머슴에겐 영웅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영웅은 영웅만이 알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머슴도 자기와 동등한 자라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결혼 생활은 모든 문화의 시작이며 정상(頂上)이다.
그것은 난폭한 자를 온화하게 하고,
교양이 높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온정을 증명하는 최상의 기회이다.

♣ 결혼 생활은 참다운 뜻에서 연애의 시작이다.

♣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참된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 고상한 남성은 여성의 충고에 따라 더욱 고상해진다.

♣ 고통이 남기고 간 뒤를 보라!
고난이 지나면 반드시 기쁨이 스며든다.

♣ 과거를 잊는 자는 결국 과거 속에 살게 된다.

♣ 과오는 인간에게만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과오는 자기 자신이나 타인,
사물에의 올바른 관계를 찾아내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과오나 허물은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서 평소에도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나 보이지 않다가,
비로소 그것을 고치면 모두가 우러러보는 하나의 신비한 현상이 된다.

♣ 꽃을 주는 것은 자연이고 그 꽃을 엮어
화환을 만드는 것은 예술이다.

♣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반드시 실현할 때가 온다.

♣ 괴로움을 남기고 간 것을 맛보라!
고난도 지나고 나면 감미롭다.



♣ 그대의 마음속에 식지 않는 열과 성의를 가져라.
당신은 드디어 일생의 빛을 얻을 것이다.

♣ 그래, 어떻든 간에 인생은 좋은 것이다.

♣ 기쁘게 일하고, 해 놓은 일을 기뻐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 커다란 위험이 가로놓인 것은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상반하고 있을 경우이다.

♣ 타인을 자기 자신처럼 존경할 수 있고,
자기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타인에게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참된 사랑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그 이상 가는 사람은 없다.

♣ 평화시의 애국심은 다만 사람들이 앞뜰을 쓸고
가업에 충실하면 세상일을 학습하여 나라의 번영에 기여하는 데 있다.

♣ 하늘은 어디를 가나 푸르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세계일주 여행을 할 필요는 없다.

♣ 하늘은 필요할 때마다 은혜를 베푼다.
신속히 이것을 포착하는 사람은 운명을 개척한다.

♣ 한 가닥 머리카락조차도 그 그림자를 던진다.

♣ 항상 사람들은 '옛 사람을 연구하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현실 세계에 주의하고 그것을 표현하도록 힘써라!'
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왜냐하면 옛 사람도 그들의 생존 중에 그렇게 한 것이므로.

♣ 행동하는 자는 항상 양심이 없다.
관찰하는 자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양심은 없다.

♣ 행복한 인간이란,
자기 인생의 끝을 처음에 이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 행실은 각자가 자기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 현재에 열중하라. 오직 현재 속에서만 인간은 영원을 알 수 있다.

♣ 확실한 일을 실행할 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 허영은 경박한 미인에게 잘 어울린다.

♣ 현자에게 잘못이 없다면
어리석은 자는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희망만 있으면 행복의 싹은 그곳에서 움튼다.

♣ 희망은 제2의 혼이다.
아무리 불행하다 하더라도 혼이 있으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혼이 있으면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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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요약]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출생이다.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자로서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이고,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아버지는 법률가이며 제실고문관(帝室顧問官)으로서
엄격한 성격이었으며, 시장(市長)의 딸인 어머니는 명랑하고
상냥하여 아들의 좋은 이해자였다.

7년전쟁(1756∼1763) 때에는 프랑스에 점령되어 평화롭고
부유했던 괴테의 집도 프랑스 민정장관(民政長官)의
숙사(宿舍)가 되고,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계획 역시 중단되었으나,
괴테는 자유롭게 프랑스의 문화에 접할 기회를 얻었으며,
15세 때 그레트헨과의 첫사랑을 경험하였다.

1765년에 라이프치히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하면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보내다가,
1768년 각혈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생활을 하였다.

그 무렵에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鍊金術)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머니의 친구인 크레텐베르크의 감화로 경건파(敬虔派)의
신앙에 접근하였다.

그녀는 후일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의 모델이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머무르면서
J.G.헤르더를 알게 되어 종래의 로코코 취미의 문학관은
철저히 분쇄당하고,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 감정의 순수성에 시의 본질을 구하려는 노력이
《들장미》의 가작(佳作)을 낳게 하였다.

이 무렵 근처 마을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과
목가적(牧歌的)인 사랑을 하였고 약혼까지 하였으나,
결국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하였다.

[찬조 트로트]


그 후 회한(悔恨)과 마음의 부담 속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 겪은 내적 체험이 훗날 그의 시의 주제가 되었다.

1771년 변호사가 되어 고향에서 변호사업을 개업하였고,
1772년에는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 때 샬로테 부프와의 비련(悲戀)을 겪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1774)을
썼는데, 이 작품으로 일약 문단에서 이름을 떨쳤고,

[찬조 K-Pop]


독일적 개성해방(個性解放)의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
(Sturm und Drang:질풍노도)’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1775년에 바이마르 공국의 젊은 대공(大公)
카를 아우구스트의 초청을 받고 바이마르로 가서

여러 공직에 앉게 되고 재상이 되어,
10년 남짓 국정(國政)에 참여하였다.

이 동안 그는 정치적으로 치적(治積)을 쌓는 한편,
지질학 ·광물학을 비롯하여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1784년, 동물에만 있고 인간에게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던
간악골(間顎骨)을 발견하여(죽기 1년 전에 학회에서 인정되었음)
비교해부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무렵 괴테는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 12년에 걸친 연애를 하여,
부인으로부터 인간적 및 예술적 완성에 큰 영향을 받았으나,

1786년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남으로써
부인과의 애정관계는 끝을 맺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수업하는 화가로서의 생활을 보내면서
l,000매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렸으며,

희곡 《타우리스섬의 이피게니 Iphigenie auf Tauris》(1787)
《에흐몬트 Egmont》(1787) 등을 써서 슈타인 부인에게 바쳤다.

이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괴테의 생애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고전주의에의 지향(志向)을 결정한 시기로서 중요하다.

[찬조 K-Pop]


1788년에 바이마르에 돌아온 괴테는 조화업(造花業)을 하는
가난한 집안의 딸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동거하면서
(정식 결혼은 l806년),

[찬조 K-Pop]


비로소 가정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이 무렵에 그는 시인과 궁정인의 갈등을 그린 희곡
《타소 Torquato Tasso》(1789)와, 관능의 기쁨을 노래한
《로마 애가(哀歌)》(1790)를 발표하였다.

과학논문 《식물변태론(植物變態論)》도 이 시기의 산물이다.

1791년에는 궁정극장의 감독이 되었으며,
그 때부터 고전주의 연극활동이 시작되었다.

한편, 1789년 이후의 프랑스 혁명의 격동은
바이마르 공국도 휩쓸게 되어,
1792년에 괴테는 아우구스트 대공을 따라 프랑스로 종군하였다.

1794년부터 그는 J.C.F.von 실러가 기획한 잡지
《호렌 Horen》에 협력하여 굳은 우정을 맺었다.

이념의 사람 실러와 실재(實在:자연)의 사람 괴테와의 이 우정은
l805년에 실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10년 남짓한 시기에 괴테는 실러의 깊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하였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 Faust》의 재착수,
《빌헬름 마이스터의 도제(徒弟) 시절 Wilhelm Meisters Lehrjahre》
(1796)의 완성,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 Hermann und Dorothea》(1797)의 발표 등,
‘현재에서의 완성을 지향하는’ 독일 고전주의는 여기서 확립되었다.

1797년에는 실러의 《시신연감(詩神年鑑)》에
공동작의 단시(短詩) 《쿠세니엔(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414편을
발표하여 문단을 풍자하였다.

또한 문단의 물의(物議)를 외면한 채 이야기체로 쓴 시(詩)를
경작(競作)하여, 1797년은 ‘발라드의 해’라고 일컬어진다.

1805년 실러의 죽음과 더불어 괴테는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만년의 괴테의 문학활동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이었다.

괴테는 그 무렵에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치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나아가서
신대륙인 미국의 문학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 국민문학의 교류를 꾀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세계문학적 시야를 넓혔던 것이다.

만년의 문학작품으로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Wilhelm Meisters Wanderjahre》
(1829)와 《파우스트》의 완성이 최고봉을 이룬다.



전자(前者)는 당시의 시대와 사회를 묘사한 걸작이라 할 수 있으며,
후자(後者)는 한 인간의 생애가 전인류의 역사에 뒤지지 않는
깊이와 넓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엄한 드라마이다.

《파우스트》는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83세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된 생애의 대작이며,
세계문학 최대걸작의 하나이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가였던 괴테는
만년에도 세 차례의 연애를 체험하였다.



그 하나는 미나 헤르츨리프와의 사랑으로서,
이 소녀를 모델로 하여 소설 《친화력 Die Wahlverwandtschaften》
(1809)을 썼다.

또 하나는 아내 불피우스가 죽은 뒤에 알게 된
빌레머 부인과의 사랑으로,

그녀를 사모하여 읊은
《서동시집(西東詩集) Westostlicher Divan》이 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괴테는 마리엔바더로 피서여행을 갔다가
74세의 노령으로 19세의 처녀 우를리케 폰 레베초를 사랑하게 되었다.

[찬조 K-Pop]


이 사랑은 거절되었으나,
그 연모의 정이 시집 《마리엔바더의 비가》(1823)에 잘 나타나 있다.

[찬조 K-Pop]


그 밖에 만년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기행 Italienische Reise》(1829)과
자서전인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1833) 등이 있다.





또한 그의 광학(光學) 연구의 결정인 《색채론 Zur Farbenlehre》이
1810년에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뉴턴의 이론에 대한 잘못된 비판이 들어 있어
순학문적인 견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나,

탁월한 관찰과 견해가 많이 보이고 있다.

괴테는 문학작품이나 자연연구에 있어서,
신(神)과 세계를 하나로 보는 범신론적(汎神論的) 세계관을
전개하였으며,

그의 종교관은 범신론적 경향이 뚜렷하지만,
복음서의 윤리에는 깊은 존경을 표시하였다.

1832년 3월 22일, 8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추모 K-Pop]


그의 유해는 바이마르 대공가(大公家)의 묘지에
대공 및 실러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한국.net

[추모 트로트]


[추모 K-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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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GPT 답변: 오류(hallucination: 환각 등)가 많으니,
단순 재미로만 참조바람]
(from https://chat.openai.com/chat)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제일 좋아했던 역사적 인물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역사적 인물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여러 차례 언급했으며,

이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마도 이탈리아의 문양가이자
천재 다윗의 조각상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일 것입니다.

괴테는 자신의 대표작인 "파우스트"에서 미켈란젤로를 언급하며
그의 예술과 열정을 칭찬했습니다.
괴테는 또한 미켈란젤로의 삶과 작품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의 예술적 영감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괴테는 미켈란젤로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 중 하나로 여겼습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좋아할만한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 제목은 무엇일까?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로맨틱한 분위기와 깊이 있는 감정을
표현하는 문학작품을 선보인 작가였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 중에서도
깊이 있는 감정을 담고 있는 곡들이 괴테의 취향에 잘 맞을 것입니다.

그런 음악 중에서도 괴테가 좋아할 만한
한국의 발라드 노래 중 하나는 "그대 내 품에"라는 곡일 것입니다.

[찬조 K-Pop]


[찬조 K-Pop]


이 곡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따뜻한 순간을
담은 가사와 함께,
차분하면서도 감성적인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리움만 쌓이네"라는 곡도 괴테의 취향에 잘 맞을 것입니다.

[찬조 K-Pop]


이 곡은 미련한 이별을 담은 가사와 함께,
감정적인 보이스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경험한
재미있는 일화(episode)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로,
그의 인생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화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괴테와 성모상" 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괴테는 친구와 함께 로마에서 산책을 하다가
아름다운 성모상을 본 후, 그녀를 모델로 하여
자신도 조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괴테는 성모상을 본 뒤에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돌로 된 조각 재료를 모아 왔습니다.

그리고 괴테는 성모상을 모델로 하여
열심히 조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조각 작업을 하면서 괴테는 자신이 미술 분야에서의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결국 괴테는 자신의 조각 작업을 포기하고,
다시 글쓰기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괴테가 예술 분야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이 뛰어난 것은 문학 작품을 쓰는 데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일까?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양심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의 문학 작품에도 이러한 가치들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괴테는 자신의 일생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개발해나갔습니다.
그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괴테는 자유와 독립, 존엄성, 인간적인 가치 등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파우스트'에서도 이러한 주제들이
논의되어 있습니다.

또한, 괴테는 도덕적인 선택과 행동을 하는 것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괴테는 양심적인 사람으로 평가되며,
그의 생각과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양심(Conscience) 등급(Grade)을
A(매우 우수), B(우수), C(보통), D(낮음) 로 Grading 한다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양심등급(Conscience Grade)은?


어떤 사람의 양심 등급을 평가하는 것은 주관적인 요소가 많아
정확한 평가는 어렵습니다.

또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같은 역사적 인물의 경우,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다양한 행동과 선택을 하였기 때문에
특정 등급으로 한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괴테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며,
그의 작품에도 이러한 가치들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양심 등급을 B(우수)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주관적인 평가이므로 참고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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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Wolfgang Goethe

[Born] 28 August 1749
Frankfurt-am-Main, Holy Roman Empire

[Died] 22 March 1832 (aged 82)
Weimar, Grand Duchy of Saxe-Weimar-
Eisenach, German Confederation

[Occupation] Poet, novelist,
playwright, natural philosopher,
diplomat, civil servant

[Nationality] German

[Literary movement]
Sturm und Drang; Weimar Classicism

[Notable works]
Faust; The Sorrows of Young Werther;
Wilhelm Meister's Apprenticeship;
Elective Affinities; "Prometheus"; Zur
Farbenlehre; Italienische Reise;
Westostlicher Diwan

[Spouse]
Christiane Vulpius (1806–16, her death)



Johann Wolfgang von Goethe
(28 August 1749 – 22 March 1832) was a
German writer and statesman.

His body of work includes epic and
lyric poetry written in a variety of
metres and styles; prose and verse
dramas; memoirs; an autobiography;
literary and aesthetic criticism;
treatises on botany, anatomy, and
colour; and four novels. In addition,
numerous literary and scientific
fragments, more than 10,000 letters,
and nearly 3,000 drawings by him are extant.

A literary celebrity by the age
of 25, Goethe was ennobled by the Duke
of Saxe-Weimar, Karl August in 1782
after first taking up residence there
in November 1775 following the success
of his first novel, The Sorrows of Young Werther.



He was an early participant in the Sturm und Drang
literary movement. During his first ten
years in Weimar, Goethe served as a
member of the Duke's privy council, sat
on the war and highway commissions,
oversaw the reopening of silver mines
in nearby Ilmenau, and implemented a
series of administrative reforms at the
University of Jena.

He also contributed to the planning of Weimar's botanical
park and the rebuilding of its Ducal
Palace, which in 1998 were together
designated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After returning from a tour of Italy in
1788, his first major scientific work,
the Metamorphosis of Plants, was
published. In 1791 he was made managing
director of the theatre at Weimar, and
in 1794 he began a friendship with the
dramatist, historian, and philosopher
Friedrich Schiller, whose plays he
premiered until Schiller's death in 1805.

During this period Goethe
published his second novel, Wilhelm
Meister's Apprenticeship, the verse
epic Hermann and Dorothea, and, in
1808, the first part of his most
celebrated drama, Faust.

His conversations and various common
undertakings throughout the 1790s with
Schiller, Johann Gottlieb Fichte,
Johann Gottfried Herder, Alexander von
Humboldt, Wilhelm von Humboldt, and
August and Friedrich Schlegel have, in
later years, been collectively termed Weimar Classicism.

Arthur Schopenhauer cited Wilhelm
Meister's Apprenticeship as one of the
four greatest novels ever written,
along with Tristram Shandy, La Nouvelle
Heloise, and Don Quixote, and Ralph
Waldo Emerson selected Goethe as one of
six "representative men" in his work of
the same name, along with Plato,
Napoleon, and William Shakespeare.

Goethe's comments and observations form
the basis of several biographical
works, most notably Johann Peter
Eckermann's Conversations with Goethe.
There are frequent references to
Goethe's writings throughout the works
of G. W. F. Hegel, Arthur Schopenhauer,
Friedrich Nietzsche, Hermann Hesse,
Thomas Mann, Sigmund Freud, and Carl Jung.

Goethe's poems were set to music
throughout the eighteenth and
nineteenth centuries by a number of
composers, including Wolfgang Amadeus
Mozart, Ludwig van Beethoven, Franz
Schubert, Robert Schumann, Johannes
Brahms, Charles Gounod, Richard Wagner,
Hugo Wolf, Felix Mendelssohn, and Gustav Mah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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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창업 특허 RFP 표준(강의용 PDF파일 제공)- 김영복 저
웹프로그래밍 (한국.net 사례기반) - 김영복 저, 실습 사이트: w3schoo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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