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공자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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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 Confucius, 논어(1부), China
[이름] 구(丘), 자는 중니(仲尼)

인류 역사인물 100명중 5위 선정


인류 역사인물 50명에 선정




[출생 - 사망] BC 551년 9월 28일
(음력 8월 27일) ~ BC 479년 (71~72세)

[시대] 춘추 시대
[지역] 동양 철학
[학파] 유학의 창시자, 유가와 법가의
공동 시조
[연구 분야] 철학, 정치학, 윤리학, 법학


공자(孔子) 또는 공부자(孔夫子: 기원전
551년 ~ 기원전 479년)는 유교의 시조(始
祖)인 고대 중국 춘추시대의 정치가 · 사
상가 · 교육자이고, 주나라의 문신이
자 작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하다. 흔히 유교
의 시조로 알려져 있으나,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유가의 성격이나 철학이 일반적
인 종교들과 유사히 취급될 수 없다는 점에
서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이처럼 호칭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유가 사상과 법가 사상
의 공동 선조였다.


정치적으로는 요순우 삼황 오제의 이상적
정치와 조카를 왕으로서 성실하게 보필한
주공 단의 정치 철학을 지향했다. 뜻을 펴
려고 전국을 주유를 하였으나 그의 논설에
귀를 기울이는 왕이 없어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다 생을 마쳤
다. 춘추시대 말기에 서주의 제후국인 노나
라(魯)의 무관인 숙량흘의 둘째 아들이자
서자로 태어났다. 이름은 구(丘), 자는 중
니(仲尼)이다.

"공자(孔子)" 또는 "공부자(孔夫子)"로 불
린다. "공자(孔子)"의 호칭에서 "자
(子)"는 성인(聖人)인 공자를 높여 부르는
존칭이다. 그 뒤 여러 번 추증되어 대성지
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에 추봉되었다.


[생애 초반]
[탄생과 가계]
공자는 기원전 551년 9월 28일 노나라 곡부
(曲阜)에서 떨어진 시골인 창평향(昌平鄕)
추읍(郰邑)에서 부친 숙량흘이 그의 노년
에 모친 안씨(이름은 징재)를 맞아 공자를
낳았으나, 부친인 숙량흘(叔梁紇)과 모친
인 안징재(顔徵在, 옌쩡짜이)는 정식으로
혼인한 관계는 아니었다.


안징재는 숙량흘의 동료 무사이자 친구였
던 안양(顔襄)의 셋째 딸이었다. 숙량흘이
안징재를 만났을 당시 숙량흘은 60대 후반
이였고 안징재는 13세의 소녀였다는 설도
있으나, 이는 후세에 호사가들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공자의 조상은 주나라의 이전 왕조인 은나
라에서 봉토를 하사 받은 송나라의 공족(소
국의 왕에 해당)이었으며 공자의 3대 전에
노나라로 옮겨 왔다. 그의 집안은 송나라
왕실에서 연유한 명문 가문이었으나 몰락하
여 노나라에 와서 살게 되었으며, 부친 숙
량흘은 시골 무사였다. 부친과 그의 본처
시씨(施氏) 사이에는 딸만 아홉이었고 아들
은 하나 뿐이었다.

공자의 자(字)가 중니(仲尼)가 된 이유는
집안의 장남인 맹피에 이은 둘째 아들이라
는 뜻이었다. 흔히 소개되는 공자의 가계
는 보통 그의 부친 숙량흘과 증조부 공방숙
까지 언급되나, 후대에는 보통 공자를 시조
로 간주하기도 한다.


[소년 시절]
《사기》의 '공자세가'에는 공자의 키가
9척6촌에 달하여 '장인(꺽다리)'으로 불렸
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공자는 사생아였
기 때문에 공씨 집안에서 숙량흘의 자손으
로 인정받지 못 했다. 3살 때 아버지가 죽
었고, 어머니 안징재가 궐리로 이사하여 홀
로 공자를 키웠다. 부친 [숙량흘]의 재산
은 이복 누이들과 이복 조카에게 상속되었
다. 그의 몫으로 돌아온 것은 없었다. 설상
가상으로 모친마저 눈이 멀어 버려 생활 형
편은 더욱 나빠졌다. 이 결과 공자는 어려
서부터 거칠고 천한 일에 종사하면서 곤궁
하고 불우한 소년 시절을 보냈다. [기원전
536년]에 혼인하였으며, [기원전 535년] 공
자 24세에 모친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녀
가 세상을 떠나자 공자는 3년 상을 마친
뒤 부친 묘소 옆에 안장하였다. [기원전
533년] 19세에 송 (춘추 전국)(宋)나라의
병관(幷官)씨의 딸과 결혼하여 20세에 아
들 리(鯉)를 얻었다.


사생아였던 공자에게는 자신이 대부였던 숙
량흘의 자손, 즉 귀족임을 인정받는 것이
필생의 목표였다. 무사였던 아버지와 달
리, 공자는 글과 지식으로서 인정받으려 했
다. 어릴 적부터 제사 지내는 흉내를 내며
놀기를 좋아했다고 하며, 고실(故實), 즉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종교 의례·제도·
관습 등에 밝았다. 공자에게는 특별한 선생
은 없었다. 그가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에
게서 배웠다. 그 가운데 유명한 사람이 주
나라의 주하사였던 노자이다. 공자가 노자
를 찾아가서 배웠던 것은 여러 문헌에 나온
다. 이런 사정을 만년에 공자는 "15살에 배
움에 뜻을 두었고, 30살에 섰다"고 술회한
다. 서른 살에 학문의 기초가 섰으며, 생활
의 토대가 섰으며, 한 인간으로서 우뚝 선
것이다. 30대가 되자 공자는 노나라에서 가
장 박식한 사람이 된다. 그는 학원을 열어
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중국 역사상 최초
의 학교를 창설한 것이다. 노나라의 유력
한 대부의 자손에서 평민의 자제까지 '묶
은 고기'(束脩) 이상을 가져온 사람은 누구
나 가르쳤다. 공자는 <시경> <서경> <주역
> 등의 경전을 가르쳤다.

공자는 노나라에 살았다. 따라서 노나라를
건국했던 주공(周公)을 본받아야 할 사람으
로 받들었다. 주공은 어린 성왕을 대신해
서 섭정을 하면서 주나라의 봉건제를 수립
했다. 봉건제는 종법제라 한다. 천자가 형
제 친척을 제후로 임명한다. 제후는 다시
자손을 대부로 임명한다. 그 결과 국가의
주요 기관장은 종친들이 된다. 이래서 종법
이라 한다. 공자 당시는 종법과 봉건제가
무너지고 극심하게 혼란했다. 노나라가 바
로 그런 상황이었다. 공자는 주공의 종법제
를 회복해서, 노나라를, 나아가 천하를
평화롭게 하고자 했다.
----(중략)-----


==================================
공자탄일 [ 孔子誕日 ]

[날짜] 9월 28일 (음력 8월 27일)
[정의] 공자(孔子)의 탄생일. 음력 8월 27
일(양력 9월 28일)을 말한다.

[내용]
공자는 중국 고대 주(周)왕조의 제후국인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鄹邑)에
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오늘날의 산동성
곡부(曲阜)시에 해당한다. 공자의 선조는
중국 하남성에 자리 잡고 있던 송(宋)나라
의 귀족이었으며, 그의 5대조인 목금보(木
金父) 때에 송나라에서 노나라로 이주한
후 대대로 이곳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공자의 부친은 숙량흘(叔梁紇)로 노나라 귀
족인 맹헌자(孟獻子)에게 소속된 무사였으
며, 6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당시 10대 후
반이었던 안징재(安徵在)라는 여자로부터
공자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공자의 탄일과 관련해서 이설이 있기는 하
지만, 일반적으로 공자의 일생을 연대기식
으로 정리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사마천
(司馬遷)의 『사기(史記)』 권47 「공자세
가(孔子世家)」 17의 기록을 따르고 있다.
『사기』에 의하면 공자의 탄일은 주왕조
영왕(靈王) 21년[노나라 양공(襄公) 22
년], 경술년(庚戌年) 11월 경자일(庚子日:
21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중국의 춘
추시대로서 양력으로 환산할 경우 기원전
551년 9월 28일에 해당하며, 음력으로는 8
월 27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나라와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 대부분의
유교문화권 국가들에서는 이날을 공식적인
공자탄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일
시적으로 공자탄일에 제사를 지낸 적이 있
으나, 전통적으로는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
(上丁日)의 석전대제(釋奠大祭) 때 성균관
과 전국의 향교에서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공자탄일(孔子
誕日)에는 기념강연이나 행사로 대신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이날이 1989년에 국제공자
문화절(國際孔子文化節)로 격상되었고 2000
년대 이후 공자의 고향인 곡부에서 공자탄
일을 전후하여 국제공자문화절 행사를 개최
해오고 있으며, 공자탄일 당일인 양력 9월
28일에는 공자를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
타이난 공자묘
[ 臺南孔子廟(대남공자묘) ]

[요약] 타이완[臺灣]의 타이난[臺南]에
있는 공자묘이다.

타이완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공자사원이
자 최초의 학교로 1655년에 창건하였다.
명나라 재건이라는 정성공의 유지에 따라
뜻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타이완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여
'전대수학(全臺首學 : 타이완 최고의 학
교)'이라 불리었다.

수십 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오늘날에는
우아하고 소박한 형태를 지닌 타이완 1급
유적지가 되었다. 사원은 모두 15개의 건축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왼쪽에는 학교, 오른
쪽에는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공자묘 안에
는 공자묘의 역사를 기록한 청조의 석비 24
기가 진열되어 있으며, 공자를 중심으로 72
인의 제자와 중국 역대의 현인들을 모시고
있다. 해마다 9월 28일에는 대성전 앞에서
공자 탄생일을 기리는 성대한 의식이 열린
다.

[from 네이버 지식백과]
공자탄일 [孔子誕日], 타이난 공자묘



==================================
《논어》(論語)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사서의 하나이다.
저자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공자의 제자들과 그 문인들이 공동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사람의 저자가 일관적인 구성을
바탕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공자의 생애 전체에 걸친 언행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여타의 경전들과는
달리 격언이나 금언을 모아 놓은 듯한
성격을 띤다.
공자가 제자 및 여러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토론한 것이 '논'.
제자들에게 전해준 가르침을 '어'라
고 부른다.

현재 논어는 전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서술방식과 호칭의 차이 등을 기준으로
앞의 열 편을 상론(上論),
뒤의 열 편을 하론 (下論)으로 구분하여
앞의 열 편이 더 이전 시대에 서술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각 편의 이름은 그 편 내용의
첫 두 글자를 딴 것으로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
공자의 생애는,
즉 BC 551년 ~ BC 479년,
삼사십대에 들어 여러나라를
전전하며 벼슬도 살면서 학문과 인격의
완숙한 경지를 이루었으며,
오십대에는 노나라에서 법무장관을
지냈으며,
육십대에는 주유천하 하면서 도덕정치를
추구하였지만 그 당시의 현실에서는
받아 들여지지 아니하여 정치를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과 함께
시(詩),서(書),예(禮),악(樂),역(易),춘추
(春秋)등 6경을 정리 저작하여 후세의
사람들에게 불후의 명작을 남겨 주었다.

인(仁),애(愛)를 근본사상으로,
서, 즉 남을 용서함과 충(忠)을 첫째로
중요시 하라고 가르쳤으며,
서는 '자기를 미루어 남을 아는것'이며
충은 '자기를 다하는 것' 이라고 주희는
풀이 하였음.
정치에서는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며
정(正)을 기본으로 모범을 보이라고 함.

논어는 총20편으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주로 맨처음의 2자 또는 3자를 편명으로
삼았으며 그 편명으로 내용을 알기는
힘이든다.

제 1 편. 학 이( 學 而 )

학이편은 논어의 서편(緖編)으로
학문의 중요성과 공자의
사상이 깃들어 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 하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교묘하게 꾸민 말과 보기 좋게
꾸민 얼굴빛에는 어진 마음이
드물다.

나는 매일 나 자신을 세번씩
반성한다.
남을 위해서 일을 하는데 정성을
다하였는가, 벗들과 함께 서로 사귀는데
신의를 다하였는가,
전수 받은 가르침을 반복하여 익혔는가,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을 남에게 전하지
않았는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며,
잘못을 깨달았을 때에는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지난 과거를 말해주면 미래를 아는구나.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탓하라.


제 2 편. 위 정( 爲 政 )

정치에 대한 내용을 많이 수록하였다.

법률 제도로써 백성을 지도하고 형벌로써
질서를 유지시키면,
백성들은 법망을 빠져나가되 형벌을
피함을 수치로 여기지 아니한다.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서 질서를
유지시키면 백성들은 부정을 수치로 알고
착하게 된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고,
마흔에는 인생관이 확립되어 마음에
혼란(유혹)이 없고,

쉰에는 천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고,
예순에는 어떠한 말을 들어도 그 이치를
깨달아 저절로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일흔에는 내마음 대로 행동을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옛것을 알고 새로운 지식을 터득하면
능히 스승이 될 수 있다.

군자는 한가지 구실밖에 못하는
기물이나 기계가 아니다.

자공이 군자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께서 먼저하고자 하는 일을 행한 후에
말을하는 사람이 군자다.

군자는 두루 통하면서도 편파적이 아니며
소인은 편파적이면서도 통하지도 않는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노나라 애공왕이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복종을 하겠습니까?
하니, 공자 대답이, 곧고 올바른 사람을
등용해서 곧지 않는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들은 마음까지 복종하지만 반대로
부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정직한
사람 위에 놓으면 백성들은 복종하지
않습니다.

옳은 일을 보고도 나서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제 3 편. 팔 일 ( 八 佾 )

무악(舞樂)의 이름인 팔일을 편명으로
삼아 예악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았다.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예는 무엇하며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음악은 무엇하랴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검소해야 되고 상사,
즉 초상집에서는 형식을 갖추기 보다는
슬퍼해야한다.

조상을 제사 모실때에는 앞에
계신듯이하고 신을 제사 지낼 때에는 신이
있는듯이 하였다.

이미 이루어진 일은 말하지 않으며,
끝난 일은 간하지 않으며,
지난 일은 탓하지 않는다.


제 4 편. 이 인 ( 里 仁 )

인덕(仁德)에 대한 말을 많이
수록하였음.

인후한 마을에 사는 것이 좋으며
그러한 곳을 택하여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하리요.

어질지 못한 사람은 역경에 오래 있지
못하며, 행복도 오래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어진 사람은 인(仁)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생각한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즉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니라.

군자는 덕을 생각하며 소인은
땅, 즉 좋은 땅에 안주함을
생각하며, 군자는 형벌,
즉 법을 지킴을 생각하며 소인은
은혜 받기를 생각한다.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을 하면
원망을 많이 받는다.

벼슬자리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의 자격을 근심하며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만한 일을 하고자 노력하라.

군자는 정의를 밝히어 이해하고,
소인은 이익을 표준으로 하여 이해한다.

어진 사람을 보면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며,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면
스스로 깊이 반성한다.

부모님 살아 계시면 멀리 떠나지
아니하며, 떠나면 반드시 갈 곳을
알려야 한다.

모든 일을 단단히 죄고 단속
하므로써 실수하는 일이 드물다.

군자는 말은 더디되 행동은
민첩하게 하고자 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

자유가 말하길 임금을 섬기는데
자주 간하면 욕이 되고,
벗을 사귀는데 자주 충고를 하면
사이가 벌어진다.

제 5 편. 공 야 장 (公冶長)

제자들과 고금의 인물을 평한 것으로
주로 자공의 언행이 많이 기술 되어 있다.

자공이 대답하길,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자공은 하나를 들으면
둘밖에 모릅니다.

자공이 말하길, 나는 남이 나에게 하는것
중 좋지 않으면 저도 남에게 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안평중은 사람과 잘사귀었다.
오래될수록 사귄 사람을 존경했다.

백이 숙제는 지난날에 나빴던 일을
생각하지 않았음으로 일반 사람들이
그들을 원망하는 일이 드물었다.

안연은 착한 일을 남에게 자랑하지 않고
남에게 힘드는 일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했으니, 자로가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들려주십시오 하자,
노인들을 편안하게 하여주고,
벗들에게는 신의를 지키며 젊은이를
따뜻하게 감싸주려 한다.

제 6 편. 옹 야 (雍 也)

앞쪽은 인물평이 많고 뒤쪽은 인(仁)과
지(知)에 대한 이론이 많이 있다.

안회는, 즉 공자가 제일 사랑한 제자로
41살에 죽었음,
학문을 너무 좋아하여 노여움이 나도
아무데나 대고 화풀이를 하지 않을 만큼
학문을 좋아했으며, 또한 잘못한 일은
두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을만큼
학문을 좋아하였다.

인간의 삶은 원래 정직한 것이다,
정직하지 않으면서도 살 수 있는 것은
요행히 화를 면하고있는 것이다.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어진 사람은 어려움은 남보다 먼저 하고,
보답은 남보다 뒤에 얻으면 참으로 어질다
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며, 어
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니,
지자는 동적이며 인자는 정적이며,
지자는 즐겁게 살며 인자는 장수한다.

인자란 자신이 나서고 싶을 때
남을 내세우며,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으면 남을 먼저 달성하게 한 후
자기가 한다.

제 7 편. 술 이 ( 述 而 )

공자 자신의 일과 공자의 용모, 태도,
행동에 대한 것들이 기록되어 논어
전편 중 가장 뛰어난 구절들이 많이있다.

군자의 이상적인 생활이란 도에다 뜻을
두고 덕을 닦으며,
인을 의지하며 6예에서 생활할 것이다.

맨손으로 범을 잡으려하고,
맨발로 황하를 건너다.
마땅히 일에 임해서는 두려워해야 한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어도 즐거움이란 그 속에
있으며, 의롭지 않은 부와 귀는
나에게는 하나의 뜬구름과 같다.

그 사람됨이 학문을 너무 좋아해서,
발분 하면 먹는것도 잊고,
학문을 즐김에 걱정도 잊으며,
늙는 일 조차 알지 못한다.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듯이
나의 스승될 만한 사람이 있다.
그들의 착한 점을 골라서 따르고
나쁜 점은 살펴서 스스로 고쳐야 한다.

사치하면 불손하기쉽고,
검소하면 고루해지니,
거만한것보다 차라리 고루한 것이났다.

군자의 마음은 평탄하고 너그러우며,
소인의 마음은 항상 근심에 차있다.
=====================================
Confucius

[Born] 551 BC, Zou, Lu state
[Died] 479 BC (aged 71–72)
Lu state

[Nationality] Lu state, Zhou China
[Era] Ancient philosophy
[Region] Chinese philosophy
[School] Founder of Confucianism
[Main interests]
Moral philosophy, Social philosophy,
Ethics
[Notable ideas] Confucianism
--------------------------------------
Confucius (551–479 BC) was a Chinese
teacher, editor, politician, and
philosopher of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of Chinese history.

The philosophy of Confucius emphasized
personal and governmental morality,
correctness of social relationships,
justice and sincerity. His followers
competed successfully with many other
schools during the Hundred Schools of
Thought era only to be suppressed in
favor of the Legalists during the Qin
Dynasty. Following the victory of Han
over Chu after the collapse of Qin,
Confucius's thoughts received official
sanction and were further developed
into a system known as Confucianism.

Confucius is traditionally credited
with having authored or edited many of
the Chinese classic texts including all
of the Five Classics, but modern
scholars are cautious of attributing
specific assertions to Confucius
himself. Aphorisms concerning his
teachings were compiled in the
Analects, but only many years after his
death.

Confucius's principles had a basis in
common Chinese tradition and belief. He
championed strong family loyalty,
ancestor worship, respect of elders by
their children and of husbands by their
wives. He also recommended family as a
basis for ideal government. He espoused
the well-known principle "Do not do to
others what you do not want done to
yourself", an early version of the Golden Rule.

(from 네이버 지식백과 naver.com
wikipedia.org 등)


Aphorisms,Analects,Ancient,Ancestor,golden rule for All,influence(+)~
(PIG: time-variant)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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