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ne 나폴레옹 Napol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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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정치가,황제,France
Napoleon I, Napoleon Bonaparte


[출생-사망] 1769년 8월 15일 ~
1821년 5월 5일
[본명] 나폴레옹 보나파르테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정치, 군사
[출생지] 지중해코르시카섬 아작시오

지난1000년간 인물100명중 27위 선정


인류 역사인물 100명중 34위 선정


인류 역사인물 50명에 선정



[요약]
프랑스의 군인 ·제1통령·황제. 프랑스혁
명의 사회적 격동기 후 제1제정을 건설했
다. 제1통령으로 국정을 정비하고 법전을
편찬하는 등 개혁정치를 실시했으며 유럽
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며 세력을 팽창했
다. 그러나 러시아원정 실패로 엘바섬에,
워털루전투 패배로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
되었다.

(역사상 인물 100명중 34위:
http://wopen.net/contentp.asp?idx=22692
참조)


-------------------------------------
지중해 코르시카섬 아작시오에서 출생했
다. 카를로 보나파르테와 레티치아 라몰리
노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이름인 나폴
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는 부
모가 지어준 나폴레오네 부오나파르테란 본
명을 이후에 프랑스 식으로 바꾼 것이다.
프랑스혁명의 사회적 격동기 후의 안정에
편승하여, 제1제정을 건설하였다. 군사·정
치적 천재로서 세계사상 알렉산드로스대왕
·카이사르와 비견된다. 아버지가 지도자
파올리를 따라 프랑스에 대한 코르시카 독
립운동에 가담하나, 싸움에 진 뒤에는 도리
어 프랑스 총독에게 접근하여 귀족의 대우
를 받았다.


1779년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 건너가, 10
세 때 브리엔 유년학교에 입학하여 5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 코르시카 방언으로
프랑스어 회화에 고민하며 혼자 도서실에
서 역사책을 읽는 재미로 지냈으나, 수학만
은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1784년 파리육군
사관학교에 입학, 임관 뒤 포병소위로 지방
연대에 부임하였다. 1789년 프랑스혁명 때
코르시카로 귀향하여, 파올리 아래서 코르
시카국민군 부사령에 취임하였다. 프랑스
육군은 3회에 걸친 군대이탈과 2중군적에
대해 휴직을 명하였다.


1792년 파올리와 결별하고, 일가와 함께 프
랑스로 이주하였다. 1793년 가을 툴롱항구
왕당파반란을 토벌하는 여단 부관으로 복귀
하여, 최초의 무훈을 세웠다. F.로베스피에
르의 아우와 지우(知遇)를 갖게 되어 이탈
리아 국경군의 지휘를 맡았다. 테르미도르
(Thermidor)의 반동 쿠데타로 로베스피에르
파(派)로 몰려 체포되어 다시 실각, 1년간
허송세월을 보냈다. 1795년 10월 5일(방데
미에르 13일), 파리에 반란이 일어나 국민
공회(國民公會)가 위기에 직면하자, 바라스
로부터 구원을 요청받고, 포격으로 폭도들
을 물리쳤다.

이 기민한 조치로 재기의 기회를 포착,
1796년 3월 바라스의 정부(情婦)이자 사교
계의 꽃이던 조제핀과 결혼, 총재정부로부
터 이탈리아 원정군사령관으로 임명되었
다.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
여 5월에 밀라노에 입성, 1797년 2월에는
만토바를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10월 오
스트리아와 캄포포르미오(Campoformio)조약
을 체결하여, 이탈리아 각지에 프랑스혁명
의 이상을 도입한 인민공화국을 건설하였
다. 그의 명성은 프랑스에서도 한층 높아졌
다. 하루 3시간만 잔다는 소문도 있었으
나, 비서 브리센에 의하면 건강에 항상 신
경을 써서 하루 8시간은 잤다고 한다.


1798년 5월 5만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집
트를 원정하여 결국 카이로에 입성하였다.
7월 해군이 아부키르만(灣)에서 영국함대
에 패하여 본국과의 연락이 끊기자 혼자서
이집트를 탈출, 10월에 프랑스로 귀국하였
다. 곧 그를 통해 총재정부를 타도하려는
셰이에스 ·탈레랑 등의 음모에 말려들었
다. 1799년 11월 9일(브뤼메르 18일) 군을
동원, 500인회를 해산시켜 원로원으로부터
제1통령으로 임명되고, 군사독재가 시작되
었다.

그는 평생 코르시카인의 거칠음·솔직함을
잃지 않아, 농민출신 사병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었으나, 역사적 영웅으로 보면 인간
성을 무시하고 도덕성이 결여된 행동의 주
인공이었다. 광대한 구상력, 끝없는 현실파
악의 지적 능력, 감상성 없는 행동력은 마
치 마력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처럼 사
상 유례 없는 개성이 혁명 후의 안정을 지
향하는 과도기의 사회상황에서 보나파르티
즘이라는 나폴레옹의 정치방식이 확립되었
다. 제1통령으로서 국정정비 ·법전편찬에
임하고, 대(對)오스트리아와의 결전을 서둘
러 1800년 알프스를 넘어 마렝고에서 전승
을 이룩하였다.


1802년에는 영국과 아미앵화약을 맺고,
1804년 12월 인민투표로 황제에 즉위하여
제1제정을 폈다. 즉위소식을 들은 L.베토벤
이 《영웅 교향곡》의 악보에서 펜을 던지
고, ‘인민의 주권자도 역시 속물이었다’
고 한탄하였다고 한다. 영국을 최대의 적으
로 간주하던 그는 즉위하자, 곧 상륙작전
을 계획하였다. 1805년 가을 프랑스함대는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H.넬슨의 영국해군에
다시 격파되어, 그의 웅도(雄圖)는 끝내 이
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아
우스터리츠전투에서 오스트리아 ·러시아군
을 꺾은 이래, 프랑스육군은 전유럽을 제압
하여 위광을 전세계에 떨쳤다.

1809년 조제핀과 이혼, 이듬해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루이즈와 재혼하였다. 그러나
1812년 러시아원정에 실패하면서 운세도 기
울어져, 1814년 3월 영국 ·러시아 ·프러
시아 ·오스트리아군에 의해 파리를 점령당
하고, 그는 엘바섬으로 유배되었다. 이듬
해 1815년 3월 다시 파리로 들어가 황제에
즉위하였으나, 6월 워털루전투에서 패하여
영국에 항복하였다. 그 뒤 대서양의 세인
트 헬레나섬에 유배, 그곳에서 죽었다. 그
가 구술하는 회상록을, 동행하던 옛 부하
E.라스카스가 기록하였다.

[from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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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황제:
[재위] 1804년 5월 18일~1814년 4월 11일
1815년 3월 20일~1815년 6월 22일
[대관식] 1804년 12월 2일

이탈리아 국왕:
[재위]
1805년 3월 17일~1814년 4월 11일
[대관식] 1805년 5월 26일

[배우자] 조제핀 드 보아르네
오스트리아의 마리 루이즈

[왕가] 보나파르트 왕가

[출생] 1769년 8월 15일
코르시카 공화국 아작시오

[사망] 1821년 5월 5일 (51세)
세인트헬레나 롱우드

[사인] 위암
[종교] 로마 가톨릭교회(1809년 파문당함)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eon Bonaparte, 1769년 8월 15일 ~
1821년 5월 5일)는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
치가이며, 프랑스 대혁명 시기 말기 무렵
의 정치 지도자이자 1804년부터 1815년까
지 프랑스의 황제였다.

나폴레옹 법전은 세계의 민법 관할에 크나
큰 영향을 미쳤지만,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역할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유럽 전체에 헤게모니를 형성했고, 프
랑스 대혁명의 이상을 퍼트렸으며, 이전 정
권의 양상을 복원하는 제국 군주제를 통합
했다. 그가 전쟁마다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
에 지금까지 가장 위대했던 장군들 중 하나
로 기억되고 있다.


나폴레옹은 코르시카에서 프랑스 본부에서
포병 장교로 훈련받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
났다. 그는 프랑스 제1공화국에서 눈에 띄
게 지위가 올랐고 제1차 및 제2차 대프랑
스 동맹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나폴
레옹은 1799년에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후
제1통령에 취임하였다. 5년 뒤에 프랑스 원
로원이 그를 황제 자리에 앉혔다. 19세기
의 첫 10년 동안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
스 제국은 나폴레옹 전쟁을 주도하였다. 유
럽의 모든 강대국이 이 전쟁에 휘말렸으
며, 많은 승리 뒤에 프랑스는 유럽의 지배
적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광범위
한 제휴와 친구들과 친척들을 유럽 다른 나
라들을 통치케 하여 프랑스의 위상을 유지
시켜나갔다. 나폴레옹의 전쟁들은 많은 군
대에서 연마되고 있다. 스페인의 무장시민
들과의 싸움과 1812년의 러시아 원정은 나
폴레옹의 삶을 완전히 돌려놓았다. 그의 대
육군은 전쟁에서 큰 손상을 입었고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오지 못했다.


1813년에 라이프치히에서 제6차 대프랑스
동맹에 의해 프랑스는 전쟁에서 패배하였
다. 그 다음해에는 그 동맹이 파리에 입성
하였고, 나폴레옹을 정권에서 내려오게 하
고 엘바 섬으로 유배했다. 1년이 채 되지
도 않았을 때 그는 엘바 섬에서 도망쳐 나
오고 권력을 다시 잡았지만, 1815년 6월에
워털루 전투에서 대패배하였다. 나폴레옹
은 삶의 마지막 6년을 영국 왕실에 의해 구
속된 채로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보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위암으로 결론이 났으
나, 그의 사인은 상당한 논쟁을 일으켰으
며, 일부 학계 측에서는 비소 중독설도 제
기되었다.


=====나폴레옹의 명언들=================
♣ 최후의 승리는 인내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인내하는 데서 운명이
좌우되고, 성공이 따르게 된다.

♣ 나는 언제나 노동하고 있다.
그리고 늘 생각한다.
내가 항상 어떠한 일에 당면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즉시로 처리하는 것은
미리 여러 가지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 두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돌발 사태에 처했을 때에
즉시로 내가 해결해 버리는 것은
내가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상시에 있어서의 명상과 반성의
결과인 것이다.
식사할 때나 혹은 극장에서 오페라를
구경할 때도
나는 늘 머릿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 나는 2년 후를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때가 없다.

♣ 나의 실패와 몰락에 대하여
책망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나 자신의 최대의 적이며,
비참한 운명의 원인이었다.


♣ 당신들의 국가를 영속시키려면,
공공의 안전을 위해 결속하라.

♣ 부귀와 명예는 그것을 어떻게
얻었느냐가 중요하다.
도덕에 근거를 두고 얻은 부귀와
명예라면 산골에 피는 꽃과 같다.
즉, 충분한 햇볕과 바람을 받고
성장한다.

♣ 부도덕 중의 으뜸은 자기가
모르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다.

♣ 부하 걱정을 많이 하는 지휘관은
패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그가 입은 제복대로의
인간이 된다.

사람은 덕보다도 악으로 더 쉽게
지배된다.

사람의 처세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에 쏠리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이치에도 쏠리지
않고, 두 가지를 다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유일한 승리는
탈출이다.

사치한 생활 속에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마치 그림 속의 태양이 빛을
발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산다는 것은 곧 고통을 치른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이기려고
애를 쓰는 법이다.

살아 있는 졸병이 죽은 황제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성격의 씨앗을 뿌리면,
운명의 열매가 열린다.


숙고할 시간을 가져라.
그러나 일단 행동할 시간이 되면
생각을 멈추고 돌진하라.

승리는 노력과 사랑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승리는 가장 끈기있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간다.
어떤 고난의 한가운데 있더라도
노력으로 정복해야 한다.
그것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다.

신을 비웃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패배자로서 영광없이
사는 것,
그것은 매일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

승리를 원한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1퍼센트의 가능성,
그것이 나의 길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역사를 지배한 것은 항상 승리의
법칙이었다.
그 외의 다른 법칙은 없다.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이것이 통치다.

승부는 언제나 간단하다.
적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간파해야
한다.
그리고 적으로 하여금 원하는 것,
꿈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자는 이미
패배한 자이다.

비범한 작전이란,
유용한 것과 불가피한 것만을
시도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면,
저 어린 신병들 속에, 최전방에,
내가 던지는 내 목숨이야말로
최후의 카드가 아니겠는가.

왕좌란 벨벳으로 덮은 목판에
불과하다.

사람이란 처음에는 일을 끌고
가지만 조금 있으면 일이 사람을
끌고 가게 된다.

엉터리 행사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감동적인 사상으로
사람을 신복시키는 것보다 훨씬
확실하다.

승리는 대군의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천재의 능력일지라도
기회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약속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날 마주칠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어느 시간에
대한 보복이다.


의지할 만한 것은 남이 아니라
자신의 힘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는 것이며
성공했다고 지나친 기쁨에 도취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그가 입은 제복대로의
인간이 된다.

사치한 생활 속에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마치 그림 속의 태양에서
빛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숙고할 시간을 가져라.
그러나 일단 행동할 시간이 되면
생각을 멈추고 돌진하라.

비장의 무기가 아직 나의 손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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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eror of the French:
[1st reign] 18 May 1804 – 11 April 1814
[Coronation] 2 December 1804
[2nd reign] 20 March 1815 – 22 June
1815

King of Italy:
[Reign] 17 March 1805 – 11 April 1814
[Coronation] 26 May 1805

[Spouse] Josephine de Beauharnais
Marie Louise of Austria

[Full name] Napoleon Bonaparte

[Father] Carlo Buonaparte
[Mother] Letizia Ramolino
[Born] 15 August 1769
Ajaccio, Corsica, France
[Died] 5 May 1821 (aged 51)
Longwood, Saint Helena
[Burial] Les Invalides, Paris, France
[Religion] Roman Catholicism
---------------------------------------
Napoleon Bonaparte
(15 August 1769 – 5 May 1821) was a
French military and political leader
who rose to prominence during the
French Revolution and its associated
wars.

As Napoleon I, he was Emperor of the
French from 1804 until 1814, and again
in 1815. Napoleon dominated European
affairs for over a decade while leading
France against a series of coalitions
in the Revolutionary Wars and the
Napoleonic Wars. He won most of these
wars and the vast majority of his
battles, rapidly gaining control of
continental Europe before his ultimate
defeat in 1815. One of the greatest
commanders in history, his campaigns
are studied at military schools
worldwide and he remains one of the
most celebrated and controversial
political figures in Western history.
In civil affairs, Napoleon implemented
foundational liberal reforms in France
and across Europe. He established a
system of public education, abolished
the vestiges of feudalism, emancipated
Jews and other religious minorities,
enacted legal protections for an
emerging middle class, and centralized
state power at the expense of religious
authorities. His lasting legal
achievement, the Napoleonic Code, has
been adopted in various forms by a
quarter of the world's legal systems,
from Japan in Asia to Quebec in North
America.

Napoleon was born in Corsica, just one
year after the island had passed to
France from the Genoese Republic, to a
relatively modest family of noble
Italian ancestry from Tuscany. Serving
in the French army as an artillery
officer, Napoleon supported the
Revolution from the outset in 1789 and
tried to spread its ideals to Corsica,
but was banished from the island in
1793. Two years later, he saved the
French government from collapse by
firing on the Parisian mobs with
cannons, an event known as the 13
Vendemiaire. The Directory then
appointed him as General of the Army of
Italy at age 26. After marrying
Josephine de Beauharnais in 1796, he
began his first military campaign
against the Austrians and their Italian
allies, scoring a series of decisive
victories that made him famous all
across Europe. In 1798 he commanded a
military expedition to Egypt,
conquering the Ottoman province after
defeating the Mamelukes and launching
modern Egyptology through the
discoveries made by his army.

The Directory collapsed when Napoleon
and his supporters engineered a coup in
November 1799. He was installed as
First Consul of the Consulate and
gradually extended his political
control over France. With the Concordat
of 1801, Napoleon restored the
religious powers of the Catholic Church
but retained its landed wealth in the
hands of the French state. He also
signed the short-lived Treaty of Amiens
with the British in 1802, ending the
Revolutionary Wars. The Senate
eventually declared him the Emperor of
the French in 1804, setting the stage
for the French Empire. Intractable
differences with the British meant the
French were facing a Third Coalition by
1805. Napoleon shattered this coalition
with decisive victories in the Ulm
Campaign and a historic triumph at the
Battle of Austerlitz, which led to the
elimination of the Holy Roman Empire
after the Peace of Pressburg. In
October 1805, however, a Franco-Spanish
fleet was destroyed at the Battle of
Trafalgar, allowing Britain to impose a
naval blockade of the French coasts. In
retaliation, Napoleon established the
Continental System in 1806 to cut off
European trade with Britain. The Fourth
Coalition took up arms against him the
same year because Prussia became
worried about growing French influence
on the continent. After quickly
knocking out Prussia at the battles of
Jena and Auerstedt, Napoleon turned his
attention towards the Russians and
annihilated them in 1807 at the Battle
of Friedland. Friedland forced the
Russians to accept the Treaties of
Tilsit, the high water mark of the
French Empire.

Hoping to extend the Continental
System, Napoleon invaded Iberia and
declared his brother Joseph Bonaparte
the King of Spain in 1808. The Spanish
and the Portuguese revolted with
British support. The Peninsular War,
noted for its brutal guerrilla warfare,
lasted six years and culminated in an
Allied victory over the French.
Fighting also erupted in Central Europe
as the Austrians launched another
attack against the French in 1809.
Napoleon defeated them at the Battle of
Wagram, dissolving the Fifth Coalition
formed against France. After the Treaty
of Schonbrunn in the fall of 1809, he
divorced Josephine and married Austrian
princess Marie Louise in 1810. By 1811,
Napoleon ruled over 70 million people
across an empire that had domination in
Europe, which had not witnessed this
level of political consolidation since
the days of the Roman Empire. He
maintained his strategic status through
a series of alliances and family
appointments. He created a new
aristocracy in France while allowing
for the return of nobles who had been
forced into exile by the Revolution.

Escalating tensions over rising Polish
nationalism and the economic effects of
the Continental System led to renewed
confrontation with Russia. To enforce
his blockade, Napoleon launched an
invasion of Russia in 1812 that ended
in catastrophic failure for the French.
In early 1813, Prussia and Russia
joined forces to fight against France,
with the Austrians also joining this
Sixth Coalition later in the year. In
October 1813, a large Allied army
defeated Napoleon at the Battle of
Leipzig. The next year, the Allies
launched an invasion of France and
captured Paris, forcing Napoleon to
abdicate in April 1814. He was exiled
to the island of Elba. The Bourbons
were restored to power and the French
lost most territories they had
conquered since the Revolution.
However, Napoleon escaped from Elba in
February 1815 and returned to lead the
French government, only to find himself
at war against another coalition. This
new coalition decisively defeated him
at the Battle of Waterloo in June. He
surrendered to the British who
imprisoned him on the remote island of
Saint Helena. His death in 1821, at the
age of 51, was received by shock and
grief throughout Europe. In 1840, a
million people witnessed his remains
returning to Paris, where they still
reside at Les Invalides.

(from naver.com wikipedia.org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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