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G 이태석 Lee Tae Seok
Edit 2021-10-17 오전 9:32:35
PIG C
Home https://bit.ly/3suY6Zv
SNS1 https://bit.ly/3mViXE2
SNS2 https://bit.ly/3so77Dv
SNS3 https://borgenproject.org/father-lee-tae-seok
 related < HOME > < EDIT>
Rname
      
이태석-Lee Tae Seok,李泰錫,신부,의사,Priest,Korea
한국.net

[출생] 1962년 10월 17일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

[선종] 2010년 1월 14일 (47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안장지] 담양군 천주교 공동묘역 살레시오 성직자 묘역
[국적] 대한민국



[부모] 신명남(모)
[배우자] 無(미혼)
[가족] 누나 4명, 형 4명, 남동생 1명

[복무] 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 1987년 ~ 1990년
최종 계급 대한민국 육군 대위
[근무] 군의관
[기타 이력] 천주교 사제
수단 톤즈 돈보스코 미션 선교병원 원장

한국.net

[학력]
천마초등학교 2회 졸업 (1975년)
경남고등학교 35회 졸업 (1981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사 졸업 (부산백병원 인턴수련)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신학 학사 졸업

[비학위 수료]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 신학 수료

[수상 경력]
2005년 제7회 인제인성대상(인제대학교와 인제학원에서 수여) 수상
2007년 제23회 보령의학 봉사상 수상
2009년 제2회 한미자랑스런의사상(대한의사협회와 한미약품에서 수여) 수상
2010년 제1회 KBS 감동 대상(KBS에서 수여) 추서
201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한국.net

이태석(李泰錫, 1962년 10월 17일(음력 9월 19일) ~
2010년 1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살레시오회 소속 사제 겸
의사로 아프리카 수단 남부(현재는 남수단)의
와랍 주에 있는 마을인 톤즈에서 교육 활동과 의료 활동을
펼치다가 2008년 11월 한국에 휴가차 입국하였을 때,
대장암 4기를 진단받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고
2010년 1월 14일 암투병 끝에 선종하였다.
선종 직전에 "Everything is good!"라는 말을 했다고
동료 수도자들이 증언한다.

[별칭과 명성]
세례명은 요한, 별칭은 수단의 돈 보스코(수단의 슈바이처)로
칭송되었고, 톤즈 마을 사람들은 그의 세례명에 성을 더해
발음하기 쉬운 ‘파더 쫄리’(존 리John Lee) 신부로 불렀다.



[생애]
[출생과 성장]
부산시의 남부민동에서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나
송도성당에서 알로이시오 슈왈츠 신부로부터 유아세례를 받았다.
9살 되던 해(1970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며,
어머니가 자갈치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해서 아이들을 키웠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교회에서 하와이의 몰로카이 섬에서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들과 산 벨기에 선교사 다미안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모로카이(MOLOKAI)를 보고
다미안 신부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송도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 청년회,
학생회, 성가대, 복사(사제를 돕는 역할) 등 종교 활동을 계속 하였다.

[청년기]
1981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가톨릭 사제가 되는 뜻을 품었다. 복무를 마치고
특히 청소년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에 따라
1991년 8월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한다.
그리고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에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1993년 1월 24일 수련을 시작해서
1994년 1월 30일 첫 서원을 하고,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서
2년 철학과정을 마친 후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역시 2년 과정의 사목실습을 하였으며,
1997년 로마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로 유학한다.
그곳에서 재학 중, 한국에서 이미 20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하다
1991년 아프리카 수단으로 다시 파견된 공고미노 수사가
로마에 휴가차 들렀을 때 그를 만났는데
그로부터 수단의 이야기를 듣고 선교사가 될 것을 권유받는다.
1999년 방학 때 선교체험을 하러 아프리카 케냐에 들렀을 당시
남수단 톤즈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제임스라는 인도 출신
살레시오 수도회 신부를 만나 톤즈로 가게 되고,
이때 강렬한 인상을 받아 톤즈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한국.net

[사제 생애]
2000년 4월 27일 종신서원을 하고, 2000년 6월 28일 로마에서
부제서품을 받았다. 2001년 6월 24일 서울 구로3동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아프리카를 향해 선교사로 출발하여
12월 7일 아프리카 남부 수단 와랍 주 톤즈에 부임한다.
그곳에서 가난과 기아, 질병 등으로 도탄에 빠진 마을의 참상을
보게 되고,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겸한 의료봉사활동과
구호운동에 헌신한다.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짓고
진료소를 만들어,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보며
인근 80여개 마을의 순회진료와 예방접종도 했다.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교 12년 과정을 꾸려
수학과 음악도 가르쳤다. 기숙사도 짓고 톤즈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악기도 가르쳤다.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한센인)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중



그러나 2008년 11월 한국에 휴가차 잠시 입국하였을 때,
대장암 4기를 진단받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암투병 끝에 2010년 1월 14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새벽 5시 35분에
살레시오회 형제들과 가족들 그리고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종하였다(향년 48세).
유해는 전라남도 담양군 천주교 공동묘역 살레시오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그의 이야기는 살레시오회 잡지 《살레시오 가족》과,
까리타스 수녀회의 《생활성서》에 연재되었고,
《친구가 되어주실래요》라는 단행본으로도 소개되었다.



[소속]
살레시오회 소속 선교사(Salesians of Don Bosco,
돈 보스코의 살레시오회: 청소년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가톨릭 활동수도회, 전세계 130개국 1만 5천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두번째로 큰 수도회)
천주교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파견 선교사
마지막 사목지: 前 수단 톤즈 돈 보스코 선교병원 원장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출판사 - 생활성서, 2009년):
이태석 신부가 생활성경에 연재한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증보판》(출판사 - 생활성서사, 2010년)
《당신의 이름은 사랑》(출판사 - 다른우리, 2011년):
2004년부터 2008년 사이에 남수단 룸벡교구 톤즈에서
이뤄진 강론이 담겨 있다.
《내 친구 쫄리 신부님》(출판사 - 생활성서사,
2011년 원작 이태석/글·그림 신명환): 만화로 만나는 이태석 신부



[사후 기념]
2010년 9월,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 삶을 그린 영화
《울지마, 톤즈》가 개봉되었다.
2011년 1월 14일에는 선종 1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1999년 12월 24일 오후 4시 KBS tv에서는
《성탄특집 이태석 신부 세상을 울리다
- 수단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 신부. 울지마, 톤즈》가 방송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구수환 프로듀서는
제20회 한국가톨릭매스컴 대상을 받았으며,
대상 상금 전액을 아프리카 톤즈 병원에 기부했다.

2011년 6월 1일 고 이태석 신부를 기리기 위해
‘이태석 기념사업회’가 창립되었다.
12월 홍보대사로 배우 안재모가 위촉되었다.

2011년 외교통상부가 이태석 신부의 봉사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태석상을 제정했다.
2011년 11월 23일에 첫 수상자로 2003년부터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의료봉사를 해온
외과 전문의 이재훈(44)씨를 선정했다.

2020년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 사업 요약:
2020년 1월 9일 "울지마 톤즈2: 슈크란 바바" 개봉 예정
(KBS미디어 제작, 살레시오회 제작지원 및 감수)

2020년 1월 12일 "이태석 선종 10주기 기일미사: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 -> 전남 담양 천주교묘역"

2020년 1월 14일(화) 이태석 기념관 개관(부산광역시 서구 톤즈공원 내 위치),
부산 서구청 건립, 살레시오회 위탁 운영



----------------------------------------------



[故 이태석 신부가 뿌린 사랑, 의사 57명으로 '부활'하다]

조 을선 기자

..(중략)..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교과서로 기억됐으면"

기자 :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의 평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구수환 감독 : '영화를 보며 세 번 울었다'는
평이 기억에 남습니다. 첫 번째는
남수단 제자들이 '고향의 봄' 노래를 연주할 때,
두 번째는 제자들이 한센인 마
을에서 진료할 때, 그리고 세 번째는 제자들이
이태석 신부의 묘지 앞에 의사 자격증과 약사 자격증,
대학 졸업장을 올려놓고 통곡할 때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영화 <울지마 톤즈>의 울음은 그리움과 슬픔이었는데
이번 영화 <부활>에서의 울음은 굉장히 희망적인
울음이었다는 평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net

기자 :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구수환 감독 : 단 한 분이라도 더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의 삶을 통해 '이렇게 사는 것이 진짜 행복이구나',
확신을 갖게 되시면 좋겠습니다.
영화 <부활>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교과서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

THE LIFE OF FATHER LEE TAE SEOK

South Sudan is one of the most poverty-ridden countries
in the world. British explorer Samuel Baker
originally established it as a colony named Equatoria in 1870,
but the colony later joined with Sudan,
which was another former British colony, in 1947.
When the Arab Khartoum government, a reigning government
at the time, did not grant political participation
to the southern populace, the country plunged into
two bloody civil wars. The first civil war lasted
from 1955 to 1972, and the second civil war lasted
from 1983 to 2005. During both of the civil wars,
an estimated 2.5 million people died.
Most of the casualties were civilians who died from
starvation and drought. After numerous peace talks,
South Sudan declared independence in July 2011.

Even after independence, armed conflicts
between the South Sudanese government and
the opposition forces riddled South Sudan.
Currently, there is a peace agreement
between the South Sudanese government and
the opposition forces to create a transitional government
by February 2020. This is the country where
Father Lee Tae Seok, nicknamed “the Schweitzer of Sudan”
found his calling.

Who is Father Lee Tae Seok?
Father Lee Tae Seok was born in 1962 in Busan,
South Korea. After losing his father at the age of 9,
Fr. Lee’s mother supported the family by working
as a seamstress in a market in Busan.
After graduating from medical school in 1987,
Fr. Lee worked as an army medical surgeon until 1990.
In 1991, he entered a Salesian seminary,
and after becoming a priest in June 2001,
he went to South Sudan as a deacon in November 2001.
Here, Fr. Lee saw the harsh reality of South Sudan.
The sight of lepers and Hansen’s disease patients made a
deep mark on his memory. Fr. Lee’s fellow missionaries
reported that the sight he witnessed overcame him to
the point where he had to run into a bush.
After his ordination in June 2001,
Fr. Lee returned to South Sudan.

Father Lee’s Contributions to South Sudan
After revising his medical knowledge about
tropical diseases in a Kenyan hospital,
Fr. Lee made his way to a small South Sudanese village
named Tonj.
Fr. Lee made many contributions to the people of Tonj.
He dug wells to provide more sources of water and
cultivated a field to grow crops and vegetables
for the villagers. Fr. Lee also erected
a medical clinic in Tonj. In this clinic,
he treated over 300 patients on a daily basis.
In addition to daily clinical duties,
Fr. Lee also went out in his Jeep to find patients
who could not travel to his clinic.
As words about his clinic started to spread
throughout the region, an increasing number of
patients came to it. Eventually,
Fr. Lee erected a bigger clinic with the help of
the villagers of Tonj.

Father Lee Helps the Youth
In addition to his medical contributions,
Fr. Lee also made a remarkable mark upon the youth of Tonj.
After erecting his clinic, he established schools and
other facilities to educate the youth of Tonj.
In these schools, he taught math and music for
the children of Tonj.
It is during this time that Fr. Lee established
the Don Bosco Brass Band. In order to establish this band,
Fr. Lee asked many of his friends in South Korea
to send him crates of instruments.
The Don Bosco Brass Band traveled throughout
South Sudan to spread the message of peace
in war-torn South Sudan through music.

Father Lee’s Legacy
Fr. Lee’s contribution to the people and
the youth of Tonj left a deep mark. After receiving
a cancer diagnosis in 2008, Fr. Lee passed away in January 2010.
He was 47 years old. As of 2018,
Fr. Lee’s life and efforts in South Sudan are
in social studies textbooks. However,
Fr. Lee’s legacy stretches beyond just textbooks.
In 2018, a former student of Fr. Lee became a doctor.
Dr. Thomas Taban Akot graduated from Inje University,
which was Fr. Lee’s alma mater.
In his interview with Hankyoreh newspaper in South Korea,
Dr. Akot recounts the effect Fr. Lee had in his life.
Dr. Akot told Hankyeoreh,
“I could never have been a doctor had it not been
for Father Lee,” expressing his desire to carry
on the wishes of Father Lee Tae Seok.

Father Lee Tae Seok’s life is a story of compassion.
Through his actions and efforts,
Fr. Lee exemplified the message that compassion and
solidarity can be a powerful force for change.
Fr. Lee is also a powerful reminder that
an individual is capable of changing the lives
of numerous people. The country’s textbooks commemorate
Fr. Lee Tae Seok’s work of love and compassion.
After Fr. Lee’s passing, the Salesian order in Tonj
is continuing his mission.
As South Sudan moves toward a transitional government,
many hope that South Sudan will remember Father Lee’s message
of love and peace. (by YongJin Yi)

(from naver.com wikipedia.org 나무위키 등, 추천자: 김용립)



Christian, Contributions, Christ, influence~
(PIG: time-variant)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C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  0 1 2 3 4 5 6 7 8 9

Social Name Portal 한글 세계이름 포털: 한국.net   Wopen.net   yungbkim@nate.com
Selected/Recommended Youtube Videos/Images are shown.
Contents-Owner: if you don't want to be shown: please send email to us.
shared by link
웹프로그래밍(한국.net 사례기반) & 벤처창업 특허 RFP 표준(강의용 PDF파일 제공)-김영복 저
웹프로그래밍(한국.net 사례기반)&벤처창업 특허 RFP 표준(강의용 PDF파일 제공),롤모델100명-김영복 저
웹프로그래밍(한국.net 사례기반)&벤처창업 특허 RFP 표준(강의용 PDF파일 제공),롤모델100명-김영복 저
벤처창업 특허 RFP 표준(강의용 PDF파일 제공)- 김영복 저
웹프로그래밍 (한국.net 사례기반) - 김영복 저, 실습 사이트: w3schools.com
Role Model 100명 from 한국.net
한국.net
Name Por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