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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Honore de Balzac,작가, Novelist, France
오노레 드 발자크 (Honore de Balzac)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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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799년 5월 20일
프랑스, 투르



[사망] 1850년 8월 18일 (51세)
프랑스, 파리

[직업] 소설가, 극작가
[배우자] Ewelina Hanska

[데뷔] 1829년 소설 '올빼미 당원 (Les Chouans)'

[학력사항]
소르본느대학교 법학 중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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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년 5월 20일
~ 1850년 8월 18일)는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는 쉰한 살이란
길지 않은 생애 동안 100여 편의 장편소설과
여러 편의 단편소설, 여섯 편의 희곡과 수많은 콩트를
써낸 정력적인 작가이다.



[생애]
1799년 투르에서 태어난 발자크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평생 자유롭지 못했다.
자기보다 서른두 살이나 많은 남자와 사랑없는 결혼을 한
발자크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유모에게 양육을
맡기는가 하면, 겨우 여덟살 때 기숙학교로 보내진 뒤
6년 만에 쇠약해진 심신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를 찾지 않았다. 이러한 '불행한 기혼녀'와
그 여성이 지닌 냉정한 모성은 발자크 소설의
주요한 모티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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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열여섯 살부터 법률 공부를 하면서
공증인 사무실의 서기로 일했으나 스무 살이 되던 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가족에게 1년의 유예기간을 얻어
레디기에르 가의 누추한 다락방에서 예비작가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발자크가 자신의 이름으로
작가적 명성을 얻기까지는 10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희곡작가가 되려던 처음의 의도를 포기하고 가명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20대 초반, 스물두 살 연상의 베르니 부인을
만나 연인인 동시에 문학적 조언자로서 오랫동안
그녀를 의지처로 삼게 된다.
이 이외에도 발자크는 쥘마 카로를 비롯하여
다브랑테스 공작 부인, 카스트리 후작 부인 등
많은 여인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많은 작품의 여주인공에게서 그 여인들의
단편적 초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이십대 중반에 시도한 인쇄업의 실패로 많은 빚을
지게 된 발자크는 평생 빚쟁이에 쫓기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지금은 ‘발자크의 집’이란 이름으로 박물관이 된,
당시 발자크가 기거했던 파시의 집 뒷문에 얽힌
일화는 유명하다. 오후 네시에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자정부터 다음날 낮까지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소설을 썼던 발자크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피해 하녀이자 정부였던 브뤼뇰 부인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포도주 박물관’으로 통하는 뒷골목으로 도망치곤
했던 것이다. 포도주 박물관의 한 켠을 이루고 있는 동굴에
등불을 든 발자크 상이 서 있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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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상상하기 힘든 작업의 결과 발자크는 본명으로
작품을 발표하여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1830년 무렵부터
마지막 소설 ≪가난한 친척≫을 발표한 1848년까지 2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100여 편의 소설을 남길 수 있었다.
프랑스 낭만주의가 꽃을 피운 시대에 사실주의의 문을
연 발자크는 1841년 그동안 자신이 써낸 모든 작품과
앞으로 써낼 작품의 목록을 가지고 {인간희극}이란 총서를
기획한다.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를 지닌 하나의 완전한
건축물을 꿈꾸었던 그는 뷔퐁의 박물학의 영향을 받아
여러 종의 동물들로 분화된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에도 각자가 속한 활동 영역에 따라 여러가지
전형적인 인간이 존재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등장인물만 2천여 명이 넘는 ≪인간희극≫은 대혁명 직후부터
1848년 2월 혁명 직전까지 프랑스 사회의 파노라마를
정치, 경제, 사회적 영역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내밀한
사적 영역까지 넘나들면서, 또한 파리 뿐만 아니라
지방과 시골까지 아우르면서 어느것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자 한 발자크적 야심의 산물이다.
비록 계획했던 작품들로 온전히 채워지진 못했지만
≪인간희극≫은 프랑스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역작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중에서도 ≪외제니 그랑데≫를 포함하여 ≪고리오 영감≫,
≪사촌 베트≫, ≪골짜기의 백합≫, ≪마법 가죽≫,
≪루이 랑베르≫, ≪사라진 환상≫, ≪세라피타≫,
≪미지의 걸작≫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고리오 할아버지> <골짜기에 핀 백합>
<사촌 누이 베트> 등이 유명하다.
그는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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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에 쫓기는 형편과는 별개로 스스로 ‘문학의 나폴레옹’이
되고자 했던 발자크는 글을 쓰기 위해 하루에 40잔 가까이
커피를 마신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런 극단적인 과도함은
그에게 돌이키기 힘든 심장질환을 안겨준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열정적인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발자크의 삶은 작가적 재능을 위해서도,
또 어렵게 얻은 사랑을 위해서도 지나치게 빨리 소진되어 버린다.
익명의 여성독자로부터 받은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된
한스카 부인을 향한 발자크의 한결같은 사랑은 그녀의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8년이나 기다린 끝에 가까스로 결실을 맺는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녀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는
단순한 사랑의 증표를 넘어 발자크 문학세계의 세세한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한스카 부인은 발자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발자크는 그녀와 결혼한 지 불과 5개월 만인
1850년 8월 18일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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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요약]
19세기 전반 프랑스의 소설가로 사실주의의 선구자이다.
나폴레옹 숭배자였다. 작중인물의 재등장 수법을 썼다.
종합적 제목《인간희극》아래, 대표작은《외제니 그랑데》,
《절대의 탐구》,《고리오 영감》,《골짜기의 백합》,
《농민》등이다.

[주요저서] 《인간희극(人間喜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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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원으로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루아르강(江)
유역의 도시 투르에서 출생.
원래의 성은 Balssa이지만, 아버지 때부터 귀족처럼
드 발자크라 참칭(僭稱)하였다.
어머니는 파리의 상인 집안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농민 출신이었는데, 프랑스혁명시대의 혼란기를 틈타
관리로 출세하였으며, 투르는 그 임지(任地)였다.
발자크가 학령(學齡)에 이르렀을 때는 나폴레옹이 전유럽에
군림하던 무렵이었다.

그가 16세 무렵에는 이미 권좌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낭만주의 시대는 시인 ·소설가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발자크도 나폴레옹의 대단한 숭배자였으며,
그의 작품에서는 도처에 황제의 이름이 나온다.
그에게 있어서 나폴레옹은 유럽 통일의 위대한 조직자였으며,
나폴레옹이 칼로써 이룩하지 못한 것을 펜으로
이룩하겠다는 것이 그의 염원이었다.
17세 되던 해 가을부터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소르본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는 한편, 변호사와 공증인(公證人)
사무소에서 법률실무를 3년간 배웠다.

그러나 그의 야심은 문학자가 되는 것이었으며,
졸업 직전에 대학을 중퇴, 바스티유 광장에 가까운 초라한
변두리 다락방에 틀어박혀 습작생활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크롬웰》이라는 제목의 5막 운문(韻文)
비극을 지었지만, 주변의 반응은 전혀 없었다.
소설로 전환한 그는 적어도 10편의 장편을 쓰고,
또 변변찮은 신문에 잡문(雜文)을 써서 투고하였다.
또한 인쇄 ·출판 ·활자주조에도 손을 대었으나
크게 실패하였다. 이러한 역경에도 그를 위로하고
격려해 준 사람은 20여 세나 연상인 헌신적인
애인 베르니 부인이었다.

소설 《골짜기의 백합 Le Lys dans la Vallee》(1835)은
그와 같은 애정의 기념비로 쓴 작품이다.
베르니 부인이 죽은 후로는 폴란드의 귀족 한스카 부인이
발자크의 남은 반생을 지배하였으며,
그는 죽기 직전에 그녀와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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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에 소설 《올빼미당원 Les Chouans》과
《결혼의 생리학》으로 문단에 첫 걸음을 내디딘 직후에
옛 왕정(王政)이 무너지고 부르주아지가 지지하는
민주적 왕정(7월왕정)이 들어섰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귀족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승리였으며, 1830년의 7월혁명은 부르주아지의 제패였다.
이는 프랑스 자본주의의 상승기였으며, 정권이 귀족의
손을 떠나 금융자본의 수중에 들어간 때였다.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부르주아란 속물(俗物)의 별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발자크는 같은 시대에 속하면서도
부르주아의 왕성한 생활력과 실행력을 사랑하였고,
거기서 생긴 과학의 진보와 산업의 발달을 찬양하였다.
이처럼 부르주아 사회의 원리에 공명할 수 있었던 발자크는
그 원리에 입각하여 눈앞에 있는 사회의 모든 모습을
아름답게 그렸다. 그가 사실주의의 가장 훌륭한 선구자로
간주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올빼미당원》 이후의 모든 소설을 작중인물의
재등장이라는 수법으로 연쇄하였으며
(이는 《고리오 영감 Le Pere Goriot》으로부터 시작된다),
전 작품에 대하여 《인간희극(人間喜劇) La Comedie Humaine》
이라는 종합적 제목을 붙였다. 이는 모두 70편 가량으로
등장인물이 2,000명에 이르며 대표작품으로는
《외제니 그랑데 Eugénie Grandet》(1833) 《절대의 탐구》
(1834) 《고리오 영감》(1834∼35) 《골짜기의 백합》
《농민》(1844) 《종매(從妹) 베트 La Cousine Bette》(1846)
《종형(從兄) 퐁스 Le Cousin Pons》(1847) 등이 있다.
《인간희극》은 그가 말했듯이 가공적(架空的) 내용이지만,
‘하나의 완전한 사회’를 표현하는 것이며,
19세기 부르주아 사회에 관한 풍부하고 상세한 지식을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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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또한 “예술의 목적은 자연을 모사(模寫)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도 말한다.
이는 《인간희극》의 세계가 단순히 발자크의 눈앞에
전개되는 사회가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오히려 발자크의
세계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인간희극》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작중인물들의 백열적(白熱的)인 삶이다.
그 곳에는 욕구의 무한, 탐구의 무한, 사상의 무한,
감정의 무한을 추구하는 초현실적인 인물들이 북적거린다.
이 점에 있어서 발자크는 그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소설가 플로베르, 졸라와도 전혀 다르다.

[오노레 드 발자크 연보]
1799 프랑스 트루 출생.
1816 파리 대학 법학부에 입학.
1819 5막의 운문 비극 《크롬웰 Cromwell》 집필.
1825 익명으로 《반느 콜로르 Wann-Chlore》 출간하는 등
1821년 부터 가명과 익명으로 다수의 작품 발표.

1829 역사 소설 《올빼미당원 Les Chouans》을 처음으로
자신의 본명으로 출간.

1831 《마법 가죽 Le Peau de Chagrin》 출간.
이 작품의 성공으로 문단에서 확고한 지위를 얻음.

1832 《우스꽝스러운 콩트》, 《갈색 콩트》 출간.

1833 《시골 의사 Le Medecin de campagne》 출간.

1834 12월부터 《파리 평론》에 《고리오 영감
Le Pere Goriot》 연재 시작.

1835 《고리오 영감》 출간.

1836 4월 말부터 5월까지 국민군 소집에 불응해 투옥됨.
장편 소설 《골짜기의 백합 Le Lys dans la vallée》 출간.
가명 시절의 작품들을 모아 《아라드 생토뱅 전집》 출간.

1839 연극 《베아트릭스 Vautrin》 발표.
1845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음.
1850 8월 18일 파리 자택에서 건강 악화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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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e de Balzac

[Born] Honore Balzac
20 May 1799
Tours, Indre-et-Loire, France

[Died] 18 August 1850 (aged 51)
Paris, France

[Resting place] Pere Lachaise Cemetery, Paris
[Occupation]
Writer, critic, journalist, printer
[Nationality] French
[Alma mater] University of Paris
[Genre] Novel, dramaturgy, essay
[Literary movement] Realism

[Notable works]
La Comedie humaine ·
Eugenie Grandet ·
La Peau de chagrin ·
Le Pere Goriot ·
Colonel Chabert ·
La Rabouilleuse ·
Le Lys dans la vallee ·
Illusions perdues ·
Splendeurs et miseres des courtisanes

[Notable awards]
Legion Honneur Chevalier Legion d'honneur

[Years active] 1829~1850

[Spouse] Ewelina Hanska (m. 1850)

Honoré de Balzac (born Honore Balzac, 20 May 1799
~ 18 August 1850) was a French novelist and playwright.
The novel sequence La Comedie humaine,
which presents a panorama of post-Napoleonic French life,
is generally viewed as his magnum opus.

Owing to his keen observation of detail and
unfiltered representation of society,
Balzac is regarded as one of the founders
of realism in European literature.
He is renowned for his multi-faceted characters;
even his lesser characters are complex,
morally ambiguous and fully human. Inanimate objects
are imbued with character as well; the city of Paris,
a backdrop for much of his writing, takes on many
human qualities. His writing influenced many famous writers,
including the novelists Émile Zola, Charles Dickens,
Gustave Flaubert, Jack Kerouac, and Henry James,
filmmakers Akira Kurosawa and Eric Rohmer as well
as important philosophers such as Friedrich Engels.
Many of Balzac's works have been made into films,
and they continue to inspire other wri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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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nthusiastic reader and independent thinker
as a child, Balzac had trouble adapting to the
teaching style of his grammar school.
His willful nature caused trouble throughout his life
and frustrated his ambitions to succeed in the world
of business. When he finished school,
Balzac was apprenticed in a law office,
but he turned his back on the study of
law after wearying of its inhumanity and banal routine.
Before and during his career as a writer,
he attempted to be a publisher, printer,
businessman, critic, and politician; he failed
in all of these efforts. La Comedie Humaine reflects
his real-life difficulties, and includes scenes
from his own experience.

Balzac suffered from health problems throughout his life,
possibly due to his intense writing schedule.
His relationship with his family was often strained
by financial and personal drama, and he lost more
than one friend over critical reviews.
In 1850, Balzac married Ewelina Hanska,
a Polish aristocrat and his longtime love;
he died in Paris five months later.

(from naver.com wikipedia.org 지식백과 두산백과)


Coffee plus & plus~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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