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G 박수근 Park Su-g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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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Park Su-geun, 朴壽根, 서양화가, Korea
박수근 Park Su-geun 朴壽根 서양화가
[별칭] 호(號)는 미석(美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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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14년 2월 21일
일제 강점기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정림리
(現 대한민국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

[사망] 1965년 5월 6일 (51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전농동

[국적] 대한민국

[분야] 서양화

[가족] 아들 박성남, 딸 박인숙
[데뷔]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학력사항]
1921 ~ 1927 양구공립보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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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사항]
1962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1953 ~ 1964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1945 금성중학교 미술교사
1940 평안남도 도청 사회과 서기



[수상내역]
2002 문화관광부선정 5월의 문화인물
1999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1980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1955 제7회 대한미술협회전 국회문공위원장상

[요약]
한국의 화가. 어렵고 고단한 시절을 힘겹게 살다간
대표적인 서민화가로 회백색의 화강암과 같은 독특한
마티에르와 단순한 검은 선의 기법으로 가난하고 소박한
서민들의 생활상을 화폭에 담았다. 대표작에 《빨래터》,
《나무와 두 여인》, 《아기 업은 소녀》 등이 있다.



[직업] 서양화가

[소속]
前 서라벌예술학교 전임교수
前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수상] 1980년 은관문화훈장 추서

[종교] 개신교(감리교)

[배우자] 김복순

[자녀] 슬하 2남 1녀

[부모]
부 박향지(朴亨智)
모 윤복주(尹福珠)

박수근(朴壽根, 1914년 2월 21일 ~ 1965년 5월 6일)은
대한민국의 서양화가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號)는 미석(美石)이다.
회백색을 주로 쓰면서, 단조로우나 한국적인 주제를
소박한 서민적 감각으로 다루었다.

작품으로 「나무」, 「복숭아」,「노인과 소녀」,
「빨래터」등이 있으며, 그의 고향인 강원도 양구군에는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건립되어 있다.



[생애]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현 양구읍) 정림리 출생. 강원도
양구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강원도 인제군에서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하였다. 1932년 제11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
입선함으로써 화단에 등장하였다. 해방 후 월남하여 1952년
제2회 국전에서 특선, 미술협회전람회에서 입상하였다.
1958년 이후 미국 월드 하우스 화랑·조선일보사
초대전·마닐라 국제전 등에 출품하는 등 국내외 미술전에
여러 차례 참가하였다. 1959년에 제8회 국전 추천 작가가 되었고,
제11회 국전에서는 심사위원이 되었다. 그는 회백색을 주로 하여
단조로우면서도 한국적 주제를 소박한 서민적 감각으로
충실하게 다루었고, 한국인 화가 중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평범한 한국의 서민상을 주제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 1910년대
1914년 -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양구면(楊口面)
정림리(井林里)에서 2월 21일(음력 1월 28일) 태어남

1918년(4세) - 마을 글방에 다니며 한문을 배우기 시작함

♦ 1920년대
1921년(7세) - 양구 공립 보통학교 입학

1927년(13세) - 양구 공립 보통학교 졸업. 가난으로
중학교 진학 못 함

♦ 1930년대
1932년(18세) -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처음으로 입선
'봄이 오다'이후 1943년까지 아홉 차례 입선함

1935년(21세) -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사망하자 춘천으로 가
그림 공부를 함

1936년(22세) - 제 15회 [선전]에‘일하는 여인’수채화
출품으로 두 번째 입선함

1937년(23세) - 제 16회 [선전]에‘봄’으로 세 번째 입선함

1938년(24세) - 제 17회 [선전]에‘농가의 여인’입선함

1939년(25세) - 제 18회 [선전]에‘여일(麗日)’입선함



♦ 1940년대
1940년(26세) - 2월 10일 강원도 금성 감리교회에서
김복순과 결혼, 5월 평양으로 가 공무원(평안남도 도청
사회과의 서기)으로 일함

1941년(27세) - 제 20회 [선전]에‘맷돌질하는 여인 입선함

1942년(28세) - 제 21회 [선전]에‘모자(母子)’입선함

1943년(29세) - 제 22회 [선전]에‘실을 뽑는 여인’입선함

1945년(31세) - 815광복 후 강원도 금성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침

♦ 1950년대
1950년(36세) - 6.25전쟁 후 남쪽으로 내려옴

1951년(37세) - 전라도 군산에서 막노동을 하며 그림을 그림

1952년(38세) - 미군부대에서 초상화 그리는 일을 시작함

1953년(39세) - 제 2회 대한민국미술전 서양화부에
‘우물가(집)’이 특선,‘노상에서’이 입선, 창신동에 집을 마련함

1954년(40세) - 제 3회 국전에서 ‘풍경’과 ‘절구’가 입상,
이어 제 4회, 5회 국전에서도 입선함

1957년(43세) - 제 6회 국전에서 ‘세 여인’이 낙선함

1959년(45세) - 제 8회 국전의 추천작가로
‘앉아 있는 여인’을 냄, 이어 9회 10회 국전에 작품을 냄

♦ 1960년대
1962년(48세) - 한일국제교류전에 ‘나물’을 냄,
제 11회 국전에서 서양화부 심사위원으로 ‘소’와
‘유동’을 냄, 오산 주한미공군사령부 도서관에서
박수근 특별 초대전이 열림

1963년(49세) - 왼쪽 눈 실명, 전농동으로 이사함.

1964년(50세) - 제 14회 국전 추천작가로‘할아버지와 손자’를 냄

1965년(51세) - 4월 초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해 5월 5일에 퇴원함

5월 6일 새벽 1시 전농동 집에서 별세, 경기도 포천군 소홀면
동신교회 묘지에 안장. 제 14회 [국전]에 유작 ‘
유동(遊童)’ 전시. 10월 6일~ 10일 소공동 중앙공보관에서
유작전 79점의 작품이 전시됨.



[경매와 위작 논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아낙들과 아이들을 그린 그의 그림
〈노상〉은 2006년 12월 14일에 열린 케이 옥션 사의 경매에서
10억 4천만 원이라는 대한민국 최고가 기록을 세우며 팔렸다.
그러나 2007년 3월, 그의 그림 〈시장의 사람들〉이 25억에
낙찰되어 그 기록을 경신하였고, 다시 동년 5월에
그의 작품 〈빨래터〉가 45억 2천만원에 낙찰되어
최고 기록을 경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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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품 〈빨래터〉를 두고 서울옥션에서
구체적인 감정결과를 공개하지 않아서 2007년 12월
미술 잡지 〈아트레이드〉에서 그의 작품의 위작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였고, 이를 문제삼아 서울옥션은 아트레이드를
상대로 30억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였다.
2009년 1심 결과 "위작은 아니지만 정당한 언론활동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로 기각하였다.

[서훈]
1980년 은관문화훈장 (2등급,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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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Park Sookeun, 朴壽根]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려는 꿈을 갖았다. 그는 양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상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18세 되던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
《봄이 오다》를 출품하여 입선했다.
이후 선전에서 여러 차례 수채화와 유화로 입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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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제2회 국전에서 《집》이 특선으로 선정되었다.
1955년 제7회 대한미협전에서는 《두 여인》으로
국회문교위원장상을 받았다.

박수근은 어렵고 고달픈 시절을 힘겹게 살다간
대표적인 서민화가이다. 6.25 동란 중 월남한 그는
부두 노동자로 일하거나, 미8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의 예술철학은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과 진실한 삶의
내면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시골집과 나무, 절구질하는 아낙네, 집을 지키는 노인,
아기 업은 소녀 등 서민적인 삶의 모습을 암벽에
음각하듯 화폭에 아로새겼다. 그의 작품은 초기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일관성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바로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법 면에서 보면 1950년대 초까지는 대상을 검은 윤곽선으로
그리고 윤곽선 안쪽은 일률적인 색채로 처리해 화면 자체가
극히 평면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195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두껍게 쌓아올려진
색층을 통해 깊은 색조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마티에르는
서로 응고되면서 구조화 되어갔다. 만년의 작품에서는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단계에 돌입하여 마멸된
화강암의 표면을 보는 것 같은 거친 질감만이 남게 되었다.
기름기를 걸러낸 거칠거칠한 표면층은 우리 자연의
건조한 풍토와 연결되며, 또한 한 시대의 감정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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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이 오늘날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서구의 화풍을 답습하던 당시의 한국 화단에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기법과 같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고,
그러한 독창성을 통해 한국인의 서민적 생활상과 정서를
집약적으로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유학파들처럼 모더니즘의 기표 위에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에서
그림의 소재를 불러냈으며, 삶의 지층을 다지듯 물감을 쌓고
굳히고 두텁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창출해냈다.

“나의 그림은 유화이긴 하지만 동양화다”라는 박수근의 말처럼,
유화이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는 화강암처럼 거친 듯 소박한
한국미의 전형이 느껴진다. 그는 1959년부터 1964년까지 국전
추천작가로 활동했으며, 1962년 제11회 국전에서는
서양화부 심사위원을 지냈다.
그는 1965년 간경화와 응혈증이 크게 악화되어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 간 그는 사후에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 작가 가운데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하고 있다.
2002년에는 그의 고향인 강원도 양구군에 박수근미술관이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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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작품에는 《창신동 집》(1950년대), 《복숭아》(1957),
《빨래터》(1950년대), 《시장의 사람들》(1961),
《나무와 두 여인》(1962), 《농악》(1962),
《굴비》(1962), 《노상》(1960년대),
《아기 업은 소녀》(1960년대), 《여인들》(196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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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Su-geun (February 21, 1914 - May 6, 1965)
was a Korean painter.



Hailing from Yanggu County, Gangwon Province,
South Korea Park attended Yanggu Public Elementary School
when he was younger, and then taught himself painting
as was a teenager. In 1932, he made his debut
in painting circles with his work titled
'Spring Is Gone' when it was selected for
the 11th annual Seonjeon painting contest.
Park ended up being selected a total of eight times
in the contest until 1944. In 1953, he participated
in the 2nd annual National Art Exhibition and won 1st place.
Soon after, he became a full-time painter and won
numerous prizes on ten different occasions.
In 1959, he got recommendation from the National Art
Exhibition and served on the screening committee
during the early 1960s.

In 1963, Park lost eyesight in one of his eyes
due to cataract, and died of liver cirrhosis
at the age of 52 in 1965. For much of his life Park
struggled with poverty and lonesomeness
but during the 1980s, he was posthumously awarded
the Eun-gwan (silver crown) of Order of Culture Merit.

He predominantly used light gray color,
to depict simple yet Korea-like themes in folklore sense,
and is evaluated to have used the Korean folklore themes,
in a common, yet outstandingly creative manner amongst
all the Korean artists.

(from naver.com 두산백과 wikipedia.org)


Domestic, Difficult, Depict, Direction, influence(+) ~
(PIG: time-variant)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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