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배호 裵湖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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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裵湖, Bae Ho, 배신웅, 가수, Singer, Korea
배호 裵湖 (배신웅) 가수
황소자리 말띠
[본명] 배신웅 裵信雄
한국.net

[출생] 1942년 4월 24일
중화민국 산둥 성 지난

[사망] 1971년 11월 7일 (29세)
대한민국 서울 성북구

[데뷔] 1963년 1집 앨범 [두메산골]


[수상내역]
2003 옥관문화훈장
1967 MBC 10대 가수상

[직업] 가수
[악기] 드럼
[활동 시기] 1957년 ~ 1971년
[배우자] 無
[가족]
배국민(아버지)
김금순(어머니)
배경진(친백부)
배명신(여동생)
김광옥(외숙부)
김광수(외숙부)
김광빈(외숙부)
안마미(외숙모)
배달근(재종증조부)
배상태(9촌 삼종숙부)
안건마(사돈)

[학력] 부산 삼성중학교 중퇴
[종교] 개신교

[관련 활동]
김광빈 악단 싱어
김인배 악단 싱어

배호(裵湖, 1942년 4월 24일 ~ 1971년 11월 7일)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명(本名)은 배신웅(裵信雄)이며,
아명(兒名)은 배만금(裵晩今)이다.
1960년대 후반에 〈누가 울어〉,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신장염 투병하다가 30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생애]
배호는 1942년 4월 24일, 중화민국 산둥 성
지난(현재의 산둥 성과 지난은 모두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에서
광복군이었던 배국민과 그의 부인(夫人)인 김금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배국민은 평안북도 철산 출신이며,
어머니 김금순은 신의주 출신이다.
출생 당시 이름은 배만금(裵晩今)이며, 중학교 1학년생 때
배신웅(裵信雄)으로 개명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부모를 따라
고국에 귀국한 이후 경기도 인천의 수용소에서 생활하다
1946년 4월부터 서울 창신동의 적산가옥에서 살았다.
서울창신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경상남도 부산 삼성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56년 2학년 중퇴했다.

중학교 중퇴 이후로도 가난에 시달렸으며,
1957년에서 1964년까지 서울중앙방송 악단장과
1964년에서 이듬해 1965년까지 TBC 동양방송 악단장을
지낸 외숙부 김광수 그리고 MBC 문화방송 초대 악단장을
지낸 김광빈 악단, 동화, 천지, MBC악단, 김인배 악단 등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2인조 밴드를
결성해 서울 낙원동 프린스 카바레 등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1966년 신장염에 걸렸으며 1967년 배상태가 작곡한
〈돌아가는 삼각지〉를 발표했다. 그 후 신장염 투병중
1971년 11월 7일 성북구 미아10동 자택으로 오는 도중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숨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9세로,
미혼이었다. 묘지는 경기도 양주시 신세계 공원묘지에 있다.

1981년 실시된 MBC 특집 여론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로 선정되었으며,
2005년 6월 '광복 60년 기념 KBS 가요무대'
여론조사에서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은 국민가수 10인'으로 선정되었다.

[작품 활동]
가수 생활 5년 동안 10여 개 음반사에서 20여 장의
음반을 발매했으며, 총 300여 곡을 남겼다.
1963년(21세): 예명 ‘배호’로 데뷔, 데뷔곡 〈굿바이〉,
〈사랑의 화살〉 (오리엔트 레코드) 발표
1964년(22세)~1965년(23세): 데뷔곡 음반 취입 -
〈두메산골〉등 6곡 (톱 힛트 레코드), 캄보 밴드
'배호와 그 악단' 운영
1966년(24세): 신장염 발병, 〈황금의 눈〉 (지구 레코드)
및 〈홍콩 66번지〉 (신세기 레코드) 발표
1967년(25세) 〈누가 울어〉, 〈안개속으로 가 버린 사람〉

(뉴스타 전속) 등을 병상에서 발매
〈돌아가는 삼각지〉 (아세아 전속) 발표

1967년~1968년(26세): 각 매스컴 주최 행사에서 가수상 수상:
MBC 10대 가수상(라디오)·TBC 방송가요대상 등, 각종 영화 출연
1969년(27세)~1970년(28세): MBC 10대 가수상(TV) 등
(신세기 전속, 지구 전속) 가수활동 5년 동안 총 30여개
부문에서 각종 가수상 수상


1971년 7월(29세): 〈마지막 잎새〉, 〈영시의 이별〉등
마지막 음반 발표, 11월 7일 영면

[기타 비고 사안]
배호가 노래한 돌아가는 삼각지에 건설됐던 용산의 입체
교차로는 노래가 히트한 해인 1967년에 건설됐다가
1994년에 철거됐다. 현재는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배호길, 배호 동상 등이 남아있다.
1971년 11월 11일 예총 회관에서 치러진 장례식에는
소복을 입은 젊은 여인들이 수백 미터 늘어섰다고 한다.
차중락과 함께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알려질
정도로 음악성과 사후 인기가 상당한 가수이다.
전국에 모두 네 개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용산구: 〈돌아가는 삼각지〉, 묘지: 〈두메산골〉,
경주시: 〈마지막 잎새〉, 강릉시: 〈파도〉).

[가족 관계]
아버지: 배국민(1912년 출생 ~ 1955년 8월 21일 사망,
1946년 3월 6일 대한광복군 중사 전역.)
어머니: 김금순(1918년 11월 19일 출생 ~ 1995년 9월 9일 사망.)
큰아버지: 배경진(1910년 4월 18일 출생 ~ 1948년 12월 30일 사망,
1946년 12월 3일 대한광복군 상사 전역.)
여동생: 배명신(1953년 5월 6일 출생 ~ 2003년 1월 2일 사망)
외삼촌: 김광빈(1922년 10월 4일 출생 ~ 2008년 12월 1일 사망)
외숙모: 안마미(1937년 출생 ~ )

[학력]
1955년 서울 창신국민학교 졸업
1956년 부산 삼성중학교 중퇴

[서훈]
2003년 옥관문화훈장(4등급,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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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트로트의 새로운 전성기를 대표하는 남자가수.

1960년대 전반 스탠더드 팝이 새로운 주류로 등극함으로써
쇠락했던 트로트가 1964년 이미자가 부른 「동백아가씨」로
새롭게 인기를 얻으면서 부활하였다.
이 흐름을 타고 1960년대 후반에 최고의 인기를 누린
남자 트로트 가수이자 요절 신드롬을 남긴 가수로도 유명하다.

[생애와 활동사항]
독립운동을 했다고 알려진 부모 밑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해방 후 입국하여 동대문 밖 창신동에서 성장했다.
1955년 아버지가 죽자 부산으로 내려가 모자원에서 생활했으나,
삼성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1956년 상경하여
외삼촌 김광빈의 수하에서 대중음악을 시작하여
김광빈악단의 드럼 주자로 미8군 무대와 방송국 등에서 활동했다.
1964년에 「두메산골」, 「굿바이」로 음반을 내며
본격적으로 솔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1967년 신장염
발병으로 병상에서 노래한 「돌아가는 삼각지」가 히트하여
톱 가수 반열에 올랐고 「누가 울어」, 「안개 낀 장충단공원」

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1967년 방송사들이 수여하는
가수상을 휩쓸었다. 이로부터 타계 때까지 쉬지 않고
신곡을 냈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으며 심지어 휠체어에
의지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1971년 「마지막 잎새」를
유작으로 남기고 타계했다.


그가 부른 초기의 대표곡은 「두메산골」이 트로트일 뿐,
「굿바이」, 「차디찬 키스」 등 초기의 작품은 재즈나
라틴음악 등이 섞인 스탠더드 팝 계열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이후 트로트가 부활한
흐름을 타고 트로트 곡인 「돌아가는 삼각지」가 히트하면서
그는 1960년대 후반 트로트를 대표하는 남성 가수로 자리 잡았다.
그의 가창은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의 트로트 가수들과 달리,
스탠더드 팝의 남자가수들이 보여준 중후한 저음을 그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으로 강조하고 절정부에서 애절한 고음을 구사하는
방식으로, 오기택과 남일해에서 시작하여, 남진으로 이어지는
1960년대식의 새로운 남성 트로트 창법의 중심에 서 있다.
또한 인기 절정이던 29세에 타계함으로써 요절 가수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오랫동안 그를 모창(模唱)한 가짜 배호
음반들이 판을 치는 등, 긴 인기를 누린 가수이다.

[상훈과 추모]
2003년 10월 옥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삼각지의 한 거리가 ‘배호길’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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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e Ho

[Born] April 24, 1942
Shandong, China

[Died] November 7, 1971 (aged 29)
Seoul, South Korea

[Genres] Trot
[Occupation(s)] Singer
[Years active] 1963–1971

Bae Ho (April 24 ~ November 7, 1971) was
a South Korean singer, known as the "Elvis of Korean trot."
A statue commemorating his biggest hit,
"Return to Samgakji" stands in front of Samgakji Station in Seoul.

[Life and career]
Bae was born Bae Sin-ung in Shandong, China,
the son of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Bae Gook-min.
He moved to South Korea with his family
in 1945 following the end of the Japanese occupation.

Bae debuted as a singer in 1963.
His popularity grew after the 1967 release of
his song "Return to Samgakji" (돌아가는 삼각지),
which topped music charts for five consecutive months.
He ultimately released about 300 songs.

In 1966 he fell ill with nephritis and spent
his last years battling the disease. He died in 1971.

(from naver.com wikipedia.org 한국민족문화대백과)


Drum, Disease, influence ~
(PIG: time-variant)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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