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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
존 스튜어트 밀 [ John Stuart Mi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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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06년 5월 20일
영국, 런던, 펜톤빌

[런던 여행]


[사망] 1873년 5월 8일 (66세)
프랑스, 아비뇽

[남프랑스 아비뇽 여행]




[시대] 19세기 철학, 고전 경제학

[지역] 서양 철학

[학파] 경험주의, 공리주의, 자유주의

[연구 분야]
정치철학, 윤리학, 경제학, 귀납적 추리

[주요 업적]
공공 영역/사적 영역, 공리주의에서 쾌락의 위계, 자유주의,
초기 자유주의 페미니즘, 위해원칙, 밀의 방법

[대표분야] 정치철학

[대표이론] 공리주의

[대표저서] 공리주의

[관련철학자] 제러미 벤담



[요약]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1806년 5월 20일~1873년 5월 8일)은

영국의 사회학, 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로서,
논리학, 윤리학, 정치학, 사회평론 등에 걸쳐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경험주의 인식론과 공리주의 윤리학,
그리고 자유주의적 정치경제사상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공리주의는 대부이자 스승이었던 벤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여기에 생시몽주의와 낭만주의를 가미해서
나름의 체계로 발전시켰다.



『논리학체계』, 『정치경제학원리』, 『자유론』 등,
전 33권으로 이루어진 전집("Collected Works of John Stuart Mill",
University of Toronto Press)이 있고,

그 밖에 동인도회사에서 일하면서 집필한 수많은 보고서를 남겼다.

[개요]
밀(John Stuart Mill)은 1806년 제임스 밀(James Mill)의
장남으로 런던에서 출생했다.

[런던 여행]


제임스 밀은 벤담의 제자이자 친우(親友)로서
대학교육과 종교를 불신하였지만 아들 밀의 교육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밀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3세부터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7세에는 이미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8세부터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한 밀은
많은 문학적 저작들과 역사서를 섭렵했고,
12세부터는 논리학과 경제학도 학습해 나갔다.

밀의 이러한 정신적 성장과정은 분명 천재의 그것이었지만,
자만할까 두려워한 아버지의 교육으로 밀 스스로는 자신이
천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교우관계가 부족했고,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나이에 걸맞은 놀이 문화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천재적인 학문적 역량을 선보인 밀도
20세에 이르면서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겪게 된다.

프랑스 여행에서 알게 된 벤담주의에 대한 반감들,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이성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만은 아닌
자신의 감정 등이 원인이 된 이러한 위기는
밀이 24세가 되던 1830년까지 지속된다.

물론 그동안 밀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밀은 1823년에 아버지가 몸담고 있던
동인도 회사의 서기로 취직했고,

논리학과 경제학을 연구했으며,
아버지의 『웨스트민스터 평론』이나 벤담의 『증거론』
출간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네 인생의 목적이 모두 실현되었다고 가정해 보라.

… (중략) …

이것이 네게 큰 기쁨이요 행복이 되겠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밀의 위기는 “깊고 강한 감정을 가졌고,
투철하고 직관적인 지식을 가진”
테일러 부인(Harriet Taylor)을 만나면서 점차 극복된다.

이후 테일러 부인과는 20년 동안 순수한 교제를 지속하다가
남편 테일러씨가 사망한 후에 결혼하게 되는데,

당시 이들의 삼각관계는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화제였지만
당사자 세 사람의 이성적 행동으로 추문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밀은 이후에 테일러 부인과 『자유론』(On Liberty)을
공저하는데, 밀 스스로 이는 자신의 책 중에서

가장 오래 남는 책이 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고,
또 그에 걸맞은 명성을 획득한 밀의 대표작이 되었다.



『자유론』이나 『공리주의』(On Utilitarianism)가
밀의 생애 중반기에 쓰여진 주요 저작이라면

『논리학 체계』(System of Logic)나
『정치경제학 원리』(The Principle of Political Economy)는
그보다 조금 이전에,

『대의정치에 대한 고찰』(Considerations on
Representative Government)과 『여성의 예속』
(The Subjection of Women)은 그 이후에 쓰여진 밀의 주저들이다.

특히 『여성의 예속』은 당시로서는 드문
여성주의(feminism)적 시각을 반영하는 것으로
최근 새로이 주목받고 있는 저서라고 할 수 있다.

밀은 테일러씨가 사망한 1849년이래
이러한 저술과 결혼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그로부터 불과 7년 반만에 테일러 부인이
결핵으로 사망함으로써 비탄에 빠진다.

[찬조 "사랑은 꽃잎처럼" K-Pop]


그러나 그는 곧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여
웨스트민스터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한다.

입후보를 부탁하러 온 정당관계자들에게
밀은 자신은 의원이 되고자 하는 개인적 욕망이 없으므로

선거비용을 얻으러 돌아다니지 않을 것이며,
지역구의 이해에 관계하지도 않을 것이고,

특히 여성의 참정권을 지지한다는 점을 포함한
자신의 견해를 인정해 줄 것을 공약으로 제시한다.

뜻밖에 높은 지지를 얻어 의원으로 당선된 밀은
임기 동안 노동자 출신의원들을 지지하고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노력하는 등
매우 진취적인 의원활동을 전개하지만
3년 후에는 낙선하고 만다.

테일러 부인의 딸인 헬렌의 보살핌을 받고 있던 밀은
1873년 5월 8일, 아비뇽에서 "나는 내 일을 다 끝마쳤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66세를 일기로, 부인의 묘 옆에 안장되었다.

[추모 "행복했다... 안녕" K-Pop]


[생애 활동 및 연보 등]
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 런던의
펜톤빌(Pentonville)에서 태어났다.

[찬조 음악, Pentonville Road]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제임스 밀의 6남매 중 장남이었다.

존 스튜어트의 교육은 그의 아버지에 의해서 주로 이뤄졌고,
때로 제러미 벤담과 프란시스 플레이스(Francis Place)에게
도움을 받았다.

제임스 밀은 지극히 엄격한 방식으로 존을 양육하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잘못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동생들 말고는 같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여지를 차단했다.

벤담을 지지하고 관념 연합설에 찬성한 아버지 밀은
벤담과 자기가 사망한 후에 공리주의의 전파와 실천을
이어갈 후계자로서,

천재적인 지식인을 만들어낸다고 하는
명시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두드러지게 조숙한 아이였다.

세 살에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알고 있던 영어 단어에 상응하는 그리스어 단어들을 배웠다.

여덟살이 될 때까지 그는 이솝의 《우화들》,
크세노폰이 쓴 《퀴로스 왕의 아시아 원정기》(Anabasis),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그리스어로 읽었고,

루키아노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이소크라테스 그리고
플라톤의 대화편 중 여섯 편을 그리스어 문장으로 접했다.

아울러 영어문헌으로는 대단히 많은 분량의 역사책들을 읽었고,
산수를 터득한 상태에 도달했다.



여덟살부터는 라틴어와 유클리드와
대수(algebra)를 배우기 시작했고,
동생들에게는 가정교사 역할을 수행했다.

여전히 주로 역사책을 읽었는데,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타키투스, 호메로스,
디오니소스, 소포클레스, 유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투키디데스 등, 당시 일반 학교와 대학에서 읽히던 라틴어와
그리스어 고전 작품들을 모두 섭렵했다.

그리하여 열 살이 되었을 때에는
플라톤이나 데모스테네스의 원전을
술술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로 하여금 시를 공부하고 지어볼 필요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가 초기에 지은 시 가운데는 《일리아스》의 이야기를
연장해서 지어본 습작도 있다.

남는 시간 동안에는 자연과학 서적과 《돈키호테》나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대중소설도 읽었다.

제임스 밀은 1818년에 《영국령 인도의 역사》를 출판했다.

그 즈음에 열 두 살이 된 존 밀은 스콜라철학의 논리학을
치밀하게 공부하는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들을
원전으로 읽었다.

이듬해에는 정치경제학 공부를 시작하여,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를 공부했다.

이는 자본, 노동, 토지를 생산의 삼요소로 바라보는
고전경제학의 시각이 밀 부자에 의해 완성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버지 밀은 산책시간을 이용해서 아들 밀에게
정치경제학을 강의했고,

아들은 배운 내용을 보고서로 만들어 제출하여 교정을 받았는데,
이 원고는 후일 아버지 밀이 출판한 『정치경제학 요론』의
초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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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리카도 경제학을 충실하게 답습한 교과서로서
당대를 풍미했다.

리카도는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로,
소년 존을 자주 집으로 불러서 함께 산책하면서
정치경제학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밀은 아버지의 교육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 교수법은 한 사람의 사상가를 양성하기 위한 것으로는
빼어난 고안이었지만,

내 아버지만큼 치밀하고 정력적인 사상가가 시행해야
성공할 수 있는 종류였다.

심지어 그로서도 가시밭길을 뚫고 나가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비록 내가 주제에 강한 흥미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내게도 분명히 가시밭길이었다고 확언할 수 있다.

애당초 나로서 당장 터득할 수 없는 내용도 많았는데,
아버지는 그럴 때에 이치에 어긋나게
속상해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의 방법은 옳았고 성공을 거뒀다.

아버지가 논리학과 정치경제학을 내게 가르친 방법만큼 철저했거나
소양을 기르는 데 적합했다고 할 수 있는 과학적 교육은
전례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나로 하여금 스스로 찾아내게 함으로써
내 능력을 활성화하려고 조금 지나칠 정도로 노력하는 일환으로,

아버지는 설명을 먼저 해주지 않고
내가 목전에 봉착한 난점의 어려움을 완전히 느끼게 된 다음에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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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논리학과 정치경제학이라고 하는 굉장한 학문에 관해서
당대에 알려진 모든 지식을 정확하게 전수해줬을 뿐만 아니라,
나를 그 분야에 관한 독자적인 사상가로 만들었다.

나는 거의 처음부터 나름대로 생각을 가질 수 있었고,
아버지와 견해가 다를 때도 종종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의견 차이는 사소한 문제에 관한 것이었고
또 결국은 아버지의 견해를 표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나중으로 가면서는 때로 내가 아버지를 설득하여
세부사항에서 의견을 수정하도록 한 경우도 있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까닭은 단지 나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함일 뿐이다.

이런 사례는 아버지의 완벽한 솔직성과 교수방법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열 네살 때 밀은 제러미 벤담의 동생 사뮤엘 벤담의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서 일년을 보냈다.

프랑스 산악지방의 풍경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일생동안 산골 경치를 좋아하도록 이끌었다.

아울러 프랑스 사람들의 활발하고 친근한 생활태도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몽펠리에의 과학대학(Faculte des Sciences)에서
화학, 동물학, 논리학 강의를 들었고,
개인교습을 통해 고등수학을 배웠다.

오가는 길에 파리에 들러서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유명한 경제학자 세이의 집에서 며칠 묵기도 했다.

거기서 밀은 자유당의 여러 지도자들을 만났고,
또 생시몽과 같은 파리의 저명인사도 만났다.

밀의 교육과정은 베인이 쓴 전기를 통해서
이미 당대에 출판된 바 있는데,

이를 보면 여덟 살에서 열세 살에 이르는 동안에
밀이 『자서전』에 기록한 정도를 능가하는 성취를 보였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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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와 같은 집중적인 학습은
밀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스물 한살에 그는 신경쇠약으로 고생을 겪게 된다.

『자서전』 제5장에서 스스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는 보통 아이처럼 자랐다면 자연히 발달하기 마련인
여러 감정들을 억누르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면서

몸과 마음 모두에서 엄청난 끈기를 발휘해야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마르몽텔의 『어느 아버지의 회상』과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에서 위안을 찾아 정서능력이 회복되면서,
우울증은 결국 사라졌다.

이를 밀은 "구름이 점차로 걷혔다"고 표현했다.

1823년 친구들과 함께 공리주의자 협회를 만들었다.



밀은 옥스퍼드 대학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기를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영국국교도가 되어야 하는데,
그는 영국교회를 "하얀 악마"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는 그의 아버지를 따라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1858년까지 35년 동안 근무하면서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1843년 그의 중요 저서인 <논리학 체계>를 발표하였는데

이는 베이컨이 이룩한 귀납법의 논리를 완성한 것으로
진보가 빠르고 가장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자연 과학 연구의 방법론으로서 획기적인 저술이었다.

[찬조 K-Pop]


해리어트는 그들이 만났을 때 이미 결혼한 유부녀이었고,
따라서 그녀의 첫 남편이 죽기 전까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정신적으로만 가까웠다.

[찬조 K-Pop]


밀은 21년 동안의 교제 끝에
1851년 해리어트 테일러와 결혼했다.

[찬조 음악, 엘가 - 위풍당당 행진곡]


해리어트는 명석한 여성으로,
밀에게 친구로서나 아내로서
그의 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밀이 해리어트와 친분을 쌓으면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입장이 더욱 강해졌다.

『자유론』은 그녀가 죽은 직후에 출간되었는데,
그녀의 영향 아래 많은 수정이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여성의 예속』에서도 해리어트의 영향은 암시적으로 언급된다.

해리어트는 밀과 결혼한 지 겨우 칠년이 지난 1858년,
밀이 동인도회사에서 사직하고 모처럼 자유롭게 둘이서
프랑스를 여행하던 도중에 아비뇽에서 폐충혈로 사망했다.

[추모 K-Pop]


밀은 해리어트를 거기에 묻고,
조그만 집을 사서 여생의 안식처로 삼았다.

[추모 샹숑]


밀은 1865년에서 1868년까지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의
학무위원장으로 선임되었고,

같은 기간동안에 런던 웨스터민스터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하원에서 그는 주로 자유당과 연결되어 활동했는데,
아일랜드의 부담을 덜어주자고 주장했고,

여성의 권리를 강력하게 옹호했으며,
비례대표제, 노동조합, 농지의 협동조합식 조직 등,
각종 사회개혁을 주장했다.

1869년에는 의회 안에서는 최초로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의정부론』에서는 비례대표제, 선호이전식 투표제,
참정권 확대 등, 의회와 투표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버트런드 러셀이 1872년에 태어났을 때,
러셀의 모친은 밀에게 대부를 맡아달라고 요청해서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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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이 하원의원 재선에 실패한 뒤로
자신의 아내 해리엇 테일러가 묻혀있는
프랑스 아비뇽에 머무면서 자서전 집필에만 열중했다.

[아비뇽 유수]


이 자서전의 집필이 끝나가던 1870년 경부터
밀의 건강은 눈에 띌 정도로 나빠졌고
자주 병상에 누웠다.

1873년 5월,
그는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고 또 만년에는 생활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식물 채집 여행 도중에 풍토병에 걸렸다.

[추모 K-Pop]


프랑스의 아비뇽에서 1873년 5월 8일 밤,
밀은 "나의 일은 끝났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66세로 사망했고, 아내 곁에 묻혔다.

[추모 K-Pop]


[생애 연보]
1806년도: 영국의 런던에서 출생

1823년도: 동인도 회사 취직, 논리학과 경제학 연구

1859년도: 『자유론』 테일러 부인과 공저

1861년도: 『공리주의』출간

1869년도: 『여성의 종속』출간

[아비뇽 여행]


1873년도: 아비뇽에 부인의 묘 옆에 안장



[사상 및 업적]
인식론에 있어서는 해밀턴이 대표하는 스코틀랜드의 상식학파에
반대하고, 외적 대상은 항상 감각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자유론]
밀의 『자유론』은 자유주의 정치이론,
또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고전 중 하나로,
자유의 개념을 주제로 저술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대중적인 문서 중 하나이다.

밀이 주장하는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틀렸다거나 해롭다는 이유로 의견의 표명을 가로막으면 안 된다,

2.표현의 자유를 일부만 제한하게 되면 곧 모든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만다,

3.표현의 자유가 무제한 허용되어야 사회는 진보할 수 있다,

4.표현하는 내용에는 제한이 없어야 하지만,
표현하는 방식에는 제한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진보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공론의 여과능력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의견이 진실로 틀렸거나 해롭다면
공론장에서 자연히 틀렸거나 해로운 것으로 판명이 나서
도태되리라는 말이다.

밀은 정부를 전복하려는 기획이나 살인을 정당화하는
이론일지라도 표현에 사회적 박해나 정치적 탄압이 가해지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 전복이 진실로 필요하다면 전복해야 할 것이고,
살인이 진실로 정당하다면 용인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단, 의견을 공표하는 방식은 대중연설이나 저술이어야지
다른 사람에게 직접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이것을 일컬어 위해원칙(harm principle)이라고 하는데,
예컨대 굶주림에 시달려 흥분한 상태의 군중을 상대로
곡물 도매상을 지목하면서

"여러분이 굶주리는 것은 저런 자들의 착취 때문"이라는 식의
표현은 안 된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 올리버 웬델 홈즈는 이를 기초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라는
기준을 세웠다.

깜깜한 극장에서 장난으로 "불이야!"를 외쳐서
사람들을 공황에 빠뜨리고 다치게 만들 정도의 위험이
거기에 해당한다.

반면에 듣는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받아들일지 배척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떤 의견이나 이론도
표현이 가로막히면 안 된다는 원리다.

밀의 이와 같은 주장은 오늘날 영국을 비롯해서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일본 등,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정치원리로 받아들여져,
표현의 자유는 시민의 기본권으로서 포괄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아울러 『자유론』("On Liberty")은
영어 산문의 고전으로서 영어권 사회의 대학에서
정치학뿐만 아니라 영문학의 교재로도 아직 널리 읽히고 있다.

그의 공론주의는 영국인의 삶의 큰 영향을 끼쳤다.

스코토 옥소니안 헤이글(Scoto Oxonian Hegel)이 세분화하여
공론주의를 완벽하게 정의 할 때까지 그의 이론은
영국 철학자들이 공론주의를 아웃라인 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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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상태]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미래를 장기적으로 전망하고픈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다.

스미스, 맬서스, 리카도, 마르크스, 케인스가 그러했다.

밀 역시 리카도의 정체상태 분석과 생시몽(C. Saint-Simon)식
사회주의를 적절히 혼합한 미래화를 인상적으로 묘사하였다.

생시몽은 산업노동자들을 찬양했던 프랑스의 이상주의자였다.

생시몽의 분석에서 밝을 미래를 본 밀은
정체상태 역시 행복한 상태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인류는 더이상 돈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며
부유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정체상태라는 이론적 모형에서
리카도는 수확체감, 시장철폐, 이윤감소 등을 보았던 반면,
밀은 지상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신학적 주제들을 보았다.

밀이 개량한 공리주의에는
플라톤식 이상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밀은 인간이 당좌차월이나 잔업근무 같은 것보다
존엄, 고결, 정의 같은 가치에 더 관심을 기울일 날이
오기를 갈망했다.

정체상태에 대한 밀은 다음과 같다.

"자본과 부의 정체상태가 끔찍한 상태라는
고전학파의 주장에 나는 공감할 수 없다.

그러한 상태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발전된 상황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경쟁이 인간의 정상적 상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즉 서로를 짓밟고 압박하고 밀어내고 유린하는
현재의 세태가 인류를 위한 최상의 상태일 뿐,

산업발달 과도기의 부작용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생시몽과 마르크스가 그랬듯이 밀 역시 인간이 점차
'필요의 단계(realm of necessity)'를 초월하여

그저 생계를 잇기 위한 삶으로부터
인간성의 고취를 위한 삶으로 진보해 나갈 것으로 생각했다.

밀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더 이상의 경제성장을 필요로 하는 국가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후진국들뿐이다.

선진 공업국들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합리적 분배와
건전한 사회기풍(ethos)이다."


[어록]
만족하는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낫다.
만족하는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나은 것이다.
그런데 만약 바보나 돼지가 다른 의견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단지 그 문제에서 그들이 가지는 면만 알기 때문이다.
그 비교의 다른 당사자는 양측면을 안다.
-《공리주의》

진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그저 그것들을 붙들고 있는 저들의 옳은 판단들 보다도,
적당한 공부와 준비를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한 사람의 오류들에 의해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자유론》 2장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은 단지 이익만을 좇는
아흔아홉 명과 같은 사회적 힘을 가진다.
-《대의정부론》

이 시대에는 단지 순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단지 관습에 무릎 꿇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로 도와주는 것이다.

여론의 폭정은 바로 별난 행동(eccentricity)을
비난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것은 저 폭정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별나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별난 행동은 개성의 힘이 풍부했을 때와 장소에서 항상 풍부했다.

그리고 사회 속 별난 행동의 양은 일반적으로
그 사회가 품을 수 있는 특별한 재능, 정신적 활력 그리고
도덕적 용기의 양에 비례했다.

이제 별나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 시대의 주된 위험을 나타낸다.
-《자유론》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동일한 의견이고
그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갖는다고 해도,
인류에게는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이는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전 인류를 침묵하게 할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유론》 2장 사상과 토론의 자유

더 이상 법의 힘에 의해 노예가 되거나 하인이 되지 않고,
대다수는 빈곤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 (...중략...)

이것이 인류가 지금까지 투쟁해 온 거의 모든 것들과
대등한 악이라는 것을 가난한 사람들이 믿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사회주의》

얻기 위해 기꺼이 싸울게 없는 사람,
자신의 안전보다 더 신경 쓸게 없는 사람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의 노력으로 그렇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지 않는 한 자유로울 기회가 없는 비참한 사람이다.
『미국에서의 항쟁』

어느 누구도 자신이 참여하지 않고
의견을 내지 않으면 손해보지 않을 것이라는 기만으로
자신의 양심을 달래지 마라.

착한 사람이 구경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보다
나쁜 사람이 그들의 목적들을 달성하는 데 더 필요한 것은 없다.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서 한 취임 연설

[찬조 K-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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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이
제일 좋아한 역사적 인물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19세기 영국의 철학자이며,
자유주의와 실용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입니다.

그는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러 인물들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좋아했던 역사적 인물을 명확하게
밝힌 기록은 없습니다.

밀은 역사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럽 철학과 인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여러 인물들에게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특히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사상가들의 작품을
선호하였을 것입니다.

이들 중에는 자유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진
영국의 철학자 존 록(John Locke)이나,
유틸리타리언 주의의 창시자 제레미 벤트럼(Jeremy Bentham)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가설일 뿐이며,
밀이 특정 인물을 특별히 좋아한다는 명확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이
좋아할만한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 제목은 무엇일까?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 영국의 철학자로서
음악적 취향이나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에 대한
선호도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 중에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즐기고 좋아하는 몇 가지 제목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이는 주관적인 추천이며, 밀이 좋아할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트로트 노래:

"뜨거운 안녕" - 홍진영

[찬조 K-Pop]


"사랑은 눈꽃처럼" - 박진영

[찬조 K-Pop]


"장마" - 김건모

[찬조 K-Pop]


"주옥 같은 사랑" - 박상민
"말리꽃" - 한옥

[찬조 K-Pop]


발라드 노래:

"너를 위해" - 임재범

[찬조 K-Pop]


"이 밤이 지나면" - 송승헌

[찬조 K-Pop]


"가시리" - 이문세

[찬조 K-Pop]


"울랄라" - 성시경

[찬조 K-Pop]


"그대 내 품에" - 이적

[찬조 K-Pop]


이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트로트와 발라드 노래 중 일부에
해당하는 제목들입니다.

다양한 아티스트와 곡들이 있으므로,
더 많은 노래를 들어보고 밀의 취향에 맞는 곡을
찾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이
경험한 재미있는 일화(episode)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에 관한 책이나 문서들에서는
그가 경험한 구체적인 재미있는 일화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교육:
밀은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의
엄격한 교육 아래 자랐습니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아서
어린 나이에 논리와 경제 이론을 습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영어와 그리스어 등을 술술 읽고 쓸 수 있었습니다.

정신 붕괴와 회복:
청년 시절 밀은 대담한 혁신적 사상과 사회적 활동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20대 후반에 정신적인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자신의 삶과 철학적인 방향에 대한 탐구를 거쳐
회복의 길을 찾았습니다.
이 경험은 그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자아 실현과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철학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여성해방 운동 지지:
밀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지지자였습니다.
그는 여성들의 교육, 투표권, 직업 참여 등에 대한 평등을
주장하였으며, 여성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정의와 개인의 자유:
밀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중시하며,
사회적인 제약과 편견에 대항하는 사상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에 반대하고,
인간의 개인적인 자유와 평등을 존중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밀의 생애와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그가 경험한 구체적인 재미있는 일화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별도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은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일까?


존 스튜어트 밀은 양심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철학과 정치적 신념은 개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개인이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따르는 권리를 가지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밀은 유틸리타리언 철학을 따르면서도 개인의 양심과
개인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유틸리타리언 철학을 사회적 행복과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사용하면서도,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양심과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적인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밀은 여성의 권리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지지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여성들의 교육, 직업 참여, 투표권 등을 옹호하며,
사회적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는 그가 양심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며
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존 스튜어트 밀은 양심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양심적인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의
양심(Conscience) 등급(Grade)을
A(매우 우수), B(우수), C(보통), D(낮음) 로 Grading 한다면,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의
양심등급(Conscience Grade)은?


개인의 양심 등급은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존 스튜어트 밀의 양심 등급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의 양심과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양심을 개인의 도덕적 판단과 신념의 근거로 여겼으며,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타인의 양심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존 스튜어트 밀의 양심 등급을 평가한다면,
매우 우수(A) 또는 우수(B) 등급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양심의 자유와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철학을 지지하였으며,
이는 양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등급은 주관적인 판단이며,
이는 존 스튜어트 밀의 생각과 사상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개인의 의견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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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이
제일 좋아한 역사적 인물은?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 개혁가입니다.

그는 그의 자유주의 정치 철학과 공리주의에 대한 논문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Mill은 또한
여성의 권리와 교육의 강력한 옹호자였습니다.

밀의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은
그의 아버지 제임스 밀과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데이비드 흄으로 여겨집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영향 중 하나였으며
Mill은 그의 철학과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는 데
그의 영향을 인정했습니다.

Hume은 Mill의 또 다른 주요 영향이었으며
Mill은 그의 경험주의와 귀납적 방법에 매료되었습니다.

밀은 또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철학자들의 작품을 존경했습니다.
그는 그들의 생각을 깊이 연구했으며
그들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밀의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은
그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들로,
그의 철학과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이
좋아할만한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 제목은 무엇일까?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 개혁가입니다.

그는 자유주의 정치 철학과 공리주의에 대한 논문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Mill은 또한 여성의 권리와 교육의 강력한 옹호자였습니다.

밀이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를 좋아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철학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강조했기 때문에
그가 사랑과 관계의 주제를 다루는 노래에 공감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의 사회 개혁에 대한 관심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의 주제를 다루는 노래에 공감했을 것입니다.

밀이 좋아할 만한 한국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를 몇 가지 추천합니다.

"사랑의 찬가" by 조용필
"내 사람" by 김광석
"아침이 밝아올 때" by 김추자
"사랑은 아무나 하나" by 이선희
"겨울 안부" by 김동률

이 노래들은 모두 사랑, 관계,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노래이며 밀의 철학에 공감했을 것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이
경험한 재미있는 일화(episode)는?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 개혁가입니다.

그는 자유주의 정치 철학과 공리주의에 대한 논문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밀은 또한 여성의 권리와 교육의 강력한 옹호자였습니다.

밀의 삶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지만,
그 중 한 가지는 25세 때 23세의 귀족 유부녀를 만난 것입니다.
이 여성은 헤리어트 테일러라는 이름이었고,
밀은 그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영국에서는 귀족과 평민이 결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밀과 테일러는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밀과 테일러는 20년 동안 친구로 지냈고,
테일러의 남편이 사망한 후 그들은 마침내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밀과 테일러는 매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밀과 테일러의 사랑 이야기는 금지된 사랑 이야기이지만,
또한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은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일까?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 개혁가입니다.
그는 자유주의 정치 철학과 공리주의에 대한 논문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밀은 또한 여성의 권리와 교육의 강력한 옹호자였습니다.

밀은 양심적인 사람으로,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옹호했습니다.
그는 또한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운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밀의 양심은 그의 삶과 일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촉구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롤 모델이었고,
그의 양심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의
양심(Conscience) 등급(Grade)을
A(매우 우수), B(우수), C(보통), D(낮음) 로 Grading 한다면,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의
양심등급(Conscience Grade)은?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경제학자,
사회 개혁가입니다.
그는 자유주의 정치 철학과 공리주의에 대한 논문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밀은 또한 여성의 권리와 교육의 강력한 옹호자였습니다.

밀은 매우 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옹호했으며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촉구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롤 모델이었고,
그의 양심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그의 양심에 대한 등급이 A라고 말할 것입니다.


[의식 지도]

[아래의 의식지도 수치 평가는 단순 재미로만 참조 바람]

(from https://gemini.google.com)
정신과 의사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지도 Map of Consciousness' 에서
1에서 1000까지 수치로 평가했을때,
존 스튜어트 밀(1806년 5월 20일~1873년 5월 8일,
John Stuart Mill, 19C Philosopher, England)의
의식지도 수치값은 ?


존 스튜어트 밀의 의식 지도 수치: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지도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정확한 의식 수치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호킨스는 개인의 의식 수준을 1에서 1000까지 수치로
평가하는 체계를 제시했지만, 이는 주관적인 평가이며,
모든 개인에 대한 데이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역사적 인물의 경우,
그의 의식 수준을 직접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의식 수치를 추측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의 삶과 업적을 통해
그의 의식 수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추측은 가능합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삶과 업적에서 엿볼 수 있는 의식 수준:
뛰어난 지적 능력:
존 스튜어트 밀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뛰어났으며,
특히 논리학과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3세에 라틴어를 읽고 7세에 그리스어를 읽을 수 있었으며,
13세에 논리학에 대한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비판적 사고력:
존 스튜어트 밀은 비판적 사고력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는 기존의 철학적 개념에 도전하고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논리 체계"에서 귀납법과 연역법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했으며,
"자유론"에서 개인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강한 정의감:
존 스튜어트 밀은 강한 정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성 참정권, 노동자의 권리, 노예 해방 등
사회 개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는 또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습니다.

높은 윤리적 기준:
존 스튜어트 밀은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데 두려움이 없었으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그는 또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호킨스의 의식 지도에서 이러한 특성들은
일반적으로 높은 의식 수준과 관련됩니다.

따라서, 존 스튜어트 밀의 의식 수준은
600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あくまで 추측이며,
존 스튜어트 밀의 의식 수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의식 지도]

=============================================

John Stuart Mill

[Born] 20 May 1806
Pentonville, London, England

[Died] 8 May 1873 (aged 66)
Avignon, France

[Residence] United Kingdom

[Nationality] British
[Spouse(s)] Harriet Taylor

[Era] 19th-century philosophy
Classical economics

[Region] Western Philosophy

[School] Empiricism, utilitarianism, liberalism

[Main interests]
Political philosophy, ethics, economics, inductive logic

[Notable ideas]
Public/private sphere, hierarchy of
pleasures in Utilitarianism, liberalism,
early liberal feminism, harm principle,
Mill's Methods

John Stuart Mill (20 May 1806 – 8 May 1873)
was an English philosopher, political
economist and civil servant. One of the most
influential thinkers in the history of
liberalism, he contributed widely to social
theory, political theory and political economy.



He has been called
"the most influential English-speaking philosopher of
the nineteenth century." Mill's conception
of liberty justified the freedom of the
individual in opposition to unlimited state control.

Mill expresses his view on freedom by
illustrating how an individual's drive to
better their station, and for self-
improvement, is the sole source of true
freedom. Only when an individual is able to
attain such improvements, without impeding
others in their own efforts to do the same,
can true freedom prevail.

Mill's linking of freedom and self-improvement has inspired
many.
By establishing that individual efforts
to excel have worth, Mill was able to show
how they should achieve self-improvement
without harming others, or society at large.



Among his philosophical achievements, he was
a proponent of utilitarianism, an ethical
theory developed by Jeremy Bentham, and he
worked on the theory of the scientific
method. Mill was also a Member of Parliament
belonging to the Liberal Party.

(from 네이버 지식백과 naver.com wikipedia.org)


[Map of Consciousness]



liBerty & sovereign over own Body & mind~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B


(MoC: Map of Consciousness) 의식 지도

MoC(의식 수준):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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