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G Creativity Grade: C
Edit 2020-03-26 오전 7:05:54
PIG C+
Home http://bit.ly/29F5ezc
SNS1 http://bit.ly/29mG8kw
SNS2 https://en.wikipedia.org/wiki/Larry_Page
SNS3 http://bit.ly/29uXoqm
 related < HOME > < EDIT>
      
Register your Global social NAME
페이지-Larry Page, Google 공동창업자, USA
래리 페이지 (Larry Page, Lawrence E. Page)
기업인

한국.net

[출생] 1973년 3월 26일, 미국
[소속] 알파벳 (CEO)

[학력사항]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 컴퓨터공학 석사
~ 1995 미시간대학교 컴퓨터공학 학사
인터로컨예술학교

[경력사항]
2015.10 ~ 알파벳 CEO
2011.01 ~ 2015.10 구글 CEO
2001.07 ~ 2011.04 구글 제품부문 사장
1998.09 ~ 2002.07 구글 CFO
1998.09 ~ 2001.07 구글 CEO
1998 구글 공동설립

[수상내역]
2002 세계경제포럼 내일을 위한 글로벌 리더

한국.net

-------------------------------------------
[출생]
1973년 03월 26일
미국 미시간 주 이스트랜싱

[거주지] 캘리포니아 팰로앨토
[국적] 미국

[학력]
미시간 대학교 컴퓨터공학 학사 (B.S.)
스탠포드 대학교 컴퓨터과학 석사(M.S.)

[경력]
구글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
[직업]
알파벳의 최고 경영자, CEO
[순자산]
증가 US$ 304억 (2014년 10월)
[배우자]
루신다 사우스워스(2007년 결혼)
[자녀] 2명

한국.net

래리 페이지(Lawrence E. Page;Larry Page, 1973
년 3월 26일 ~)는 미국의 비즈니스 거물이자 세
르게이 브린과 함께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컴퓨
터 과학자이다. 2011년 4월 4일에 에릭 슈밋의
뒤를 이어 구글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맡았
다.2014년 10월 현재, 페이지의 개인 재산은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 목록 19위인 304억 달러
일 것으로 추산한다.

페이지는 구글의 검색 랭킹 알고리즘의 기초인
페이지랭크의 창안자이며, 그와 브린은 서로 약
16%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net

------------------------------------------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 애플과 스티브 잡
스, 페이스북과 마크 저커버그. IT 업계를 선도
하는 기업과 그 기업의 창업자로 혁신의 아이콘
이라고 부를 만하다. 하지만 이들 셋 못지않은,
어쩌면 셋보다 더 혁신적일지도 모를 래리 페이
지에 대해선 잘 모른다. 래리 페이지(Larry
Page)는 구글의 공동창업자이며 현 최고경영자이
다.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손꼽히는
구글을 이끄는 래리 페이지의 삶과 철학을 이해
하면 구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니콜라 테슬라를 존경하는 컴퓨터 신동]
래리 페이지는 1973년 미국 미시건주 이스트랜싱
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칼 페이지는 미시건
주립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였고, 마찬가지로
엄마 글로리아도 컴퓨터 교수였다. 컴퓨터를 전
공한 부모 슬하에서 페이지 역시 컴퓨터 신동으
로 자라났다. 6살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
작했고 초등학교 숙제를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
해 제출하기도 했다. 그 학교에서 워드 프로세서
를 사용한 첫 번째 학생이었다. 12살 페이지
는 '니콜라 테슬라'에 대한 전기를 읽고, 그처
럼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발명가가 되길 꿈꾸게 된다.

한국.net

페이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시건 대학교에 진
학해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부모와 마
찬가지로 교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스탠퍼드 대
학원에 진학해 컴퓨터 사이언스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한 페이지는 평생을 함께
할 친구 세르게이 브린을 만나게 된다. 동갑내기
인 브린과 페이지는 처음엔 사이가 좋지 않았지
만 웹 페이지에 관한 연구를 함께 진행하며 친분
을 쌓게 된다.

한국.net

[웹 페이지에 가치를 매기다]
페이지와 브린은 막 태동한 월드 와이드 웹(WWW)
의 가치에 주목했고, 어떻게 하면 방대한 월드
와이드 웹 속에서 사용자에게 의미 있는 웹 페이
지를 찾아낼 수 있을지 연구했다.

사실 페이지가 처음부터 웹 페이지에 가치를 매
기는 작업에 매진한 것은 아니었다. 페이지는 모
든 월드 와이드 웹을 백업하고 정돈(인덱싱)하
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하지만 월드 와이드
웹은 연구원 혼자 백업하기에는 너무 방대했다.
페이지는 결국 자신의 아이디어보다 친구 브린
의 아이디어인 웹 페이지에 가치를 매기는 방법
에 대한 공동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가치 있는 논문이 많이 인용되듯이 웹 페이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즉 가치 있는 웹
페이지는 다른 웹 페이지와 많이 연결(링크)되
기 마련이다. 페이지와 브린은 특정 웹 페이지
가 어떤 웹 페이지와 링크되어 있고, 얼마나 링
크되어 있는지 횟수를 분석함으로써 웹 페이지
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백럽(BackRub)'이라고 이름 붙인 이 연구 프로
젝트에 브린이 합류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웹 페
이지의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웹 페이지를 뒤지
는 검색 로봇(웹 크롤러)을 개발했고, 검색 로봇
으로 수집한 링크 데이터를 분석할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을 완성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이 검색
로봇과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이 웹 검색의 수준
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음을 파악했다.

[구글의 탄생]
개발 도중 백럽이라는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름을 세상의 모든 웹 페이지
를 품겠다는 의미에서 10의 100승, 사실상 무한
함을 의미하는 구골(Googol)로 바꾸는 것이 좋겠
다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구골이라는 상표와
도메인은 이미 다른 곳에서 등록한 상태였다. 때
문에 유사한 발음을 가진 '구글'이라는 이름으
로 최종 결정했다. 1996년 8월 마침내 세계 최대
의 검색 엔진 '구글'이 세상에 태어났다. 당시
구글의 초기 버전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URL을 이
용해 구축했다.

당시 검색 엔진은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검
색 로봇이 웹 페이지를 뒤져 사용자가 필요로 하
는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웹 페이지의
소유주가 검색 엔진에 자신의 사이트를 등록하
는 방식이었다. 검색 엔진보다 관문(포탈)이라
는 이름이 더 적합한 시절이었다.

구글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고 큰 인기를 끌었
다. 결국 남는 PC 부품과 리눅스를 조합해 얼기
설기 만든 서버와 스탠퍼드 대학교의 URL이 구글
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페이지와 브린은 구글을 판매하기로 정하고 야
후, 알타비스타 등과 접촉해 매각에 대해 논의했
다. 매각 대금은 100만 달러 정도만 받아도 충분
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구글의 기업가치가 약
3,715억 달러(약 416조 원, 2015년 S&P 캐피탈
IQ 조사 기준)를 생각해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
도로 초라한 가격이다.

하지만 정작 구글의 판매는 난항을 겪게 된다.
구글의 검색 성능이 너무 뛰어나 사용자가 너무
빨리 포탈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
시 웹 페이지 광고가 주 수입원이던 포탈의 입장
에선 도입하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결국 페이지와 브린은 투자를 받아 구글을 하나
의 회사로써 운영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구글에
최초로 투자한 사람은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창
업자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이었다.
두 창업자의 열의와 구글의 가능성을 알아본 벡
톨샤임은 별다른 설명도 듣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끊어줬다.

투자를 받은 페이지와 브린은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실에서 독립한 후 수잔 보이키치(현 유튜브
최고경영자)의 집 창고를 빌려 구글을 창업한
다. 이후 람 슈리람(벤처 캐피탈리스트, 현 구
글 이사), 데이비드 체리턴(스탠퍼드 대학교수,
페이지와 브린의 은사), 제프 베조스(아마존의
창업자) 등의 투자를 받아 구글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켰다.

[삼두정치의 시작과 복귀]
강력한 검색 기능과 검색어 광고를 통한 수익원
확보 덕분에 구글은 매섭게 성장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를 강타한 '닷컴버블' 속에서
도 구글은 건재했고, 거품으로 가득 찬 회사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했다. 최고경영자로서 페이지
는 이러한 구글의 성장을 지휘했다. 페이지와 브
린은 구글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기업공개를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보기에 페이지는 한 기업을
이끌기에는 너무 어렸고 경험이 부족했다. 요즘
은 20대 초반 창업자가 넘치지만 당시만 해도 20
대 최고경영자에 대해서 투자자들로서는 우려를
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투자자의 우려
에 페이지와 브린도 동의했다.

구글의 외적 성장을 내부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
하는 문제가 발생했고, 내적 기틀을 잡고 대외
활동을 지휘할 경험 많은 최고경영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둘은 애플의 최고 경영자 스티브 잡
스 만이 구글을 이끌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잡
스가 애플을 떠나 구글로 올리는 없었다. 이 들
은 고집을 꺾고 다른 적당한 사람을 물색하기 시
작했다.

마침 에릭 슈미트(Eric Emerson Schmidt)가 물망
에 올랐다. 슈미트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거
쳐 노벨의 최고경영자를 역임한 인물이었다. 수
십 년간 IT 업계에 종사하며 경영자로서 연륜도
충분했다. 처음 슈미트는 구글을 탐탁잖게 생각
했지만 페이지와 브린을 만난 후 생각을 바꾸게
된다. 둘의 비전과 통찰력에 감탄한 슈미트는 구
글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승낙했다. 2001년 페이
지는 최고경영자 자리를 슈미트에게 승계하고 자
신은 창업자로서 슈미트에게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10년 동안 구글의 얼굴은 슈미트였고 이 기
간 동안 페이지는 두문불출했다. 많은 사용자가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에 대해
서는 잘 알면서 페이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이
유가 이것이다. 10년 간 대중 앞에 나서지 않았
으니 그 존재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
니다.

하지만 10년 동안 페이지가 구글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슈미트를 도와 구글의 기업 공개를 성
공적으로 완수했다. 무엇보다 앤디 루빈과 만나
그의 아이디어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5000
만 달러에 인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 안드
로이드 운영체제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페이지의
선택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알 수 있다.

10년이 흐른 2011년 연륜을 쌓은 페이지는 구글
의 최고경영자로 복귀했고, 슈미트는 회장이라
는 직함을 달았다. 최고경영자가 모든 것을 총괄
하는 미국 기업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대단히 이
례적인 결정이다.

많은 사용자가 페이지, 브린, 슈미트의 관계에
대해 궁금해 하는데 구글의 답변은 간단하다. 셋
이 협력해 함께 구글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것
이다. 페이지는 최고경영자라는 직함을 달고 구
글을 현실적인 회사로서 이끌고 있고, 브린은 창
업자 겸 구글X 프로젝트 담당자라는 직함을 달
고 구글 글라스, 자율 주행 자동차, 프로젝트
룬, 혈당을 체크하는 소프트렌즈 등 미래 기술
개발을 지휘하고 있다. 슈미트는 회장이라는 직
함을 달고 구글의 얼굴로서 활동 중이며, 창업
자 둘에게 경영에 관한 조언을 제공하고 있다.

[소통이 바로 혁신의 비결]
페이지는 컴퓨터 공학자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경영자로서의 능력 역시 탁월하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대한 IT 기업을 일궈낸 그의 경영철학
은 본받을 점이 많다.

먼저 구글의 소통 시스템 'TGIF(Thank God It's
Friday)'를 들 수 있다. 구글은 매주 금요일 점
심에 모든 직원이 한 군데 모여 자신의 생각을
전직원에게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
다.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 회사 경영 방식에
대한 불만 등 무엇을 말해도 된다. 페이지를 포
함한 모든 임원은 이 자리에 참석해 직원들의 의
견을 듣고 자신들의 생각을 직접 설명해준다. 한
국 기업은 물론 미국 기업에서도 찾아볼 수 없
는 혁신적인 정책이다. TGIF를 통해 직원들의 불
만은 줄어들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페이지의 생각은 주효했다. 이
메일 용량이 너무 적다는 직원의 아이디어를 듣
고, 10GB 이상의 이메일 용량을 제공하는 지메일
을 출시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지메
일은 약 9억 명이 사용하는 구글의 대표 서비스
로 거듭났다.

현재 TGIF는 이름과 달리 목요일 점심에 진행한
다. 그 이유는 금요일에 TGIF를 진행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전세계 구글 직원들이 아이디어
를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토요일에는 쉬어
야 하기 때문에 요일을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당
겨 진행한다.

8:2 시스템도 주목할 만하다. 구글의 모든 직원
은 일주일의 4일은 자신의 본업(Job)에 하루는
자신이 하고 싶은 업무를 할 수 있다. 구글 내부
에서 할 수 있는 업무면 무엇이든 허용되며 강제
도 아니고 일주일 내내 본업에 종사해도 된다.
하지만 8은 본업을, 2는 하고 싶은 업무를 처리
하는 것을 정책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 직
원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카드보드
가 대표적인 사례로 직원 두 명이 장난삼아 시작
한 이 프로젝트는 이제 가상현실 업계를 선도하
는 혁신적인 기술로 거듭났다. 구글에 근무하는
한국인 개발자의 경우 자신의 본업 외에도 국내
웹 환경을 보다 검색 친화적으로 바꾸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은둔형 최고경영자지만 영향력은 최고]
페이지는 전형적인 은둔형 최고경영자로 대중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다. 대부분 슈
미트나 선다 피차이 부사장에게 위임하고 있다.
최고경영자가 대중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마
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과 대조적인 모습
이다.

노출을 꺼리는 페이지의 성격 때문일 수도 있
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페이지 본인의 건강이 좋
지 않아서라는 설에 무게가 실린다. 신경 손상으
로 인한 성대 마비 때문에 페이지는 말을 오래하
는 것 자체를 버거워하는 상황이다. 목소리도 많
이 쉬었다. 얼마 전 구글 I/O 2015에 참가해 개
발자 앞에 모습을 드러낸 페이지는 쏟아지는 질
문에 대부분 웃음으로 화답했다. 건강 때문에
말 자체를 아끼는 모습이다.

그가 대중과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 해서 그의 영향력이 작다고 할 수는 없다. 오
히려 IT 기업 창업가 가운데 가장 크다고 평가
할 수 있다.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손을
떼고 기부 활동에 전념하고 있고, 잡스는 슬프게
도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저커버그가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페이스북보
다는 구글의 영향력이 더 크다 할 수 있다. 페이
지는 이제 겨우 42살로 젊고 그의 혁신은 끝나
지 않았다. 이제 겨우 시작일지도 모른다. 페이
지의 생각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지 지켜볼 일
이다.

하나만 더 이야기 하자면 페이지는 젊은 시절 연
구한 월드 와이드 웹을 백업한다는 계획을 결국
실천에 옮겼다. 구글을 설립하고 전세계 19위(포
브스 2015년 기준)의 부자가 된 그는 구글의 막
대한 서버를 이용해 전세계 웹 페이지를 백업하
고, 사라진 웹 페이지를 사용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캐시 페이지 보기 서비스). 검색과 함께 어
엿한 구글의 주력 서비스다. 혹시 특정 웹 페이
지가 사라져 곤란함을 겪은 사용자라면, 전세계
웹 페이지를 백업하겠다는 페이지의 생각에 감탄
하며 캐시 페이지 보기 서비스를 이용해 볼 것
을 권한다.

-네이버 포스트 [IT 인물열전] 세상 모든 웹 페
이지를 품으려는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

(from IT동아)
==========================================
Larry Page

[Born] Lawrence Page
March 26, 1973
East Lansing, Michigan, U.S.

[Residence]
Palo Alto, California, U.S.
[Nationality] American
[Alma mater]
University of Michigan
Stanford University
[Occupation]
Computer scientist, Internet entrepreneur
[Known for]
Co-founder of Google Inc., CEO of Alphabet
Inc, PageRank
[Net worth]
Decrease US$36.7 billion (June 2016)
[Title] CEO of Alphabet Inc
[Spouse(s)]
Lucinda Southworth (m. 2007)
[Children] 2

Lawrence "Larry" Page (born March 26, 1973)
is an American computer scientist and
Internet entrepreneur who co-founded Google
Inc. with Sergey Brin, and is the CEO of
Google's parent company, Alphabet Inc. After
stepping aside as CEO in August 2001 in
favour of Eric Schmidt, Page re-assumed the
role in April 2011. He announced his
intention to step aside a second time in
July 2015 to become CEO of Alphabet, under
which Google's assets would be reorganized.
Under Page, Alphabet is seeking to deliver
major advancements in a variety of
industries. Page is the inventor of
PageRank, Google's best-known search ranking
algorithm.

Page is a board member of the X Prize
Foundation (XPRIZE) and was elected to the
National Academy of Engineering in 2004.
Page received the Marconi Prize in 2004.

(from naver.com wikipedia.org)


Co-founder, CA, CEO, influence(+) ~
(PIG: time-variant)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C+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  0 1 2 3 4 5 6 7 8 9

Social Name Portal 한글 세계이름 포털: 한국.net   Wopen.net   yungbkim@nate.com
shared by link
웹프로그래밍(한국.net 사례기반) & 벤처창업 특허 RFP 표준(강의용 PDF파일 제공)-김영복 저
웹프로그래밍(한국.net 사례기반)&벤처창업 특허 RFP 표준(강의용 PDF파일 제공),롤모델100명-김영복 저
웹프로그래밍(한국.net 사례기반)&벤처창업 특허 RFP 표준(강의용 PDF파일 제공),롤모델100명-김영복 저
벤처창업 특허 RFP 표준(강의용 PDF파일 제공)- 김영복 저
웹프로그래밍 (한국.net 사례기반) - 김영복 저, 실습 사이트: w3schools.com
Role Model 100명 from 한국.net
한국.net
Name Por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