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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Immanuel Kant,철학자,Prussian-Germany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지난1000년간 인물100명중 59위 선정




[출생] 1724년 4월 22일
프로이센 왕국 쾨니히스베르크

[칸트의 흔적을 찾아서]


[사망] 1804년 2월 12일 (79세)
프로이센 왕국 쾨니히스베르크

[칸트 잠들어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성당 여행]


[46분 Youtube 동영상]


[시대] 18세기 철학

[지역] 서양 철학

[학파] 칸트주의, 계몽주의

[연구 분야]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논리학

[주요 업적]
정언 명령, 선험적 관념론,
종합 명제, 본체(물자체),
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네 자신의 지성
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성운설

[요약]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손꼽히는 독일 출신의 철학자이다.

서양 근세 철학의 전통을 집대성하고 비판 철학을 탄생시켰으며,
독일 관념 철학의 기초를 세웠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계몽적인 정책의 혜택으로 그의 철학은
독일적 특수성을 뛰어넘는 세계 시민적인 철학이 될 수 있었다.

당시 혁신적 사상이었던 뉴턴역학에 특히 관심을 두어
1755년 <천계(天界)의 일반자연사와 이론>을 저술하였으며,

여기에서 그는 뉴턴역학의 원리를 확대 적용하여
우주의 탄생을 규명하려고 하였다.

이는 후에 '칸트-라플라스의 성운설(星雲說)'로 널리 알려져
이 분야의 연구에 도움을 주었다.

루소는 칸트로 하여금 인간의 존엄성에 눈을 뜨게 하였는데,
그 영향으로 칸트는 루소와 뉴턴의 사상을 기초로 한
비판 철학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는 1781년에 출간한 비판 철학의 첫 번째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신(神)중심적인 성격을 띠는

형이상학의 모든 개념이 인간 중심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면서 그것이 이론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에 대해 밝혔다.




그의 두 번째 비판서인 1788년의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좀 더 발전하여 종교를 바탕에 둔
인간의 자율적 도덕을 논하였고,



세 번째 비판서인 1790년의 <판단력비판>에서는
목적론적 인식의 구조를 명백히 밝히고 새로운 인간학적
철학을 마무리 짓고자 하였다.




칸트의 철학은 훗날 등장한 독일 신(新)칸트학파 외에도
수많은 철학적 조류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생애 활동 및 업적 등]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년 4월 22일 ~ 1804년 2월 12일)는

근대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초를 놓은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칸트는 21세기의 철학에 까지 영향을 준 새롭고도 폭 넓은
철학적 관점을 창조했다.

그는 또한 인식론을 다룬 중요한 저서를 출간했고,
종교와 법, 역사에 관해서도 중요한 책을 썼다.

그의 탁월한 저서 중 하나인 《순수이성 비판》은
이성 그 자체가 지닌 구조와 한계를 연구한 책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이 책에서 칸트는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공격하고 있으며,
칸트 자신이 그 분야에 공헌한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가 만년에 출간한 다른 주요 저서에는 윤리학을
집중적으로 다룬《실천이성 비판》과 미학,
목적론 등을 연구한 《판단력 비판》이 있다.

한국.net


그는 종래의 경험론 및 독단론을 극복하도록
비판철학(批判哲學)을 수립하였다.

인식(認識) 및 실천(實踐)의 객관적 기준을 선험적(先驗的)
형식에서 찾고, 사유(思惟)가 존재(存在)를,
방법(方法)이 대상(對象)을 규정한다고 하였다.

도덕의 근거를 인과율이 지배하지 않는
선험적 자유의 영역에서 찾고,

완전히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도덕적 인격의 자기 입법을
도덕률로 삼았다.

그는 도덕적 인격을 목표로 하면서도 자의적(恣意的)인
'한 사람의 의욕과 다른 사람의 의욕이 자유의 보편원칙에 따라
합치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법이라 생각하였다.

칸트에게 내적 자유의 실현 수단인 법은 외적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도덕과 엄격히 구별되었다.



칸트는 다른 한편으로 국가에 대해서 계약설의 입장을 취했는데,
그는 국가계약을 역사적 사실같이 취급한 계몽기의 사상을
발전시켜서 이것을 국민주권을 위한 이론적 요청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칸트는 국가 간의 전쟁을 하지 않는,
영구(永久) 평화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책을 썼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생긴 문제점을 전쟁이 끝난 뒤에
조정하여 해소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제도의 내용은 국제법의 개념에 근거한
국제 연맹이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출생과 성장]
1724년 프로이센의 상업도시 쾨니히스베르크
(현재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에서 수공업자인 아버지

요한 게오르크 칸트(Johann Georg Kant)와
어머니 안나 레기나(Anna Regina)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1명의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11명의 자녀 중 어른 될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5명뿐이었다).

'에마누엘'(Emanuel)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히브리어를 공부한 후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이마누엘"(Immanuel: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로 바꾸었다.

그는 삶을 통틀어서 쾨니히스베르크로부터 100마일 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한 적이 결코 없다.

그의 아버지인 요한 게오르크 칸트(Johann Georg Kant) (1682~1746)는,
당시 프로이센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도시인 메멜로부터
이주한 독일인 마구(馬具) 제작자이었다.



그의 어머니인 느 레기나 도로시아 류터
(nee Regina Dorothea Reuter) (1697~1737)는,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칸트의 할아버지는 스코틀랜드에서 동프로이센으로 이주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가족의 성을
스코틀랜드식("Cant")으로 적곤 했다.

어렸을 때 칸트는 돋보이지는 않았으나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는 경건주의를 따르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기독교의 경건주의는 종교적인 헌신과 겸손함 그리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 결과로 칸트가 받은 교육은, 수학과 과학보다는
라틴어와 종교 훈련을 우선시 하였고,
엄격하고 가혹하며 훈련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칸트의 부모는 청교도적 생활을 하였으며,
이는 유년시절의 칸트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진다.

칸트는 1732년 어머니와 친분이 있던 신학자 슐츠가 지도하던
사학교 프리드릭스 김나지움에 입학하고 1740년에 졸업했다.

[철학 연구]
같은 해에 쾨니히스베르크의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과 수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마르틴 크누첸(Martin Knutzen)에게
논리학과 수학을 지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도 자연과학에 관심을 갖고
아이작 뉴턴의 물리학에 매료되었다.



후대의 전기 작가의 기록에 의하면,
칸트는 1746년 《활력의 진정한 측정에 관한 사상》
(Gedanken von der wahren Schatzung der lebendigen Krafte)이라는
졸업논문과 함께 대학을 졸업했으나,

아버지가 사망함에 따라 학자금과 생계 유지를 위해
수 년에 걸쳐 지방 귀족가문의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홀로 철학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칸트는 곧 대학으로 돌아왔으며 1755년 6월 12일,
《일반자연사와 천체이론》(Allgemeine Naturgeschichte und
Theorie des Himmels)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음과
동시에,

《형이상학적 인식의 으뜸가는 명제의 새로운 해명》
(Principorum primorum cognitionis metaphysicae
nova dilucidatio)이라는 논문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이후 대학에서 일반논리학, 물리학, 자연법, 자연신학,
윤리학등 여러 분야의 주제로 강의했다.



1756년 크누첸이 사망하자 그의 후임으로 교수직을 얻으려
노력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지만 1764년 프로이센의 교육부에서 제공한
문학 교수자리를 거절할 정도로 철학교수직을 갈망했다.

18세기까지도 수학과 물리학은 자연철학으로 간주되어
철학의 영역에 속했다.

1766년에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왕립도서관의 사서로
취직하여 1772년까지 근무하기도 했다.

그사이 칸트는 원하던대로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교수직를
얻게되는데, 이때 발표한 교수취임논문(1770년)은
칸트 비판 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저술로 평가되고 있다.



10여 년간의 철학적 침묵기를 거친 후
칸트는 1780년대에 일련의 중요한 저서,

즉 에세이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
(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arung?, 1784),

《윤리 형이상학의 정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Metaphysische Anfangsgru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점점 명성이 올라갔다.

그리고 《순수이성비판》(초판:1781년, 재판:1787년),
《실천이성비판》(1788), 그리고 《판단력비판》(1790)에서
그의 비판철학의 정수를 선보였다.

눈부신 학문적 성취와 더불어 1786~8년에는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의 총장에 선출되는 영예를 누렸다.



[말년과 사망]
칸트는 한 번도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으며,
알려진 것처럼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강의와 사유에 전념했다.

다만 1792년에 논문출판과 검열을 두고
학부 관리처와 작은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의 논문은 《인간본성에 있어서의 근본악에 관하여》
(Vom radikalen Bosen in der menschlichen Natur)란 제목으로서

당시의 계몽주의사상과 종교에 관한 칸트의 솔직한 견해가
대학 관리처로부터 경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커피와 담배를 즐겼던 칸트는
1804년 2월 12일 새벽 4시, 80세를 향년으로 생을 마감한다.

[추모 K-Pop]


그가 마지막으로 "그것으로 좋다"(Es ist gut.)라는 말을 남겼다.

한국.net


[칸트 철학]
칸트는 18세기 철학에 있어 가장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평가 받는다.

실제로 칸트 이전의 철학과 이후의 철학은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칸트가 초감각적인 세계를 논하는 기존의 형이상학과는
다른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의 체계를 세우려고 했으며,

그러한 체계의 근거가 되는 인식론을 연구하여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인식론에 바탕을 두고 두 사상의 한계에서 벗어난 철학을 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하는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은 인식론에 근거를 두고
이성이 이성 자신을 비판하는 철학이다.



[비판 철학]
칸트의 철학이 비판철학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의 세 가지 저서《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서 연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책의 제목 끝에 붙인 '비판'이라는 개념은
칸트가 과거의 철학을 비판적 연구 분석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또한 칸트는 이러한 측면에서 스스로의 철학을
'비판철학'이라고 불렀다.

칸트가 이러한 비판 철학을 펼치게 된 데에는,
뉴턴의 자연과학과 루소의 철학, 그리고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한
흄의 회의를 받아들인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세 권의 저서 내용을 요약한 질문과 각 책이 다룬 영역은
다음과 같다.

《순수이성비판》(1781년): 나는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식론
《실천이성비판》(1788년):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윤리학
《판단력비판》(1790년):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나?-미학

[인식론]
17~18세기 철학은 인식론으로 크게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로 나뉘었다.

여기서 합리주의는 인간이 본래부터 지닌
선험적 이성을 중시하였고,
경험주의는 인간이 경험함으로써 지식을 얻는 귀납법을 중시하였다.



합리주의의 방식은 "백마는 희다"와 같이 술어가 주어의 개념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분석판단을 하므로,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경험주의의 방식은 귀납적인 방법을 강조하며 종합판단을 한
나머지 진리의 필연성을 찾는 데 한계를 드러내었다.

여기서 칸트는 이 두 사상을 통합한 선험주의를 주장하였다.

즉, 지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인식을 확장하는
'선험적 (선천적:a priori) 종합판단' 을 긍정하였다.

[추천 Youtube 동영상]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의 이성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면서 인간 인식에 선험적 형식을 도입하는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Kopernikanische Wendung)을 시도하였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인간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 대상의 관념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이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대상이 있는 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그 대상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에게 진리는 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하는 무엇이다.

칸트의 인식론은 감성을 통해 얻은 감각을 범주를 사용하여
지성(Verstand:오성)으로 인식하고,
초경험적인 것은 이성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감성은 어떤 물자체를 지각하는 능력이며,
범주는 이러한 감각을 인식하게 하는 하나의 틀이다.

따라서 감성과 지성은 인간이 지각 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요건인 셈이다.

여기서 칸트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데 시간과 공간 값이
필요하다고 본다.

구체적인 연장과 존재하는 시간이 없으면
우리는 인식을 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감정과 같은 것은 공간 값은 없지만
시간 값만 있는 것으로 보았다.

칸트는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초경험적인 것을 이성으로 알려고 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가령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존재론적 증명 등을 비판하여
여러 형이상학적인 사상들을 배격하고자 하였다.

이 말은 형이상학의 영역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 할 수 없는 것으로,
어떤 형이상학적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칸트는 인간의 지성(Verstand)이 사물의 현상을
분류, 정리할 수 있으나,
그 현상 너머에 숨은 본질에는 이를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사물의 본질이나 신에 해당하는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에 따르면,
기존의 형이상학은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초감각적이고
초경험적인 것을 인식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이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칸트는 형이상학이 그런 오류에서 벗어나
이성의 인식체계에 대한 학문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칸트는 형이상학적인 신,
영혼들의 존재를 도덕을 다루는 과정에서 다시 요청하게 된다.



[윤리학]
칸트는 윤리학을 연구하면서,
주관적인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나는’ 도덕이 아니라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을 추구하였다.

모두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도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을 도덕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칸트는 인간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선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여기서 칸트는 인간은 마음 속에서 충동과 도덕이
투쟁한다고 보았다.

즉, 옳고 그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인간의 마음 속에서는
충동과 도덕심이 투쟁을 하며,

도덕이 이기면 선한 행동을 하고
충동이 이기면 그른 일을 하게 된다고 보았으며,
그렇다고 도덕이 충동을 없애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칸트는 행위의 ‘결과’보다는
행위의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어떤 결과를 얻거나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수단으로서의 명령’이 아니라,

명령 그 자체가 목적인‘무조건적인 명령'을 도덕법칙으로
제시하였다.

다시 말하면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적인 가언(假言) 명령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의무로서의 명령인 정언(定言) 명령을 내세운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누구나 어떤 조건에서든 따라야만 하는
정언 명령은 다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명령은,
“네 의지의 준칙(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이다.

이 말은 쉽게 말해 누구든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스스로
생각할 때 다른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명령은,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위하라”이다.

칸트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자연론적인 인간관을 반대하였다.
인간이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본

자연론적인 인간관을 부정하면서,
그는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을 강조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도덕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인격체로서,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며
그에 합당한 존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영향과 비판]
[영향]
서양 사상에 대한 칸트의 폭넓은 영향은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이다.
특정한 사상가에게 준 구체적인 영향을 넘어서,

칸트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에 이르는
철학연구가 칸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철학의 틀 구조를 바꾸었다.

달리 말하면,
그는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을 이루었다.
이러한 전환은 공리주의에서 후기 칸트학파의 사상에 이르는

혁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채로 철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분야 모두에서 유지되었다.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우리의 지식에 대한
연구의 중심에서 인간 주체 또는 아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사물 자체와 우리에게 그 사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칸트의 생각은 그 전부 또는 일부가 이후에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친 학파들에게서 드러나고 있다.

독일 관념론, 실증주의, 현상학, 실존주의, 비판 이론,
언어 철학,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해체주의가 그러한 예이다.

칸트의 영향은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에서도 나타나는 데,
막스 베버의 사회학과 장 피아제의 심리학,
그리고 노암 촘스키의 언어학을 예로 들 수 있다.

칸트가 패러다임을 철저하게 바꾸었기 때문에,
특별히 칸트의 저서나 칸트의 용어를 언급하지 않는
학자들까지도 칸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생애 동안에, 그의 사상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는 1780년대에서 1790년대 까지
라인홀드, 피히테, 셸링, 헤겔, 노발리스에게 영향을 끼쳤다.

칸트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글쓰기에 영향을 받아 일어난
철학 운동은 독일 관념론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독일 관념론자인 피히테와 쉘링은,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에 포함되었던

"절대적인 것", "신", "존재"와 같은 개념을
칸트 비판 철학의 영역으로 옮기려고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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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칸트가 살아있을 당시부터 칸트 철학에 대한
비판과 반발이 있었다.

칸트는 이성의 능력과 종교를 모두 비판했고,
이러한 비판은 당시에 이성을 신뢰하던 철학자나 종교를 믿던
종교인에게는 매우 불만스러운 것이었다.

[제자가 바라본 칸트]
칸트의 제자 요한 헤르더는 그의 스승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사고를 위한 이마는 침착한 유쾌함과 기쁨의 자리였다.
말에는 풍부한 사상이 넘쳐흘렀고 농담과 재치가 장기였다.

알만한 가치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어떤 음모나 편견 그리고 명성에 대한 욕망도,
진리를 빛나게 하는 것에서
그가 조금이라도 벗어나도록 유혹하지 못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부드럽게 강요했다.

내가 최고의 감사와 존경을 다해 부르는 그의 이름은,
이마누엘 칸트이다."



[저서]
《일반 자연사와 천체론》 (Allgemeine Naturgeschichte und
Theorie des Himmels, 1755년)
《미와 숭고의 감정에 관한 고찰》
(Beobachtungen uber das Gefuhl des Schonen und Erhabenen, 1764년)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 이재준 옮김,
책세상, 2005년
《가감계와 가상계의 형식과 원리》
(De mundi sensibilis atque intelligibilis
forma et principiis, 1770년)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 최소인 옮김,
이제이북스, 2007년

《순수이성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nft,
1판, 1781년: 2판, 1787)
최재희 옮김, 박영사, 2009년(개정판)
백종현 옮김(전2권), 아카넷, 2006년

《미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
(Prolegomena zu einer jeden
kunftigen Metaphysik, die als
Wissenschaft wird auftreten
konnen, 1783년)

《형이상학 서설》,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12년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
(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arung?, 1784년)

《세계시민적 견지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urgerlicher
Absicht, 1784년)

《세계시민적 견지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이석윤 옮김

《윤리 형이상학의 정초》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년)

《윤리형이상학 정초》,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5년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이원봉 옮김, 책세상, 2002년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Metaphysische Anfangsgru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년)

《실천이성비판》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년)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2년
최재희 옮김, 박영사, 2011년

《판단력비판》 (Kritik der Urteilskraft, 1790년)
이석윤 옮김, 박영사, 2005년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9년

《순수이성의 한계 내의 종교》
(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 1793년)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백종현 옮
김, 아카넷, 2011년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Zum ewigen
Frieden. Ein philosophischer Entwurf, 1795년)
이한구 옮김, 서광사

《윤리 형이상학》 (Die Metaphysik der Sitten, 1797년)

[칸트 전집]
독일 왕립학술원에서 간행한 전집
(Kant gesammelte Schriften, 편집
Konigliche-Preußi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en, 1910ff., Berlin).
흔히 "학술원판"으로 불리는 이 전집은 칸트
저술 인용의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간행한 봐이셰델 편집
(Kants Werke, W. Weischedel (Hrsg.), Suhrkampff)

한국.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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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재미로만 참조바람: 3無 신뢰성 없음, 정확성 없음, 일관성 없음]
(from https://chat.openai.com/chat)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철학자, Prussian-Germany)가
제일 좋아한 역사적 인물은?


임마누엘 칸트가 가장 좋아한 역사적 인물은
그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휴미(David Hume)입니다.

칸트는 휴미의 작품을 읽고 큰 영감을 받았으며,
그의 철학을 발전시키는 데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칸트의 주요 저서 중 하나인
"순수 이성 비판"("Critique of Pure Reason")에서는
휴미의 의문주의적 관점에 대한 비판과 대응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철학자, Prussian-Germany)가
좋아할만한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 제목은 무엇일까?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과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의 관련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칸트가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를
즐길 만한 곡을 선택한다면,
그의 철학적인 측면과 어울릴 수 있는 제목 중 하나는
"무한한 사랑"일 수 있습니다.

[Infinite Love (무한한 사랑)]


칸트의 철학에서는 도덕적 의무와 감정적인 도덕적 행위 사이에
무한한 사랑과 관련된 개념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철학자, Prussian-Germany)가
경험한 재미있는 일화(episode)는?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삶 동안 규칙적이고 조용한 삶을 살았으며,
많은 이야기나 에피소드가 남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칸트가 평소에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고,
시계를 보며 정확한 시간에 산책을 하거나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등의 습관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칸트는 특히 그의 지식과 철학적 사색에 집중하기 위해
단순한 삶을 선택했으며,

그에게는 "재미있는" 일화라기보다는 철저하고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철학자, Prussian-Germany)는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일까?


임마누엘 칸트는 양심의 중요성과 도덕적 의무에 대한
개념을 강조한 철학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순수 이성 비판"("Critique of Pure Reason")과
"순수 실천 이성 비판"("Critique of Practical Reason") 등의
주요 저서를 통해 인간의 도덕적 의무에 대해 깊이 고찰했습니다.

칸트의 유명한 도덕 이론인 "칸트의 의무론"은
양심과 천성적인 도덕 법칙에 대한 개념을 중시합니다.

그는 인간의 도덕적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양심에서 비롯된 도덕 법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칸트는 양심적이고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칸트가 얼마나 양심적이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양심과 도덕적 의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바탕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의 생활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철학자, Prussian-Germany)의
양심(Conscience) 등급(Grade)을
A(매우 우수), B(우수), C(보통), D(낮음) 로 Grading 한다면,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철학자, Prussian-Germany)의
양심등급(Conscience Grade)은?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에 따르면,
양심은 개인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취할 때
그 행동의 동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칸트는 양심을 중요하게 여기며,
양심이 도덕적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칸트는 양심을 그 자체로 등급을 매길 수 있는
객체로 볼 것이 아니라,
양심의 방향성과 행동에 대한 도덕적 원칙을 따르는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길 것입니다.

이에 따라, 칸트의 양심 등급은 "A(매우 우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 도덕적 의무를 수행할 때 양심을 따르고,
이를 통해 보다 순수하고 올바른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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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anuel Kant

[Born] 22 April 1724
Konigsberg, Prussia (now Kaliningrad,
Russia)

[Died] 12 February 1804 (aged 79)
Konigsberg, Prussia

[Residence]
Konigsberg, Prussia

[Nationality] Prussian

[Alma mater]
University of Konigsberg
(PhD, 1755; Dr. habil., 1770)

[Era] 18th-century philosophy

[Region] Western philosophy

[School] Kantianism
Enlightenment philosophy

[Main interests]
Epistemology, Metaphysics,
Ethics, Cosmogony

[Notable ideas]
Categorical imperative
Transcendental idealism
Synthetic a priori
Noumenon Sapere aude
Nebular hypoth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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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anuel Kant (22 April 1724 ~ 12
February 1804) was a German philosopher
who is considered the central figure of
modern philosophy. Kant argued that
fundamental concepts of the human mind
structure human experience, that reason
is the source of morality, that
aesthetics arises from a faculty of
disinterested judgment, that space and
time are forms of our understanding,
and that the world as it is "in-itself"
is unknowable. Kant took himself to
have effected a Copernican revolution
in philosophy, akin to Copernicus'
reversal of the age-old belief that the
sun revolved around the earth.

His beliefs continue to have a major
influence on contemporary philosophy,
especially the fields of metaphysics,
epistemology, ethics, political theory,
and aesthetics.

한국.net

Kant in his critical phase sought
to 'reverse' the orientation of pre-
critical philosophy by showing how the
traditional problems of metaphysics can
be overcome by supposing that the
agreement between reality and the
concepts we use to conceive it arises
not because our mental concepts have
come to passively mirror reality, but
because reality must conform to the
human mind's active concepts to be
conceivable and at all possible for us
to experience.

Kant thus regarded the basic categories of
the human mind as
the transcendental "condition of
possibility" for any experience.

Politically, Kant was one of the
earliest exponents of the idea that
perpetual peace could be secured
through universal democracy and
international cooperation. He believed
that this eventually will be the
outcome of universal history, although
it is not rationally planned.

The exact nature of Kant's religious ideas
continue to be the subject of
especially heated philosophical
dispute, with viewpoints ranging from
the idea that Kant was an early and
radical exponent of atheism who finally
exploded the ontological argument for
God's existence, to more critical
treatments epitomized by Nietzsche who
claimed that Kant had "theologian
blood" and that Kant was merely a
sophisticated apologist for traditional
Christian religious belief, writing
that "Kant wanted to prove, in a way
that would dumbfound the common man,
that the common man was right: that was
the secret joke of this soul."

In Kant's major work, the Critique of
Pure Reason (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 he attempted to
explain the relationship between reason
and human experience and to move beyond
the failures of traditional philosophy
and metaphysics. Kant wanted to put an
end to an era of futile and speculative
theories of human experience, while
resisting the skepticism of thinkers
such as David Hume.

Kant regarded himself as ending and showing the way
beyond the impasse which modern
philosophy had led to between
rationalists and empiricists, and is
widely held to have synthesized these
two early modern traditions in his thought.

Kant argued that our experiences are
structured by necessary features of our
minds. In his view, the mind shapes and
structures experience so that, on an
abstract level, all human experience
shares certain essential structural
features. Among other things, Kant
believed that the concepts of space and
time are integral to all human
experience, as are our concepts of
cause and effect.

One important consequence of this view is that our
experience of things is always of the
phenomenal world as conveyed by our
senses: we do not have direct access to
things in themselves, the so-called
noumenal world. Kant published other
important works on ethics, religion,
law, aesthetics, astronomy, and history.

These included the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 the
Metaphysics of Morals (Die Metaphysik
der Sitten, 1797), which dealt with
ethics, and the Critique of Judgment
(Kritik der Urteilskraft, 1790), which
looks at aesthetics and teleology.

Kant aimed to resolve disputes between
empirical and rationalist approaches.
The former asserted that all knowledge
comes through experience; the latter
maintained that reason and innate ideas
were prior. Kant argued that experience
is purely subjective without first
being processed by pure reason.

He also said that using reason without applying
it to experience only leads to
theoretical illusions. The free and
proper exercise of reason by the
individual was a theme both of the Age
of Enlightenment, and of Kant's
approaches to the various problems of philosophy.

His ideas influenced many thinkers in
Germany during his lifetime,
and he moved philosophy
beyond the debate between the
rationalists and empiric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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