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나철 羅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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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羅喆, 독립운동가, 대종교 창시자, Korea
나철 (나두영, 나인영)
독립운동가, (전)종교기관단체인,
대종교의 창시자 및 초대 교주


[출생-사망] 1863년 12월 2일, 전라남도
보성(寶城)- 1916년 9월 12일 (53세)

[본명] 나두영(羅斗永),나인영(羅寅永)
[본관] 나주(羅州)
[호] 홍암(弘巖)

[경력사항]
1910.07 대종교 도사교
1909.01 단군교 도사교
1904 유신회

[수상내역]
1962 건국훈장 독립장


[요약]
나철 선생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관료의
길을 걸어갔으나 일제의 침략 야욕에 항의
하여 사표를 던졌다. 경술국치 후에 민족
정기를 수호하기 위해 단군 신앙인 대종교
를 창시하였다. 총본사를 백두산 아래 화룡
현 청파호에 두고 애국 지사들을 길러냈
다. 청산리전투를 주도한 서일 김좌진과
박은식 김규식 등 수많은 애국 열사들이
대종교의 토양 위에서 커나갔다.
(참조 위 SN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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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 [ 羅喆 ]

1863(철종 14)∼1916.
대종교의 초대 교주,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본명은 나두영(羅斗永)
·나인영(羅寅永). 호는 홍암(弘巖). 전라
남도 보성(寶城)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29세 때 문과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이후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와 승문원권지
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를 역임하였다.

일본의 침략이 심해지자 관직을 사임하고
호남 출신의 지사(志士)들을 모아 1904년
유신회(維新會)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여
구국운동을 하였다.


을사조약 체결 직전인 1905년 6월오기호(吳
基鎬), 이기(李沂), 홍필주(洪弼周) 등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동양의 평화를 위하
여 한·일·청 삼국은 상호 친선동맹을 맺
고 한국에 대해서는 선린의 교의로써 부조
(扶助)하라.”는 의견서를 일본의 정객(政
客)들에게 제시하였으나 응답이 없자 일본
의 궁성 앞에서 3일간 단식투쟁을 하였다.

그러던 중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조선
과 새로운 협약을 체결한다는 소식이 각 신
문에 발표되자, 나라 안에 있는 매국노들
을 모두 제거해야 국정을 바로잡을 수 있다
고 생각하고 단도(短刀) 두 자루를 사서 품
에 넣고 귀국하였다.


교단에 전하는 말로는 서울에 도착하여
숙소로 걸어가는 도중에 한 백전 도인에게
서 두 권의 책을 받았는데, 그 책이 바로
『삼일신고(三一神誥)』와 『신사기(神事
記)』라고 한다.

1906년, 다시 한 번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
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이토 히로부
미와 대립관계에 있던 오카모토[岡本柳三
助]·도야마(頭山滿) 등을 만나 협조를
구했으나 별 효과를 얻지 못하였다.


또한 귀국길에 폭탄이 장치된 선물상자를
구입하여 을사오적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07년 1월부터 암살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하여 3월 25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오적의 주살(誅殺)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서창보(徐彰輔) 등이 붙잡히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자, 동지들의 고문을
덜어 주기 위해 오기호, 최인식(崔寅植) 등
과 함께 평리원(平理院)에 자수하여 10년
의 유배형을 받았다.

고종의 특사로 그 해에 풀려나서 1908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외교적인 통로에 의
한 구국운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소득 없
이 귀국하였다.

교단에 전하는 말로는 일본에 체류할 때
두일백(杜一白)이라는 도인이 찾아와서
단군교를 포교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라
는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 귀국하자마자 오기호, 강우(姜虞),
유근(柳瑾), 정훈모(鄭薰模), 이기, 김인
식, 김춘식(金春植) 등의 동지들과 함께
서울 재동에서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
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거행한 뒤
단군교를 공표하였다. 이 날이 바로 중광절
(重光節)이다.

곧 교직을 설치하고, 초대 교주인 도사교
(都司敎)에 취임하여 5대 종지를 공포하였
다. 또한 단군의 개국과 입도(立道)를 구분
하여 서기전 2333년에 124년을 더하여
‘천신강세기원(天神降世紀元)’이라고 하
였다. 1910년 8월에는 대종교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1911년에는 대종교의 신관(神觀)을 삼신일
체의 원리로 설명한 『신리대전(神理大
全)』을 발간하는 한편, 강화도 마니산
제천단(祭天壇)과 평양의 숭령전(崇靈殿)
을 순방하고 만주 화룡현 청파호(靑波湖)
에 교당과 지사(支司)를 설치하였다.

이와 같은 교세의 급속한 확장에 당황한
일제는 1915년 종교통제안(宗敎統制案)을
공포하고 대종교를 불법화하였다. 이로 말
미암아 교단이 존폐의 위기에 봉착하자
1916년 음력 8월 4일, 상교(尙敎) 김두봉
(金枓奉)을 비롯한 시봉자(侍奉者) 6명을
대동하고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
들어가 수행을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사당
앞 언덕에 올라 북으로는 백두산, 남으로
는 선조의 묘소를 향해 참배한 뒤 “오늘 3
시부터 3일 동안 단식 수도하니 누구라도
문을 열지 말라.”고 문 앞에 써붙인 뒤
수도에 들어갔다.

그러나 16일 새벽 이상스럽게 인기척이
없어 제자들이 문을 뜯고 들어가니, 8월 15
일 그는 자신이 죽음을 택한 이유를 밝힌
유서를 남기고 폐기법(閉氣法)으로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그의 유언에 의하여 청파호 언덕에 유해를
안장하였으며, 그 후 대종교에서는 그가
운명한 날을 가경절(嘉慶節)이라 하여
4대경절(四大慶節)의 하나로 기념하고 있
다. 1962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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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羅喆, 1863년 12월 2일 ~ 1916년 8월
15일)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대종교의
창시자이고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본명은
나두영(羅斗永), 개명은 나인영(羅寅永)이
며 아호는 홍암(弘巖)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부정자(副正字)를 지냈으
며, 1897년(광무11년) 2월에 을사조약(乙巳
條約)의 매국대신(賣國大臣)을 저격한
죄로 귀양살이를 하였고, 귀양이 끝나자
정계와 손을 끊고 민족의식의 집결을 위한
국조(國祖) 단군숭배 사상을 고취하며 수도
(修道)에 전념하였다. 1916년 일본 천황과
국회에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장서(長書)
를 보내고 자결함으로써 순교(殉敎), 순국
(殉國)하였다. 아버지는 유학 나용집(羅龍
集), 어머니는 송씨(宋氏)이다.


[생애]
전라남도 보성 출신인 그는 일찍이 한학을
공부하고 1891년(고종 28)에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이어 1891년에 가주서에 제수되
고, 1895년에 징세서장(徵稅署長)에 임명되
었으나 곧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귀향한
후 1904년에 강진의 오기호, 부안의 이기,
최전(崔顓) 등 호남 출신의 지식인들과 함
께 비밀 결사인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하였
고, 을사조약 직전인 1905년 6월에는 오기
호(吳基鎬), 이기(李沂), 홍필주(洪弼周)
등과 일본에 건너가 동양 평화를 위한 단식
농성을 하는 등 일찍부터 민족주의적 운동
에 관심이 많았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에
는 이철, 강원상(康元相) 등을 포섭하여
오적암살단을 결성, 을사오적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1907년 자수하여 지도(智
島)에 10년 유형을 선고 받았으나, 1년후
풀려났다.

그 후 나철은 민족 종교 운동에 주력해
1909년 1월 15일 한성부에서 대종교를
창시했다. 한일 병합 조약 이후로는 일제
의 박해를 피해 교단을 만주 쪽으로 이동했
는데 이때 서일을 비롯한 대종교인들이
독립 운동에 대거 뛰어들었다.

1916년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한배검
(단군)에게 제천의식을 올린 뒤 순명삼조
(殉命三條, 한배님께 제천하고, 대종교를
위하고, 한배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 목
숨을 끊는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결
했다. 저서에 대종교 경전인 《신리대전(神
理大全》 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
장이 추서되었다. 맏아들 나정련, 둘째 아
들 나정문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독립운동가이다.

오늘날 대종교에서는 음력 1월 15일을 중광
절(重光節, 나철이 대종교를 창시한 날),
음력 8월 15일을 가경절(嘉慶節, 나철이 순
교한 날)로 정하고 이를 기념한다.

[구국운동]
구국운동(救國運動)의 일환책으로 1909년
오기호(吳基鎬)등 동지 10명과 함께 서울
재동(齋洞)에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
神位)를 모셔 놓고 <단군교 포명서>(檀君敎
佈明書)를 공포한 것이 단군교, 즉 대종교
의 시작이다. 1년 뒤 대종교로 개칭하는 한
편(신도수 2만여 명으로 증가), 북간도에
지사를 설치하였는데 1914년에는 본사를
그곳으로 옮겨 포교영역을 만주 일대까지
넓혔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일제는 1915년 10월
<종교통제안>을 공포하여 탄압을 노골화하
였고 교단의 존폐위기에 봉착한 나철은
이듬해 1916년 8월 15일 구월산(九月山)
삼성사(三聖祠)에서 일제의 폭정을 통탄하
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2세 교주가 된 김교헌(金敎獻)은 총본사를
동만주 화룡(和龍)으로 옮긴 뒤 홍범규칙
(弘範規則)을 공포하는 한편, 비밀결사단체
인 중광단(重光團)을 조직하여 무장독립운
동단체인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발전시
켰으며 1920년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에서
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일제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다음해에 대토벌작전을 전개하여
수많은 교도들을 무차별 학살하였으며,
김교헌은 통분 끝에 병으로 죽었다.
김교헌은 대종교를 제도적으로 정립하고
역사적으로 고증하기 위해 『신단실기』(神
檀實記), 『신단민사』(神檀民史), 『단조
사고』(檀祖事攷) 등을 저술하였다.

3세 교주가 된 윤세복(尹世復)은, 일제의
압력을 받은 길림성장(吉林省長) 장쭤상(張
作相)에 의해 <대종교 포교금지령>이 내려
지자 총본사를 발해의 옛 도읍터였던 동경
성(東京城)으로 이전, 대종학원을 설립하
고 대종교서적간행회를 발족시켜
『삼일신고』, 『종지강연』 등을 간행하였
다. 그러나 천전(天殿) 건립을 서두르던
중 1942년 11월 윤세복 외 20명의 간부가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한 단체구성>이란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고문으로
사망하거나 옥사하였다.


[가경절]
1916년 음력 8월 14일, 상교(尙敎) 김두봉
(金枓奉)을 비롯한 시봉자(侍奉者) 6명을
대동하고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 들어가
수행을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사당 앞 언덕
에 올라 북으로는 백두산, 남으로는 선조
의 묘소를 향해 참배한 뒤 “오늘 3시부터
3일 동안 단식 수도하니 누구라도 문을 열
지 말라.”고 문 앞에 써붙인 뒤 수도에 들
어갔다. 그러나 16일 새벽 이상스럽게 인기
척이 없어 제자들이 문을 뜯고 들어가니,
나철은 자신이 죽음을 택한 이유를 밝힌 유
서를 남기고 조식법(調息法)으로 이미 숨
을 거둔 뒤였다. 나철 유언대로 청파호에
유해를 안장하였으며, 그 후 대종교에서는
나철이 운명한 날을 가경절(嘉慶節)이라
하여 4대절(四大節)의 하나로 기념하고
있다.

[저서]
『신단실기』(神檀實紀)
『삼일신고』(三一神誥)
『신리대전』(神理大全)
=====================================
Daejongism (대종교, Daejonggyo or
Taejongkyo, "religion of the Divine
Progenitor" or "great ancestral
religion") or Dangunism (단군교,
Dangungyo or Tangunkyo, "religion of
Dangun") is the name of a number of
religious movements within the
framework of Korean shamanism, focused
on the worship of Dangun (or Tangun).
There are around seventeen of these
groups, the main one of which was
founded in Seoul in 1909 by Na Cheol
(나철, 1864-1916).

Dangunists believe their mythos to be
the authentic Korean native religion,
that was already around as Gosindo
(古神道, "way of the Ancestral God"
or "ancient way of God") at the time of
the first Mongol invasions of Korea,
and that was revived as "Daejongism"
(Daejonggyo) just at the start of the
Japanese occupation. The religion was
suppressed during the Japanese rule.

The god of the religion is the
legendary king Dangun, who ruled over a
Korean empire around 5000 years ago.
Its main tenet is that the Koreans have
their own God and they have no need to
worship foreign gods. Its emphasis is
on the national identity and unity of
the Korean people (known as minjok) and
as such has been associated with Korean
nationalism (and sometimes
ultranationalism).

Daejongism does not focus so much on
institutions or rituals but rather on
central doctrines and associated
mythologies, so that it is more
definable as a creed or a faith system
rather than an organized religion. A
1995 census found that fewer than
10,000 Koreans claim to follow the
religion.
(from wikipedia.org/wiki/Daejongism)

(from naver.com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
문화대백과, wikipedia.org)


Daejongism, Dangunism, Domestic, influence(+) ~
(PIG: time-variant)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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