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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드-배위량,William Baird,숭실대 설립자,USA
윌리엄 M. 베어드 (William M. Baird)
숭실대학교 설립자 및 초대 학장, 배위량(裵偉良) 박사

제1대 합성숭실대학교 학장 (1897년 10월 - 1915년 3월)



[출생] 1862년 6월 16일
미국 인디애나 주, 클라크 카운티 찰스타운

[찰스타운 주립공원, 찰스타운, 인디애나]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사망] 1931년 11월 29일, 대한민국 평양 (69세)

[북한, 걸어서 평양속으로]


[24분 Youtube 동영상]


[국적] 미국

[미국 여행]


[학력] 하노버대학교 철학·신학 박사

[직업] 합성숭실대학교 학장, 목사

[종교] 북장로교

[요약]
윌리엄 M. 베어드(William M. Baird,
1862년 6월 16일 - 1931년 11월 29일)는 숭실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초대 학장이다.

[숭실대학교 캠퍼스투어]


베어드의 한국식 이름은 '배위량(裵偉良)'이다.



베어드는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로,
1891년에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1880년대 조선의 풍경]


[1890년대 서울의 풍경]


1897년에 평양에 이주한 그는 숭실학당을 개설하고,
이를 1906년에 한국 최초의 근대 대학
(대한제국으로부터 인가)으로 발전시켰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평양의 모습 (1895년-1930년]


1931년 숭실전문학교와 숭실중학교 개교식에
참여한 지 한달 후에 장티푸스에 걸려 별세했다.



[생애 활동 등]
윌리엄 베어드는(William M. Baird, 한국명 배위량, 1862-1931)
1862년 6월 16일 미국 인디애나 주,
클라크군의 찰스타운(Charlestown)에서 출생하였다.

[1800년대 미국 영상]


스코틀랜드에서 북아일랜드로 이주한 언약도의 후손으로
스코틀랜드 교회 집안에서 자라났다.

윌리엄 베어드의 조부인 존 베어드는
1810년 미국 필라델피아로 도미한 후

테네시주, 오하이오주, 켄터키주를 전전하다가
인디애나주 클라크군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베어드의 아버지인 존 마튼 베어드는 정착한 클라크군에서
가업으로 삼은 방직업에 종사하였다.

베어드 가족들은 종교적 신념으로 노예제를 반대했으며
그로 인해 인디애나주로 이주했다고 전해진다.

윌리엄 베어드는 어머니 낸시 패리스 베어드에게
종교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머니 낸시는 아들 윌리엄에게
엄격한 개혁교회 전통으로 양육하며
윌리엄의 부모 모두 자녀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형편이 좋지 못해 카운티의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 이외의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다.

윌리엄 베어드는 그의 형 존 베어드가 마련하는 학비로
하노버 대학교를 다녔고 매코믹 신학교 과정을 마쳤다.

윌리엄 베어드는 신학교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콜로라도 델노트(Del Norte)에 있는
소형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동시에 멕시코 청년 대상의 미션스쿨인 델노트 대학의
학장을 맡기도 했다.

경제적 이유로 해외 선교 사역에 바로 가지 못했다.

연세대 설립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형이자
타자기 회사 사장인 존 언더우드가 한국에 파견되는
선교사들의 봉급 지급을 제안한다는 소식을

새뮤얼 오스틴 모펫 선교사가 듣고
장로회 선교본부와 베어드에게 편지를 썼고,
선교본부가 베어드를 한국 선교사로 지명하였다.

베어드는 자신이 있던 델 노트르 대학 학장을 그만두고,
하노버 대학의 동기였던 2살 어린 애니 로리 애덤스와
28세에 결혼하고 한국행에 올랐다.

[하노버 칼리지 투어]


[찬조 K-Pop]


이로써 베어드는 한국과의 연이 시작되었다.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는 1891년부터 1931년까지 40여년을
한국에서 활동했던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교회에
크게 기여했던 인물이다.

특히 부산 지역 최초의 북장로교 선교사로서 부산 지부와
대구 지부를 개척하는 등 초기 부산 경남 지방의 선교에
크게 이바지했다.

내한 후 1892년 5월 남해안을 따라 전도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해, 경상도 남부 일대의 답사여행을 시작으로,
부산-서울 간의 제3차 전도여행을 떠났다.

또 1895년 선교구역을 대구로 옮겨서도 1897년에도
약 7주 동안 평북지방 곳곳을 답사여행하였다.

이 여행은 총연장 1,120km의 도보여행이었다.

그러나 고되지만 이러한 5차 전도여행을 통해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었다.



1891년 1월 29일 부산항으로 입국한 베어드 선교사는
5년간 부산 지방에서 활동하면서 사역 방향을 4가지로 구상했다.

첫째, 기독교 신자 가정을 찾아 이들을 보호하고 후원한다.

둘째, 사랑방을 통해 지역 주민과의 접촉과 유대를 강화한다.

셋째, 성경과 기독교 문서의 보급을 통해 복음전파와
문맹퇴치운동을 병행한다.

넷째, 경상도 지역의 순회 전도여행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의
광범위한 접촉을 유지하며 한국인의 생활과 정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1. 순회 전도: 베어드 선교사는 순회 전도를
‘현지 탐사와 전도 여행(exploratory and
evangelistic journey)’이라 부르며

선교 대상 지역을 답사하고
전도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순회 전도는 베어드 선교사가 가장 중시한 영역으로,
세 차례의 전도 여행을 통해 지금의 경상남북도와
서울 지방을 순회했다.

2. 사랑방 전도: 사랑방 전도는 베어드의 독특한 전도 방식이었고,
1892년 6월경 완공되었던 선교관을 통해 이루어졌다.

베어드는 한국 생활을 통해 남성들의 대화와 교제의 공간인
사랑(舍廊)방의 기능을 이해하여 사랑채를 짓고 그곳을 누구든지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했다.

이곳에서 집회와 기도 모임이 드려졌고,
기독교 문서를 번역하여 방문자들에게 배포하기도 하는 등
사랑방 전도는 부산과 인근 지역 기독교운동의 기초를 제공했다.

3. 초량 교회의 설립: 구도자들과 회심자가 생겨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랑방 모임은 교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두차례 경상남북도를 순회한 후,
1893년 6월 4일부터 본격적으로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찬조 K-Pop]


4. 한문 학교의 설립: 베어드 선교사는
부산에 있는 소년들을 위한 학교(School for boys
of primary grade)를 1895년 1월 부산에서 처음 열었다.

당시 모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싶어해
이런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한문 외에 조선어, 산수, 지리 등과 더불어
성경을 가르치고 매일 예배를 드렸다.

학비가 전혀 없어 자선 사업의 성격이 짙었던 이 학교는
그해 2월 중순에는 20여명까지 학생이 불어났다.

5. 문서 활동: 베어드는 1893년 미얀마 선교사였던
저드슨(A. Judson)의 ‘Guide to Heaven’을 번역한

‘텬로지귀(天路指歸)’, 존(G. John)의 ‘True Saviour of
the World’을 번역한 ‘구셰진쥬(救世眞主)’,
‘The Atonement’를 번역한 ‘그리스도의 사업’등 세권을
부산에서 편찬했다.

또한 베어드는 부산에서 사역하는 동안 일기를 썼는데,
이는 당시 부산 경남 지역의 상황과 선교 활동,
교회 역사를 헤아리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6. 대구 지부 개척: 베어드는 선교 여행을 통해
개항지가 아닌 내륙 선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895년에는 사역지를 대구로 옮겨 제일교회와
계성학당(계명대)을 설립했다.

1896년 초 대구 남문 근처의 가옥 한채를 사비로 매입한 후
그곳에 진출했다.

그러나 베어드가 대구로 영구 이주를 준비하던 중
서울로 전출되어 그 대신 그의 처남
제임스 아담스(James E. Adams)가 대구 지부를 맡게 되었다.

베어드의 부산 선교 활동은 이후
북장로교 선교부 21명의 선교사들의 부산 지역 선교 활동에
초석을 닦았고,

이후 서울과 평양에서의 순회 전도와 학교 설립,
문서 활동 등 영향력 있는 선교사로 지도력을 행사하는 데
큰 경험과 영향을 주었다.

7. 또한 이듬해 상경해서 경신학당에서 교육을 담당하다가
1897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숭실학당을 창설하고,
1906년 9월 감리교와 연합해 숭실대학교로 발전시켰다.



[숭실학당 설립]
베어드는 "우리의 교육정책"을 입안하였고
베어드의 정책은 조선선교부의 교육정책으로 채택되었다.

이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1897년 평양으로 파송되었다.

당시 평양은 교세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지역이었다.

평양의 늘어나는 초등학교 졸업생과,
평양에서 급격하게 늘고있는 교회들을 이끌
지도자의 중등교육이 필요함에 따라

평양선교부는 베어드의 중등교육반 운영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1897년 아무것도 없이 베어드의 사랑방에서 시작한
중등교육반은 숭실학당의 시작이었다.


[수정: 1887년 --> 1897년 '숭실학당' 출범]

숭실학당은 성서, 지리 산수, 역사 등을 가르치며,
평양의 선교활동 성공과 초등학교의 성장과 더불어
재적 인원이 증가하였다.

베어드는 선교부의 지원금과 스왈렌 선교사의
기부금으로 교사를 건립하였다.

베어드는 숭실학당의 교육언어를 한국어로 채택하며
미국 중등교육 교과서를 한국의 실상에 맞게
번역하고 출판했다.

1900년대에 들어서며 교파가 연합하는 방향으로
선교가 시작되면서 베어드는 감리회와 연합으로

1906년 합성숭실대학(Union Christian College, 合成崇實大學)을
설립하였다.


1916년 3월 31일 105인 사건 관련 혐의 등으로
숭실대학장을 사임한 뒤에는 교재발간 등
문서선교에 치중했다.

기독교서회 편집위원, 성서공회, 성서출판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주일학교 교재와 성서 번역 등을 하는
문서 사역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에
베어드 선교사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추모 K-Pop]


5남매의 현모이자 양처였던 베어드 부인은
남편의 교육 및 전도 사역에 많은 도움을 주고

교과서 번역, 선교사들을 위한
한국어 지침서를 펴내기도 했다.



찬송가 '멀리 멀리 갔더니(440장)'를 비롯해
한국 찬송가 번역과 편집에 크게 공헌한 여인이기도 했다.

[찬조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K-Pop]


그녀가 죽은 뒤에도 베어드 선교사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으로 지켰으니(딤후 4: 7)”라는
말씀을 붙잡았고, 그 말씀대로 살며 끝까지 선교활동을 벌였다.



[사망]
숭실전문학교와 숭실중학교 개교식에 참여한 지 한달 후에,
1931년 11월 29일, 대한민국 평양에서 69세를 일기로
장티푸스에 걸려 별세했다.

[1930년대 평양과 북한]


[추모 "백만송이 장미" Pop]


[평가]
베어드는 상대적으로 독립운동보다
기독교 교육 선교에 집중한 선교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독립운동과 무관한 선교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북 지역 민족운동의 핵심이었던 평양 숭실학교에서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된 것을 보면,

베어드 선교사는 평양 숭실학교를 통해
독립 운동의 기반이 형성되도록 기여한 인물이 틀림없다.

[찬조 "참 좋은 사람" K-Pop]


이러한 배경에는 베어드 선교사가 강조한 조선어 교육에 있다.

베어드 선교사는 자신이 고안한 "Our Educational Policy"를 통해
조선어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강조했다.

그가 세운 숭실학교에서도 조선어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시행했다.

이러한 베어드의 교육 기조가 숭실 학생들에게
민족 의식, 자주 독립 사상을 향유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어졌다.

이는 일제강점기 동안 숭실 학생들이 항일 민족운동에
많이 참여했던 것에서 알 수 있다.

베어드 선교사는 또한 머펫, 스왈렌, 매큔, 언더우드 선교사 등과
더불어 105인 사건에도 연루되는 등

일제 당국이 민족운동의 배후라고 연관지을만큼 주시했던
선교사들 중 하나였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조선인을 위해 근대화 교육을 보급한 인물이자
독립운동가 배출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찬조 "공훈-당신의 이름" K-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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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GPT 답변에 오류(hallucination: 환각 등)가 있으니,
단순 재미로만 참조바람] (from https://chat.openai.com/chat)

베어드(배위량, William Baird, 숭실대 설립자, USA)가
제일 좋아한 역사적 인물은?


제공된 정보에 따르면,
William B. Baird는 숭실대학교를 설립한
미국 출신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역사적으로 가장 좋아한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역사적 인물의 취향이나 선호에 대한 정보는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이기 때문에
명확한 답변을 제공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취향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다면,
그가 특정 역사적 인물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베어드(배위량, William Baird, 숭실대 설립자, USA)가
좋아할만한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 제목은 무엇일까?


정확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아서 William Baird가
어떤 음악을 선호하는지 혹은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 중 어떤 것을 좋아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알 수 없습니다.

베어드의 음악 취향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경우,
그가 좋아할만한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를
정확하게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트로트와 발라드는
다양한 스타일과 가수들이 있기 때문에,
관련된 음악을 들어보고 자기 취향에 맞는 곡을
찾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한국의 트로트 가수 중에서는 임영웅, 임영미, 나훈아
등이 인기 있으며,
발라드에서는 여러 가수들이 다양한 곡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베어드(배위량, William Baird, 숭실대 설립자, USA)가
경험한 재미있는 일화(episode)는?


안타깝게도 제공된 정보에는 William Baird에 대한
구체적인 일화나 에피소드에 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경험한 재미있는 일화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습니다.

William Baird에 대한 구체적인 일화나 에피소드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그의 자서전, 인터뷰, 또는 해당 정보를 다룬
출판물을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자료에서는 해당 인물의 삶과 경험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베어드(배위량, William Baird, 숭실대 설립자, USA)는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일까?


William Baird(배위량)가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주어지지 않아 정확한 판단이 어렵습니다.

양심적인 성향은 각 개인의 가치관, 행동, 윤리적 선택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의 양심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며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습니다.

만약 William Baird에 대한 양심적인 행동이나
가치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고 싶다면,

그의 삶과 경험을 다룬 자서전이나 인터뷰,
관련된 출판물 등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객관적이고 신빙성 있는
자료를 찾는 것이 중요하며, 모든 정보에는
주관적인 요소가 포함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베어드(배위량, William Baird, 숭실대 설립자, USA)의
양심(Conscience) 등급(Grade)을
A(매우 우수), B(우수), C(보통), D(낮음) 로 Grading 한다면,
베어드(배위량, William Baird, 숭실대 설립자, USA)의
양심등급(Conscience Grade)은?


죄송하지만, William Baird(배위량)의 양심 등급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의 행동, 가치관,
윤리적 선택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 제공된 정보에서는 그의 양심 등급을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없습니다.

양심 등급은 객관적이고 신빙성 있는 기준을 바탕으로
판단되어야 하며,

이는 해당 개인의 행동과 가치관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William Baird에 대한 양심 등급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의 더 많은 개인적인 정보가 필요하며,
이는 그의 자서전, 인터뷰, 기록 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의식 지도]

[아래의 의식지도 수치 평가는 단순 재미로만 참조 바람]

(from https://gemini.google.com)
정신과 의사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지도 Map of Consciousness' 에서
1에서 1000까지 수치로 평가했을때,
윌리엄 베어드(1862년 6월 16일 ~ 1931년 11월 29일,
배위량, William Baird, 숭실대 설립자, USA)의
의식지도 수치값은 ?


호킨스의 의식 지도는 개인의 의식 진화 단계를 측정하는 도구로
제시되었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된 방법론은 아닙니다.

또한, 베어드를 직접 평가하지 않은 호킨스가 개인의
의식 수치를 정량적으로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베어드의 업적과 생애를 통해
그의 의식 수준을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는 있습니다.

베어드의 의식 수준을 뒷받침하는 근거:

깊은 신앙심과 헌신:
베어드는 헌신적인 기독교인이었으며,
평생 동안 선교 활동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숭실대학교를 설립하여 한국에서 기독교 교육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한국인들에게 의료 및 사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의 깊은 신앙심과 헌신은 높은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강한 정의감과 용기:
베어드는 불의와 차별에 맞서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인의 권리를 위해 싸웠으며,
한국 전쟁 이후에는 난민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용기와 정의감은 강한 의식을 가진 사람의 특징입니다.

뛰어난 지적 능력과 리더십:
베어드는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학자였으며,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숭실대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한국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의 지적 능력과 리더십은 높은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결론:

베어드는 깊은 신앙심, 강한 정의감,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업적과 생애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그의 의식 수준은 호킨스의 의식 지도에서 상위 500단계 이상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는あくまで 추측이며, 정확한 평가는 불가능합니다.


[의식 지도]

=======================================

William M. Baird
was an American Presbyterian missionary who
founded Soongsil University in Korea.

Baird was born in Indiana on June 16,
1862. He was educated at Hanover
College (Bachelor's degree in 1885, PhD
in 1903, and Doctor of Divinity in
1913) and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graduated 1888).

Baird sailed to Korea to do missionary work,
arriving in 1891, less than two months
after marrying Annie Adams (December
18, 1890). His first missionizing was
in Busan in September of the same year.

Beginning with a "Sarangbang" class in
Pyeongyang in 1897, Baird's efforts
grew into the Soongsil School in 1900
and eventually into an institution of
higher education, graduating its first students in 1908.

He died in 1931. Baird Hall on the Soongsil campus is
named after him, and there is a bronze
bust of him there as well.

[Archival Collections]
The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in
Philadelphia, Pennsylvania has a
collection of Dr. William Baird's
diaries and correspondence that
document, among other events, his early
years as a missionary in Korea and the
death of his first wife, Annie Laurie Baird, in 1916.

The Society also holds a collection of
the Baird Family papers, which consists
of correspondence and photographs of
Dr. Baird, his brother Richard, and his wife Anna.

(from wikipedia.org naver.com 나무위키 등)


[Map of Consciousness]



Church, College Campus, Collection ~
(PIG: time-variant)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C+


(MoC: Map of Consciousness) 의식 지도

MoC(의식 수준):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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