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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Voltaire,Francois-Marie Arouet,작가,France
볼테르 (Voltaire, Francois-Marie Arouet)



[출생] 1694년 11월 21일
프랑스 왕국, 파리

[프랑스 파리 여행]


[사망] 1778년 5월 30일 (83세)
프랑스 왕국, 파리

[16분 Youtube 동영상]


[직업] 작가, 철학자

[국적] 프랑스

[프랑스 여행]


[종교] 이신론(deism)

[경력사항]
1746 프랑스 역사 편찬관

1746 프랑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1745 프랑스 수사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cois Marie Arouet)는
필명인 볼테르 (Voltaire, 1694년 11월 21일 ~
1778년 5월 30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이다.

《샤를 12세의 역사》, 《루이 14세의 시대》,
《각 국민의 풍습·정신론》, 《캉디드》 등이 대표작이다.



[생애]
파리의 공증인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파리 여행]


볼테르는 열 살에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그랑(Louis le Grand) 학교에 들어가,
금세 두각을 드러내고 평생 이어갈 교유관계들도 형성했다.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대부(代父)인 샤토뇌프 신부가
볼테르를 쾌락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귀족들과 시인들이
모이는 ‘탕플(Temple)’이라는 문학 살롱에 데리고 갔다.

17세에 루이 르그랑 학교를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며 법조계를 택하라고 강경하게 권한다.



그래서 법학 대학에 등록은 하지만 탕플을
계속 드나들면서 사치와 방탕을 선망한다.

이후에도 소(Sceaux) 성(城)의 문학 살롱을 드나들면서
재기를 발휘하며 문학적 재능을 증명해 보이던 그는

24세라는 아주 이른 나이에
《오이디푸스》(Oedipus, 1718)라는
비극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 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볼테르도 존중받는 장르였던
비극과 시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net

또한 볼테르는 일찍부터 문학에 뜻을 두고
자유사상가와 사귀었다.

1717년 루이 15세의 섭정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를
풍자한 시를 썼다고 오인돼 투옥되었다.

출옥 후 비극 《오이디푸스》의 대성공으로 이름을 날렸다.

볼테르는 또한 궁정에서도 주목을 끈다.

볼테르는 '아루에(Arouet)'라는 평민의 성을 버리고
'아루에 2세(Arouet Lejeune)'의 글자 순서를
바꾸어 자칭 '드 볼테르 씨(M. de Voltaire)'가 되었다.

이 필명은 쉽게 받아들여졌고, 왕비는 친밀하게 볼테르를
‘내 가엾은 볼테르’라고 불렀다.



그러나 어느 날 슈발리에 드 로앙이 하인들을 시켜서
볼테르를 곤봉으로 후려치게 한다.

자기의 좋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공작이나
후작들이 자신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

만류하거나 옹호해주기보다는 재미있어 하는 것을 본
볼테르의 분노는 극도에 달한다.

볼테르는 슈발리에에게 결투를 요구했지만,
볼테르의 이 불손한 행위로
볼테르는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되었다.

볼테르는 그곳에서 영국으로 건너간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겨우 풀려났다.

이러한 것이 불평등과 전제정치에 관해서
볼테르가 겪은 첫 경험이 된다.



전제정치의 악폐를 통감한 볼테르는 자유로운 영국에
공감을 가지고
로크와 뉴턴의 영향을 받아 비판정신은 더욱 강고히 되었다.

영국에 머무르는 동안 서사시 《라 앙리아드》
(La Henriade, 1728)를 출판하였다.

라 앙리아드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간 종교 전쟁의
에피소드와 앙리 4세의 즉위를 노래한 시이다.

광신의 무서움을 고발하고 프랑스의 정치 체제를 비판했다.

1729년 프랑스로 귀국했지만 셰익스피어 연극의 영향이 짙은
비극 《자이르》(Zaire, 1732)에 이어서 발표한

《철학서간》(Lettres philosophiques)이
영국을 찬미하고 프랑스를 비방하였다는 이유로
당국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책은 불태워지고 볼테르의 애인인 사틀레 후작 부인의
영지에 가서 10년간 저술과 연구를 하며
세월을 보냈다.

한때 프랑스 궁정의 역사 편찬관이 되었고 이어
프리드리히 국왕의 초청으로 프로이센에 가서

《루이 14세의 시대》(Le Siecle de Louis XIV, 1751)를
완성하고 그 후 여러 곳을 전전하였다.



수년간을 제네바에서 보내다가 1753년 프랑스령으로
제네바와 가까운 페르네에 정주하며

시·극시·우화·소설·수필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작품을 발표하여 전 유럽에 '볼테르 시대'를 이룩하였다.

진보파의 영수로서 '페르네 장로'라 불렸고 반 봉건,
반 가톨릭 교회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톨릭에 대한 광신이 원인이 된 부정재판을
탄핵한 칼라스 사건 등의 실천운동은 유명하다.



그 소산인 《관용론》(Traite sur la tolerance, 1763)을
비롯하여

역사책 《풍속시론》(Histoire des voyages de Scarmentado
ecrite par lui-meme, 1756),

사상소설 《캉디드》(Candide, ou l'Optimisme, 1759),
《철학사전》(1756)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작가로서의 볼테르는 비극 작품들과 서사시, 역사물 등을 통해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도 않거니와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반면, 나중에 재미삼아 쓰고 익명으로 출간한 콩트들이
오늘날까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캉디드》, 《자디그》(Zadig, ou la Destinee, 1748),
《랭제뉘》(L'Ingenu, 1767)이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1778년 무렵,
루이 15세가 사망하자 파리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84세가 된 볼테르가 장장 28년 만에 프랑스로 귀환할 때,
수많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마치 개선장군처럼 수도로 들어왔다고 하며,
이를 전해들은 루이 16세가 질투심을 느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긴 여행에 따른 피로와 연일 이어지는 환영행사를
이겨내지 못하고 석 달이 못되어,

프랑스 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추모 K-Pop]


사후 프랑스 혁명기에 볼테르의 유해는
프랑스의 역사적 위인들을 모시는 팡테옹에 두번째로 안치되었다.

[찬조 K-Pop]


하지만 판테옹에 첫번째로 안치된 미라보 백작의 묘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팡테옹에서 철거당했기 때문에,

볼테르는 프랑스의 모든 위인 가운데서도
첫번째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으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를 두고 '프랑스는 볼테르의 나라'라고
부르기까지 하는 것이다.

[볼테르 명언]


[사상]
[로마 가톨릭교회 비판]
프랑스 계몽기의 대표적 철학자로 꼽히는 볼테르는
프랑스의 지성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종교적 광신주의에 맞서서 평생 투쟁했던 볼테르는
관용 정신이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똘레랑스와 볼테르의 시대]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볼테르의 저서들 속에는
당대의 지배적 교회 권력이었던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등장한다.

한국.net

볼테르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볼테르가
전통적 가치들의 토대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리려 하고,
풍기를 문란케 한다고 비난했다.

나이가 70세에 가까웠을 때는 그 유명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종교적 불관용의 희생자들을 변호하고 돕는 활동들을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벌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용의 상징적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볼테르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해 가혹하게
탄압하던 개신교도 종교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대단히 진보적인 주장을 한 철학자였다.

볼테르는 캉디드, 랭제뉘 등 풍자소설로 당시 강력한
지배계급이었던 로마 가톨릭교회와 예수회의 부패와
부도덕을 공격했다.

또 《관용론》에서 칼라스 사건으로 처형된 장 칼라스를
적극 옹호하며 가톨릭 교회의 광신을 고발한다.

볼테르는 이 책에서

“불관용은 신의 법도 아니다.
그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한다면,
순교자가 될지언정 망나니가 되지말라” 고 말하며

종교의 관용을 주장했다.

[사상적 관용]
볼테르는 디드로 등의 백과전서파를 적극 지지하고 기독교적인
광신, 종교적 편견, 독단적 형이상학 등을 맹렬히 공격하면서

17세기의 이원론적 경향에 반기를 들어 뉴턴이 확립한
자연과학적 인식을 휴머니즘의 윤리에 의하여 현실 사회와
결부시키려고 하였다.

볼테르의 회의적 상대주의는 자연 과학적 인식의
현실화·통속화의 결과였다.

만년에는 이론적 회의를 실천적 확신에까지 끌어올려
자연법의 규범성을 신이 준 불변의 법으로 인정하려 하였다.

볼테르가 각광을 받은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으나,
유럽의 모든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역사가 볼테르]
《랑송불문학사》를 쓴 귀스타브 랑송은
"볼테르의 기술은 모든 것에 있어서 똑똑히 볼 것을
필요로 하는 끊임없는 이성의 행사이다.

어떤 회화적인 세부가 거기에 끼여들어가는 때도 있지만,
그것은 보통 이 세부가 일종의 설명 방법이기 때문이다"며
볼테르를 프랑스 근대 역사가의 진정한 선구자로 높이 평가했다.

볼테르의 역사적 저술은 다음 두 작품이 대표적이다.

《샤를 12세의 역사》
《루이 14세의 시대》
(Le Siecle de Louis XIV, 1751)는 볼테르가 쓴 역사서이다.

볼테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루이 14세의 만년을 목격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고,
미간행 수기들을 조사했으며,
인쇄된 2백권 의 회상록을 읽었으며,

사료 편찬관의 직책으로 국가의 고문서 보관소에서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썼다.

이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데

첫째 부분은 제 3장에서 24장까지로 루이 14세 시대
정치적, 군사적 사건을을 개관했다.

루이 14세의 미성년 시절부터 마자랭 추기경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3~6장),

루이 14세의 즉위 부터 니메그의 강화까지(7~13장),
루이 14세의 야망과 우트레히트 강화까지(18~23장)
유럽 정세를 다룬다.



둘째 부분은 29장서 34장에 이르기까지 국민에게
더 중요한 주제'인 내정 문제를 다룬다.

여기에서 볼테르는 부르즈와 계급을 부유케 한
콜베르를 강력하게 옹호한다.

이어 지혜와 비판 정신을 퍼뜨린 과학, 그리고
문학을 언급하며 베이콘, 뉴튼, 갈릴레이 등을 소개한다.



또 라시느, 브왈로 등을 일류로 내세우고 있다.

세번째 부분은 35장서 39장 까지로 종교를 다룬다.

볼테르는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의 재산의
과장된 크기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진짜 추문은 그 재산의 고르지 않은 분배에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볼테르는 여기에서 유덕한 중국인들이 어떻게
성 도미니크회와 예수회 전도사들을 추방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종교적, 철학적 견해]
(from wikipedia.org)

다른 주요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볼테르도 이신론자(deist)였다.
(주: 이신론-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긴 했지만
관여는 하지 않고 우주는 자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는 사상)


볼테르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여 정통에 도전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분명한 것을 믿는 것입니까?

아니요.
필요하고 영원하며 최고이며 지적인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이
내 마음에 완벽하게 분명합니다.
믿음으로가 아니라 이성으로요."

1763년 에세이에서 볼테르는 다른 종교와 민족에 대한
관용을 지지했다.

"기독교인들이 서로를 관용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는 훌륭한 예술이나 훌륭하게
훈련된 웅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우리는 모두 같은 아버지의 자녀이고
같은 신의 피조물이 아닙니까?"

1767년 1월 5일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볼테르는 기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종교(기독교)는 확실히 이 세상을 오염시킨 종교 중,
가장 우스꽝스럽고, 가장 터무니없고,
가장 피비린내 나는 종교입니다.

폐하께서는 이 악명 높은 미신을 근절함으로써
인류에게 영원한 봉사를 행하실 것입니다. (..중략..)"

La bible enfin expliquée 에서 볼테르는
성경 읽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태도를 표현했다.

성서를 읽고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광신자의 특징이다.

하나님이 죽였으니 나도 죽여야 한다.
아브라함은 거짓말을 하고, 야곱은 속이고, 라헬은 훔쳤다.
그러므로 나는 도둑질하고, 속이고, 거짓말을 해야한다.

그러나 불쌍한 사람아,
너는 라헬도 아니고 야곱도 아니고
아브라함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다.

당신은 미친 바보일 뿐이다.
그리고 성경 읽기를 금지한 교황들은 매우 현명했다.

정통 랍비 Joseph Telushkin에 따르면
유대교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계몽주의 적대감은
볼테르에서 발견되었다.

볼테르의 철학사전(Dictionnaire philosophique)에 실린
118 개의 기사 중 30개는 유대인이나 유대교를 일관되게
부정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면서 다루었다.

예를 들어 Voltaire의 A Philosophical Dictionary에서
볼테르는 유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그들에게서 가장 추악한 탐욕과
가장 혐오스러운 미신, 그들을 관용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오입니다."

Telushkin 은 Voltaire가 기독교가 기초로 사용했던
유대교 측면에만 공격을 제한하지 않았으며
유대인을 경멸한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분명히 밝혔다.

이슬람에 대한 볼테르의 견해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이었으며
이슬람의 성서인 꾸란이 물리 법칙에
무지하다는 것을 알았다.

1740년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볼테르는 무함마드가

"누구도 변명할 수 없는 잔인함"을 저질렀다고 비난하고
그의 추종은 미신에서 비롯되었다고 암시했다.

볼테르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낙타 상인이 그의 마을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몇몇 비참한 추종자들과 결탁하여
천사 가브리엘과 이야기한다고 설득하고,
천국으로 옮겨졌다고 자랑 합니다. (..중략..)"

Voltaire는 힌두교의 신성한 텍스트인 Vedas에 대해
논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다는 서양이 동양에 빚진 가장 귀중한 선물이었다.

볼테르는 힌두교도를
"평화롭고 순진한 사람들,
또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로 여겼다.

볼테르는 동물 권리를 옹호하는 채식주의자였다.

공자(유교)의 저작물은 중국에 주둔한
예수회 선교사 들을 통해 유럽 언어로 번역되었다.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는 공자의 가르침을
최초로 보고한 사람 중 하나였으며,

신부 프로스페로 인토르체타(Prospero Intorcetta)는
1687년에 라틴어로 공자의 삶과 업적에 대해 썼다.

유교 문헌의 번역은 당시 유럽 사상가들,

특히 동양의 고요한 교리를 통해 유럽의 도덕과 제도를
개선하고자 했던 이신론자(deist)와 계몽주의의
다른 철학 그룹들 사이에서 영향을 미쳤다.

볼테르는 유교 합리주의를 기독교 교리의 대안으로 보며
이러한 희망을 공유했다.

볼테르는 유교 윤리와 정치를 칭찬하며
중국의 사회 정치적 계층 구조를 유럽의 모델로 묘사했다.

공자는 거짓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선지자인 척하지 않았다.
그는 영감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종교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망상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황제에게 아첨하지 않았다 ...
—볼테르

계몽주의 시대에 유교 문헌이 번역되면서
능력주의라는 개념이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전해졌고,
그들은 이를 유럽의 전통적인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에 대한
대안으로 여겼다.

볼테르는 중국인이 "도덕 과학을 완성했다"고 주장하고
중국 모델을 따른 경제 및 정치 체제를 옹호하면서
이 아이디어에 대해 호의적인 글을 썼다.

[볼테르 어록]


[어록]
나는 신을 경애하고 내 벗을 사랑하고
내 적들을 미워하지 않으며 미신을 경멸하면서 죽는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삶은 난파선이지만 우리는 구명보트에서 노래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관용이란 무엇인가? 인간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니 서로의 실수를 용서하는 것,
이것이 첫번째 자연의 섭리다.

무고한 자를 비난하느니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게 낫다.

진실을 사랑하되 잘못은 용서하라.

[찬조 K-Pop]


나는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되고자 하는 순간 자유가 된다.

일은 세 가지 커다란 악, 즉 권태, 부도덕, 궁핍을 막아준다.

내 여행이 어디로 이끌든지, 천국은 내가 있는 곳이다.

남을 지루하게 만드는 법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잘하려는 것의 적은 가장 잘하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은 그의 대답보다
그의 질문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쉽다.

책을 읽읍시다. 그리고 춤을 춥시다.
이 두 가지 즐거움은 세상에 피해를 끼치는 일이
결코 없을 겁니다.


[볼테르 명언]


[저서]
철학서한 Lettres philosophiques sur les Anglais (1733),

revised as Letters on the English (circa 1778)
Le Mondain (1736)

Sept Discours en Vers sur l'Homme (1738)

Zadig (1747)

미크로메가스 Micromegas (1752)

캉디드 Candide (1759)

관용론 Treatise on Tolerance (1763)

Ce qui plait aux dames (1764)

Dictionnaire philosophique (1764)

랭제뉘 L'Ingenu (1767)

La Princesse de Babylone (1768)



[찬조 K-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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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GPT 답변에 오류(hallucination: 환각 등)가 있으니,
단순 재미로만 참조바람: 3無 신뢰성 없음, 정확성 없음, 일관성 없음]
(from https://chat.openai.com/chat)

볼테르(Voltaire, Francois-Marie Arouet, 작가, France)가
제일 좋아한 역사적 인물은?


볼테르(본명: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François-Marie Arouet)는
18세기 프랑스의 작가, 철학자로,
역사적 인물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좋아한 역사적 인물을 직접 명시한 기록은 없습니다.

볼테르는 다양한 인물과 시대에 대해 글을 썼으며,
특히 공포와 억압에 맞서 싸우는 용기와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인물을 존경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권위와 독재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적인 가치를
옹호하였으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끌 수 있는 인물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볼테르가 가장 좋아한 역사적 인물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는 프랑스 혁명과 관련된 인물들이
자주 언급되며,
볼테르가 혁명적인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인물들에게
긍정적인 관점을 가졌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볼테르(Voltaire, Francois-Marie Arouet, 작가, France)가
좋아할만한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 제목은 무엇일까?


볼테르가 살던 시기와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는
시대적으로 매우 다릅니다.

볼테르는 18세기 프랑스의 작가로,
그 당시의 음악과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볼테르가 직접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를 듣고
좋아할만한 제목을 언급한 기록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볼테르가 현대의 한국 트로트나 발라드를 듣고 있다면,
그의 작품에서 주로 다루는 사회적 문제, 정의, 사랑, 자유 등의
주제와 관련된 노래를 좋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중에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나 정의와 자유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래를 고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한국의 트로트나
발라드 노래 제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경계선"

[찬조 K-Pop]


"내게 오는 길"

[찬조 K-Pop]


"끝나지 않은 이야기"

[찬조 K-Pop]


"자유의 날개"

[찬조 K-Pop]


"세상을 향해"

[찬조 K-Pop]


이러한 노래는 볼테르의 사상과 관련된 주제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가 좋아할 만한 노래 제목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볼테르(Voltaire, Francois-Marie Arouet, 작가, France)가
경험한 재미있는 일화(episode)는?


볼테르의 생애는 매우 다양하고 흥미로운 일화로 가득합니다.
그 중 하나는 볼테르가 잉글랜드에서 휴식 중인 동안
발생한 일입니다.

이 일화는 "이집트 여행"이라고도 불리며,
볼테르가 잉글랜드에서 경험한 신기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1762년, 볼테르는 유럽 여행 중에 잉글랜드로 방문했습니다.
그 당시 잉글랜드는 신중주의(Deism)와 인권,
자유주의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볼테르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그곳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일은 볼테르가 이집트 여행을 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후 발생했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유럽인들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국적인 지역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볼테르가 이집트에서 탐험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볼테르가 이집트에서 무슨 일을 겪었을지
상상하며 궁금해했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갔습니다.

볼테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자신이 이집트에서
경험한 일화를 지어내었습니다.

그는 이집트에서 파프리카를 이용해 타임머신을 발명하고,
고대 이집트 사람들과 대화하며 도전적인 모험을
겪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일화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흥미를 유발하는데에 성공했으며,
볼테르의 유머와 상상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는 그의 사회적 지위와 문학적인 업적 외에도
그가 얼마나 재치 있고 창의적인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볼테르(Voltaire, Francois-Marie Arouet, 작가, France)는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일까?


볼테르는 양심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철학적인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고,
불의와 억압에 맞서 싸우는 데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의 작품과 활동은 그의 양심과 철학적인 신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볼테르는 자유주의, 인권, 평등, 정의 등의 가치를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며, 타인에 대한
억압과 탄압을 비판했습니다.

특히 종교적인 편견과 횡포, 신앙의 강요 등에 반대하고,
신념의 자유와 종교적 관용을 주장했습니다.

볼테르는 종교 간의 평화와 이해를 촉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종교적 갑질과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한 볼테르는 사회적인 부조리와 부패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권위주의적인 제도와 특권을 비판하며,
자유로운 사회와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데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양심의 자유와 정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볼테르는
그의 생애 동안 많은 작품을 통해 이를 표현하고,
사회적 변화와 개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글들은 종교, 정치, 사회에 대한 비판과
자유주의적인 가치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의 양심적인 신념을 증명하는 증거입니다.

볼테르(Voltaire, Francois-Marie Arouet, 작가, France)의
양심(Conscience) 등급(Grade)을
A(매우 우수), B(우수), C(보통), D(낮음) 로 Grading 한다면,
볼테르(Voltaire, Francois-Marie Arouet, 작가, France)의
양심등급(Conscience Grade)은?


양심의 등급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볼테르의 양심 등급을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등급 시스템은 주관적인 평가에 기초하며,
각각의 기준과 척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볼테르는 인권과 자유에 대한 강력한
옹호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작품과 행동에서 그의 양심적인 신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유로운 사상을 가지고 권위에 도전하였고,
불의와 억압에 대항하였습니다.

종교적인 편견과 횡포, 신앙의 강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따라서 주관적인 평가를 통해 볼테르의 양심 등급을 판단한다면,
그는 A 등급(매우 우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개인적인 의견일 뿐,
볼테르의 양심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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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taire

[Born] Francois-Marie Arouet
21 November 1694
Paris, France

[Died] 30 May 1778 (aged 83)
Paris, France



[Pen name] Voltaire
[Occupation]
Writer, philosopher, playwright
[Nationality] French



Francois-Marie Arouet
(21 November 1694 – 30 May 1778),
known by his nom de plume Voltaire, was
a French Enlightenment writer,
historian, and philosopher famous for
his wit, his attacks on the established
Catholic Church, and his advocacy of
freedom of religion, freedom of
expression, and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Voltaire was a versatile writer, producing works
in almost every literary form, including plays, poems,
novels, essays, and historical and
scientific works. He wrote more than
20,000 letters and more than 2,000 books and pamphlets.



He was an outspoken advocate of several
liberties, despite the risk this placed
him in under the strict censorship laws
of the time. As a satirical polemicist,
he frequently made use of his works to
criticize intolerance, religious dogma,
and the French institutions of his day.

(from naver.com wikipedia.org 나무위키 등)


Brave philosopher and Bright enlightenment writer~
(PIG: time-variant)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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