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퀴리 Marie Cu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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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Marie Curie,과학자,노벨상,Poland-France
마리 퀴리 (Marie Curie, Maria Salomea
Sklodowska) 과학자

지난1000년간 인물100명중 53위 선정



[출생-사망] 1867년 11월 7일, 폴란드 -
1934년 7월 4일 (66세)

[가족] 배우자 피에르 퀴리

[학력사항]
소르본느대학교 수학, 물리학 학사


[경력사항]
1911 퀴리실험소 소장
1910 소르본대학 최초 여자 교수
1910 금속라듐 분리 성공
1907 라듐 원자량의 정밀한 측정 성공
1903 소르본대학 실험실 주임
1898.12 라듐 발견
1898.07 폴로늄 발견
1895 방사능 연구 착수

[수상내역]
1911 노벨 화학상
1903 노벨 물리학상


======================================

[출생] 1867년 11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당시 러시아 제국의
Vistula land)
[사망] 1934년 7월 4일 (66세)
Passy, 프랑스
[국적] 폴란드, 프랑스 (결혼 후)
[분야] 물리학, 화학
[소속] 파리 대학교
[출신 대학] 파리 대학교
[주요 업적] 방사능
[수상]
노벨 물리학상 (1903)
노벨 화학상 (1911)
[종교]
가톨릭 신자였으나 모친의 사망 후
불가지론자로 전향


[생애]
[성장 과정]
마리 퀴리는 1867년 바르샤바에서 가난한
교육자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 브로니스
와바는 중학교 교사, 아버지 브와디스와프
스크워프도프스키(Wladyslaw Sklodowski)
는 바르샤바 교육청 장학사였다.
형제로는 오빠 유제프(Jdzef, 1863년생)와
조피아(Zofia, 1862년생), 브로니스와바
(Bronislawa, 1865년생), 헬레나(Helena,
1866년생) 언니 셋이 있었다.

10세 때 폐결핵을 앓던 어머니와 사별하였
고, 장학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실직하기도
했으며, 큰 언니 조피아가 요절하기도
하여 혼란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7세 무렵부터 가정교사 등을 하면서 독학
하였다. 당시 폴란드와 독일에서는 여자가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갈 결심을 하였다.


[유학 생활]
여학교를 졸업한 마리는 남학생만 뽑는
바르샤바 대학교와는 달리, 성 차별이
없는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싶어했으나
학비가 없었기 때문에, 3년간 시골의 부유
한 농가의 가정교사로 고용되어 고용주의
딸과 아들을 가르쳤으며, 나중에는 고용주
의 허락을 받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운영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소년감화원 사감으로
취직하여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마리는
둘째 언니 브로니스와바와 형부 카지미에
시 드우스키(Kazimierz Dluski) 부부가
의사로 일하고 있던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였다.
브로니스와바와 마리가 교육을 강조함으로
써 폴란드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려는 계몽
주의자였다면, 형부 카지미에시는 자본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없이는 민중 해방이 없다
는 냉철한 현실 이해를 주장한 사회주의자였다.

1891년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여 J.
H. 푸앵카레, G. 리프만 등의 강의를 들었
다.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며 가장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라듐의 발견]
소르본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 학위를
취득한 후 1895년 과학자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였고 피에르 퀴리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었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Pierre Curie,
1859년 ~ 1906년)는 1898년 우라늄 광석인
피치블렌드(pitchblende, 역청우라늄석)에
서 염화바륨에 소량 섞여있는 형태로 염화
라듐을 처음 분리∙발견하였고 1902년 8톤
의 폐우라늄 광석을 처리하여 0.1g의 순수
한 염화라듐을 얻었다.
1910년에는 마리 퀴리가 염화라듐을
전기분해시켜 금속 라듐을 얻었다.

마리 퀴리가 살던 시대에는 방사능의 위험
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방사능 물질
라듐은 미용은 물론 정신장애 치료에까지
효과가 있다는 위험한 선전이 아무런 근거
없이 주장되었고,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들
이 죽어갔다. 어느 화장품이건, 라듐이 들
어간다고 쓰어져 있기만 하다면, 그것은
완판이 되었고 굉장히 인기가 있던 제품이었다.


[교수 생활]
1906년 피에르 퀴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
다. 마리 퀴리는 피에르 퀴리가 근무하던
소르본 대학교에서 1906년 11월 5일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마리 퀴리는 미리
강의 내용을 확인하는 준비를 하여 남편이
가르친 내용을 이어서 강의하는 꼼꼼함을
보여주었다. 이 일로 소르본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에서는 연금을 제공하겠다
고 했으나 거부했다.

[방사능 피폭에 따른 사망]
라듐의 위험성이 제기된 것은,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작 포스터 페인트질(페인트 안에
라듐 성분이 들어가 있음)을 하던 여성 노
동자들이 죽어가면서였다. 마리 퀴리도
1934년 요양소에 입원하여 그 해 7월 4일
방사능으로 인한 골수암, 백혈병, 재생불량
성빈혈로 사망했다.

[업적]
여성으로서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며,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노벨상을 2회 수상한 기록은
라이너스 폴링과 함께 인물로서는 최다
기록이다.

1903년 라듐 연구로 마리 퀴리와 남편
피에르 퀴리가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1907년에는 라듐 원자량의
정밀한 측정에 성공하였다. 1910년에는
금속 라듐의 분리도 하여, 1911년에는
라듐 및 폴로늄의 발견과 라듐의 성질 및
그 화합물 연구로 마리 퀴리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공적을
기려 방사능 단위에 퀴리라는 이름이,
화학 원소 퀴륨에 이름이 사용되었다.
마리 퀴리의 딸 부부인 이렌 졸리오퀴리와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이다.

프랑스의 보수성, 가십을 좋아하는 언론의
공세, 폴란드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여성
이라는 성차별적 문제로 결국 화학 아카데
미 회원이 될 수 없었다.

[수상]
노벨 물리학상 (1903)
데이비 메달 (1903)
마테우치 메달 (1904)
노벨 화학상 (1911)

1867년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출생했다.
결혼 전 이름은 스쿼도프스카(Maria
Sklodowska)이다. 당시 폴란드는 분할 지배
하에 있었는데, 바르샤바는 러시아령이었
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제정 러시아의 압
정(壓政)을 겪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김나
지움의 수학 및 물리학 교사였다. 10세 때
어머니를 잃고 17세 무렵부터 가정교사 등
을 하면서 독학하였다. 당시 폴란드와 독일
에서는 여자가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
문에 그녀는 파리로 유학을 결심, 1891년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였다. J. H.
푸앵카레, G. 리프만 등의 강의를 들었으
며, 수학·물리학을 전공하였고 가장 뛰어
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1895년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여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남편과 공동으로
연구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물리학에서
는 새로운 사상(事象)이 잇달아 발견된
시기였는데, 뢴트겐의 X선 발견, H. 베크렐
의 우라늄 방사능 발견에 자극받아 퀴리
부부도 방사능 연구에 착수하였다.
먼저 베크렐의 추시부터 시작했는데 부부
는 방사능의 세기를 측정하는 데에 전기적
방법(피에르가 발견한 압전기의 이용)을
사용했다. 그것은 방사선의 정량적 측정법
으로서 베크렐의 사진법(寫眞法)보다 편리
한 것이었다. 토륨도 우라늄과 마찬가지의
방사선을 방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방사능(放射能;radioactivity)'이
라 명명하였다.

또한 방사능이 원자 자체의 성질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여러 가지 시료(試料)에
대하여 측정하던 중 우연히 우라늄 광물
피치블렌드가 우라늄 자체보다도 강한 방사
능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그 속에 미지(未
知)의 강한 방사성 성분이 존재할 것이라
고 추정, 이것의 추출을 시도하였다.
보헤미아의 요아힘스탈에서 산출되는 피치
블렌드에서 방사되는 방사능을 바탕으로
화학 분석을 하여(방사화학분석법의 시
초), 1898년 7월 폴로늄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그녀의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 이어 그해 12월 라듐을
발견하였다.

이 두 원소는 방사성 원소로서 발견된 최초
의 것으로, 특히 라듐은 우라늄에 비하여
훨씬 강한 방사능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
한 의미를 지닌다. 이 발견은 방사성 물질
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새 방사성 원소를 탐구하는 계기를 만들었
다. 이러한 업적으로 1903년 퀴리 부부는
베크렐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피에르는 소르본대학 이학부(理學部)
교수, 마리는 그 실험실 주임이 되었다.

1906년 남편 피에르 퀴리가 마차에 치어
사망한 뒤에도 단독으로 방사성 물질을
계속 연구하였다. 1907년 라듐 원자량을
더욱 정밀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하고,
1910년에 금속 라듐을 분리하는 데도 성공
하였다. 1906년 5월에는 남편의 후임으로
여성으로서 최초의 소르본 대학 교수가
되었고, 1914년 소르본 대학에서는 그녀가
연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라듐연구소
를 건립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고 독일군이 파리로 진격해오자 라듐을
스위스로 옮겼다가 전쟁이 끝나고 다시 연
구를 시작했다. 전쟁 중 장녀 이렌과 함께
부상자 치료를 위해 뢴트겐 투사기를 보급
하는데 노력하였고 많은 부상자들이 목숨
을 구하였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파리 의
학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라듐연구소
는 이후 파스퇴르 실험소와 퀴리 실험소가
되었는데, 그녀는 퀴리 실험소 소장으로서
프랑스의 과학 연구에 공헌하였다.

1911년 라듐과 폴로늄 발견으로 노벨 화학
상을 받았다. 이후 연구소의 운영은 물리학
자인 장녀 이렌에게 맡겼으며,
이렌은 마리 퀴리의 실험 조수로 있던
F. 졸리오 퀴리와 결혼한 뒤 1935년 남편
과 함께 인공 방사능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마리 퀴리는 그동안
의 실험으로 몸이 쇠약해져 스위스에서
요양을 하였지만 1934년 7월 4일 백혈병으
로 사망하였다. 사후 61년 만인 1995년
4월 20일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여성으
로는 사상 최초로 역대 위인들이 안장되어
있는 파리 팡테옹 신전으로 이장되었다.

[마리 퀴리 연보]
1867 11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출생.
1891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
1895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와 결혼.
1898 방사능 물질인 라듐을 발견.
1903 남편 피에르 퀴리와 공동으로 노벨물
리학상 수상.
1906 남편 사망하자 그가 강의했던 소르본
대학교에서 강의.
1907 라듐 원자량의 정밀 측정을 성공.
1911 라듐 및 폴로늄 발견과 라듐의 성질
및 화합물 연구로 노벨화학상 수상.
1934 7월 4일 방사능으로 인한 골수암,
백혈병 등으로 사망.
1995 여성 최초로 파리 팡테옹 신전에 안장.

======================================
Marie Curie

[Born] Maria Salomea Sklodowska
7 November 1867
Warsaw, Kingdom of Poland, then part of
Russian Empire

[Died] 4 July 1934 (aged 66)
Passy, Haute-Savoie, France

[Cause of death] Aplastic anemia
[Citizenship]
Poland (by birth)
France (by marriage)
[Spouse(s)]
Pierre Curie (1859–1906) m. 1895
[Children]
Irene Joliot-Curie (1897–1956)
Eve Curie (1904–2007)

[Scientific career]
Fields: Physics, chemistry
Institutions: University of Paris

[Alma mater] University of Paris
ESPCI
[Known for]
Radioactivity, Polonium, Radium
[Notable awards]
Nobel Prize in Physics (1903)
Davy Medal (1903)
Matteucci Medal (1904)
Elliott Cresson Medal (1909)
Albert Medal (1910)
Nobel Prize in Chemistry (1911)
Willard Gibbs Award (1921)

[Notes]
She is the only person to win a Nobel
Prize in two different sciences.
---------------------------------------
Marie Sklodowska Curie
(7 November 1867 – 4 July 1934) was a
Polish and naturalized-French physicist
and chemist who conducted pioneering
research on radioactivity.

She was the first woman to win a Nobel
Prize, the first person and only woman
to win twice, the only person to win
twice in multiple sciences, and was
part of the Curie family legacy of five
Nobel Prizes. She was also the first
woman to become a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Paris, and in 1995 became
the first woman to be entombed on her
own merits in the Pantheon in Paris.

She was born Maria Salomea Sklodowska
in Warsaw, in what was then the Kingdom
of Poland, part of the Russian Empire.
She studied at Warsaw's clandestine
Floating University and began her
practical scientific training in
Warsaw. In 1891, aged 24, she followed
her older sister Bronislawa to study in
Paris, where she earned her higher
degrees and conducted her subsequent
scientific work. She shared the 1903
Nobel Prize in Physics with her husband
Pierre Curie and with physicist Henri
Becquerel. She won the 1911 Nobel Prize
in Chemistry.

Her achievements included a theory of
radioactivity (a term that she coined),
techniques for isolating radioactive
isotopes, and the discovery of two
elements, polonium and radium. Under
her direction, the world's first
studies were conducted into the
treatment of neoplasms, using
radioactive isotopes. She founded the
Curie Institutes in Paris and in
Warsaw, which remain major centres of
medical research today. During World
War I, she established the first
military field radiological centres.

While a French citizen, Marie
Sklodowska Curie (she used both
surnames) never lost her sense of
Polish identity. She taught her
daughters the Polish language and took
them on visits to Poland. She named the
first chemical element that she
discovered – polonium, which she
isolated in 1898 – after her native
country.

Curie died in 1934, aged 66, at a
sanatorium in Sancellemoz (Haute-
Savoie), France, due to aplastic anemia
brought on by exposure to radiation
while carrying test tubes of radium in
her pockets during research, and in the
course of her service in World War I
mobile X-ray units that she had set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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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Achievements, Albert Medal, 2 Nobel prizes ~
(PIG: time-variant)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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