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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Michel Montaigne, Philosopher, France
미셸 몽테뉴 [Michel Eyquem de Montai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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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533년 2월 28일
프랑스 왕국, 기옌, 샤토 드 몽테뉴(Chateau de Montaigne)

[Château de Montaigne]


[사망] 1592년 9월 13일(59세)
프랑스 왕국 기옌, 몽테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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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드 몽테뉴(Château de Montaigne)]

[38분 Youtube 동영상]


[국적] 프랑스

[프랑스 여행]


[활동분야] 철학

[주요저서] 《수상록》

[개요]
프랑스의 사상가 ·모랄리스트. 프랑스의 르네상스기(期)를
대표하는 철학자 ·문학자이며 《수상록》의 저자이다.

자기의 체험과 독서생활을 근거로, 있는 그대로의 인간,
변천하는 대로의 인간을 그렸다.

자연에 대하여 단순히 몸을 맡기는 데에
인생의 지혜를 추구하였다.



[요약]
미셸 에켐 드 몽테뉴 (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년 2월 28일 - 1592년 9월 13일)는
프랑스 철학자, 사상가, 수필가이다.

몽테뉴라는 마을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법률을 공부한 후,
보르도 법원에서 법관을 지냈다.

그 후 1571년 고향으로 돌아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1580년 유명한 <수상록>을 완성시켰는데,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거짓 없는 모습을 그렸다.



그와 같은 인간의 연구가·관찰가를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모랄리스트(인간 연구가)라 부르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모랄리스트 문학의 토대를 쌓았을 뿐만 아니라
수필 문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처음에는 금욕적인 인생관을 가르쳤으나,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고, 신대륙이 발견되는 등 상식이
붕괴되자 충격을 받아,

인간 이성의 한계를 주장하면서 개혁을 혐오하고
보수주의를 신봉하였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자유주의를 지지하고,
귀족보다는 농민의 태도를 찬양하였으며,

형식주의적 법 이론을 배척하여 인간애를
고취하는 등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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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및 활동]
프랑스 남부 페리고르 지방의 몽테뉴성
(Montaigne城:현재의 생 미세르 드 몽테뉴 마을) 출생이다.

프랑스의 르네상스기(期)를 대표하는 철학자 ·문학자이며
《수상록 Les Essais》의 저자이다.



대대로 보르도에서 살았던 부유한 상인 가문으로
에이퀨을 성으로 삼았다가 증조부 라몽 에이퀨 때

몽트라베르 남작령(男爵領)에 속하는 몽테뉴성과
그 영지를 매수하여 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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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피에르는 프랑스와 1세의 이탈리아 원정에 종군한 군인으로
문예 애호가이기도 하며, 만년에 보르도 시장에 선출되었다.

어머니의 가계는 포르투갈계(系) 유대인의 피를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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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는 어려서 라틴어 교육을 받았고,
1554년 페리그 재판소에 근무하여
1557년 보르도 고등법원 참사관이 되었다.

그는 때때로 궁정에 찾아가 프랑스와 2세,
샤를 9세의 신임을 얻었다.



1565년 프랑수아즈드 라 샤세뉴와 결혼,
1568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테뉴 영주가 되었다.

아버지의 명으로 번역한 15세기 에스파냐 신학자
레이몽 스봉의 《자연신학(自然神學)》을
1569년에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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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1년 37세로 법관생활에서 물러나 독서와 저작 생활로
들어갈 결심을 하였으나,
신 ·구파의 종교전쟁에 휩쓸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1577년 나바르왕 앙리(뒤의 앙리 4세)의 시종이 되었다.



1580년 써 모은 수필을 간추려 《수상록》
(2권)을 보르도에서 간행하였다.

이 해 신장결석(腎臟結石) 치료를 겸하여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관광길에 올라
1년 반을 외국에서 보냈다.

이 여행에서 《여행기 Journal de voyage》(1774)가 나왔다.

여행 중에 보르도 시장에 선출된 것을 알고
1581년 말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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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3년 보르도 시장에 재선되었으나 종교적 내란과
페스트의 유행 등 많은 난국을 맞았다.

1586년에 몽테뉴성으로 돌아가 《수상록》에
증보와 수정을 가하고,

다시 제3권의 수필을 새로 집필하여 1588년 파리에서
《수상록》(3권)을 출판하였다.



그가 ‘결연(結緣)의 딸’이라고 부르기까지 한
구르네와 알게 된 것도 이 해이다.

만년에는 앙리 4세로부터 궁정 출사(出仕)를 간청받았으나
굳이 사양하고 《수상록》 가필(加筆)에 착수하여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는 처음에 금욕적(禁慾的) 인생관에
호의를 가진 듯이 보였으나,

중도에는 온건한 회의론에 기울어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 Je?)'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와 동시에 루크레티우스를 통하여
에피쿠로스의 자연주의에도 공명하였다.

[찬조 트로트]


그러나 후기에는 자기의 체험과 독서생활을 근거로,
있는 그대로의 인간, 변천하는 대로의 인간을 그려,

자연에 대하여 단순히 몸을 맡기는 데에
인생의 지혜를 추구하였다.



그가 죽은 뒤에 그르네는 그가 마지막 손질한 것을 기초로 하여
《수상록》의 신판을 펴냈다.

그는 이 《수상록》(3권)으로 프랑스에
모랄리스트의 전통을 구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17세기 이래의 프랑스 문학,
유럽 각국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B.파스칼은 몽테뉴의 인생관을 비판하면서도
인간을 관찰하는 점에서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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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자녀]
몽테뉴는 1565년에 프랑수아즈 드 라 카세뉴와 결혼했는데,
아마도 중매 결혼이었다.

그녀는 툴루즈와 보르도의 부유한 상인의 딸이자 조카였다.

그들은 여섯 명의 딸을 두었는데,
둘째인 레오노르만이 유아기까지 살아남았다.

몽테뉴는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 거의 글을 쓰지 않았으며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몽테뉴의 딸 레오노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아이들은 모두 간호실에서 죽습니다.
그러나 이 불행에서 벗어난 우리의 외동딸 레오노르는
벌을 받지 않고 여섯 살 이상이 되었습니다. ..."

[찬조 K-Pop]


몽테뉴의 딸은 Francois de la Tour와
나중에 Charles de Gamaches와 결혼해서,
각각 딸을 낳았다.



[말년과 죽음]
몽테뉴는 『에세』에 내용을 계속해서 추가하여
5판까지 개정했다.

그의 책은 프랑스의 지식인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유럽사회에 고대 회의주의를 부활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에 출현하는 데카르트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업적도,
당시 대세였던 몽테뉴의 회의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철학적 작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지어 귀족가문 출신의 젊은 아가씨 마리 드 구르네는
『에세』를 읽고 감동하여,
말년의 몽테뉴를 추종하며 따라 다녔다.

몽테뉴는 그녀를 양녀로 삼고
그녀에게 그가 죽은 후에 나올 자신의 『에세』의 발행을 맡겼다.

[추모 K-Pop]


몽테뉴는 마지막까지 『에세』를 다듬었고,
점점 나빠져 후두염을 앓다가,

자택인 몽테뉴 성에서,
1592년 9월 13일, 59세의 나이로
'편도 주위 농양'병으로 사망했다.

[추모 K-Pop]


그의 경우에는 이 질병이 "혀의 마비를 가져왔다"고 했으며,
한때 다음과 같이 말한 사람에게는 특히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의 가장 유익하고 자연스러운 놀이는 대화입니다.
나는 대화가 인생의 다른 어떤 행동보다
더 감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억지로 선택해야 한다면 청각과 목소리를 잃는 것보다
시력을 잃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몽테뉴는 다른 모든 능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사를 요청했고,

1592년 9월 13일, 59세의 나이로,
미사를 거행하는 동안 사망했다.

[추모 음악]


몽테뉴는 근처에 묻혔다.

[찬조 K-Pop]


나중에 몽테뉴의 유해는 보르도의 성 앙투안 교회로 옮겨졌다.

그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찬조 France 샹숑]


[죽음에 관해서]
몽테뉴가 살았던 시대는 폭력이 난무하던 때였다.

전쟁, 전염병, 결투, 처형 장면 등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만연한 죽음에 대해 몽테뉴가 취한 태도는
스토아주의처럼 죽음 앞에서
의연한 태도를 취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에픽테토스가 말했듯이,
마치 항해 도중에 배가 어느 항구에 정박하여

물을 구하러 배에서 잠시 내렸을 때,
해변을 걷다가 조개나 고둥을 줍는 것과 같다.

그것을 줍다 보면 점점 재미가 생긴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배에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선장이 부르면 줍던 것을 모두 던져버리고
달려갈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에는 많은 것들이 주어지지만 결국 선장이 부르면
모든 것을 남겨두고 배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년에는
몽테뉴의 이런 스토아주의적인 생각들이 바뀐다.

[찬조 K-Pop]


그는 언제 죽을까, 어떻게 죽을까를 미리 생각하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어봐야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은 그 자체가 목표이자 목적이다.
죽음은 분명히 끝이지만,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의연한 태도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만족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행복하게 죽는 것은 만족의 원천이 아니다."

이런 생각 끝에 몽테뉴는 마침내 이렇게 선언한다.

"스토아학파는 가장 못된 패거리다."

[찬조 France 샹숑]


[어록]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옥좌에 오르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엉덩이로 앉아 있을 뿐이다."

"순박함과 진실한 태도는 시대를 초월해 통용된다."



"나는 존재를 그리지 않는다. 내가 그리는 것은 과정이다."

"인생은 그 자체로 목적이고 목표여야 한다."

[찬조 K-Pop]


"우리는 키케로가 이렇게 말했다거나,
플라톤의 <도덕론>이 어떻다거나,
이게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라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는 잘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우리는 무슨 말을 하나?
우리가 내리는 판단은 무엇인가?
우리가 행하는 것은 무엇인가?
말이야 앵무새라도 곧잘 할 테니 말이다."



"그들(민중) 마음에 들려고 하다가는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형체도 없고 쥐어볼 꼬투리도 없는 대상이다"

[찬조 K-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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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GPT 답변] (답변에 오류가 많으니, 단순 재미로만 참조바람)
(from https://chat.openai.com/chat)

미셸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가
제일 좋아했던 역사적 인물은?

미셸 몽테뉴는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자기비판주의(自己批判主義)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셸 몽테뉴가 제일 좋아했던 역사적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입니다.

미셸 몽테뉴는 소크라테스처럼 현명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소크라테스처럼 자기비판적인 태도를 중요시하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이 인간의 진정한 현명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미셸 몽테뉴는 소크라테스의 생각과 철학이
자신의 철학적인 견해와 매우 일치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미셸 몽테뉴가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 중 하나입니다.

[찬조 트로트]


미셸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가
좋아할만한 한국 트로트 노래 제목은 무엇일까?

미셸 몽테뉴는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로,
자기비판주의(自己批判主義)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과 존재에 대한 깊은 탐구를 통해
인간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또한 그는 다양한 문학 작품을 즐기는 문학 애호가였습니다.

한국 트로트 노래 중에서 미셸 몽테뉴가 좋아할만한 것은
"나의 어릴 적 이야기"입니다.

[찬조 음악]


이 노래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아픔을 다루고 있으며,
인간의 삶에서 고민하고 탐구해야 할 부분들을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찬조 음악]


이러한 내용은 미셸 몽테뉴와 같은 철학자가 좋아할 만한 내용입니다.

미셸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가
경험한 재미있는 일화(episode)는?

미셸 몽테뉴가 경험한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셸 몽테뉴은 1580년대에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한 차례 파비아(Pavia)라는 작은 마을에 들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고,
그들 중 한 명은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이 의사는 몽테뉴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서 대접했는데,
그의 집 안에는 인조된 인간 심장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는 돼지 심장이지만,
인간 심장으로 보이게 만들어졌습니다.

미셸 몽테뉴은 이것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이를 본 후 그는 자신의 에세이 중 하나인 "영혼에 대하여"에서
이 일화를 언급했는데,

이것이 인간의 심성과 인간의 몸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몽테뉴가 그의 철학적인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미셸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가
얼마나 양심적인 사람일까?

미셸 몽테뉴는 인간의 본성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고,
인간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프랑스의 철학자, 작가, 정치인입니다.

그의 에세이 '에센스'는 현대 철학의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의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행동에 대한 논의는
인문학, 사회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미셸 몽테뉴는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살피는 것과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양심적인 삶의 기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진실성과 양심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그는 타인의 인간성을 존중하고,
자신의 인간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미셸 몽테뉴는 양심적인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미셸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의
양심(Conscience) 등급(Grade)을 A(매우 우수), B(우수),
C(보통), D(낮음) 로 Grading 한다면,
미셸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의
양심등급(Conscience Grade)은?


미셸 몽테뉴는 인간성과 인격에 대한 고찰과
윤리철학에 대한 생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사상가입니다.

그의 저작 '에센스'에는 자아성찰과 존중, 관용, 허락 등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의 시대적 배경과 경험을 고려할 때,
그는 매우 양심적인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따라서 미셸 몽테뉴의 양심 등급은 A(매우 우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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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Montaigne

[Born] Michel Eyquem de Montaigne
28 February 1533
Chateau de Montaigne, Guyenne, France

[Died] 13 September 1592 (aged 59)
Chateau de Montaigne, Guyenne, France

[Religion]
Roman Catholic

[Era] Renaissance philosophy

[Region] Western Philosophy

[School]
Renaissance humanism Renaissance
skepticism

[Notable ideas]
The essay,
Montaigne's wheel arg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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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Eyquem de Montaigne (28 February
1533 – 13 September 1592) wa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philosophers of
the French Renaissance, known for
popularizing the essay as a literary genre.

[Recommended Youtube Video]


His work is noted for its merging of
casual anecdotes and autobiography with
serious intellectual insight; his
massive volume Essais (translated
literally as "Attempts" or "Trials")
contains some of the most influential
essays ever written. Montaigne had a
direct influence on writers all over
the world, including Francis Bacon,
Rene Descartes, Blaise Pascal,
Jean-Jacques Rousseau, Albert
Hirschman, William Hazlitt, Ralph Waldo
Emerson, Friedrich Nietzsche, Stefan
Zweig, Eric Hoffer, Isaac Asimov, and
possibly on the later works of William Shakespe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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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his own lifetime, Montaigne was
admired more as a statesman than as an
author. The tendency in his essays to
digress into anecdotes and personal
ruminations was seen as detrimental to
proper style rather than as an
innovation, and his declaration
that, 'I am myself the matter of my
book', was viewed by his contemporaries
as self-indulgent.

In time, however, Montaigne would come to be recognized
as embodying, perhaps better than any
other author of his time, the spirit of
freely entertaining doubt which began
to emerge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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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is most famously known for his skeptical
remark, "Que scay-je?" ("What do I
know?", in Middle French; directly
rendered Que sais-je? in modern
French). Remarkably modern even to
readers today, Montaigne's attempt to
examine the world through the lens of
the only thing he can depend on
implicitly—his own judgment—makes him more
accessible to modern readers than any
other author of the Renaissance.

Much of modern literary non-fiction has
found inspiration in Montaigne and
writers of all kinds continue to read
him for his masterful balance of
intellectual knowledge and personal
storytelling.

(from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naver.com wikipedia.org,
추천 유튜브 동영상,
** Selected & Recommended Youtube Videos are shown. **)


Casual anecdotes, influence(+)~
(PIG: time-variant)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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