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록펠러 Rockef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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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사업가, USA
존 데이비슨 록펠러 (John Davison Rockefeller)
사업가, 기업인


[출생] 1839년 7월 8일
미국 뉴욕 주 리치퍼드

[사망] 1937년 5월 23일 (97세)
미국 플로리다 주 오몬드비치

[직업] 실업가, 자선가
[순자산]
포브스 선정 인류에서 가장 부유한 75인
(출처), 3183억 달러 (현재 기준, 약 318조원) (역대 1위에 해당)


[종교] 침례교
[자녀] 존 D. 록펠러 2세
[가족] 슬하 1남 4녀

[경력사항]
1890 ~ 1892 미국 시카고대학교 설립
1899 뉴저지주 지주회사 설립
1882 스탠더드 오일 설립, 회장
1870 오하이오스탠더드 석유회사 설립
1863 클리블랜드 정유소 설립
1859 상사회사 설립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년~1937년)는 미국의 사업가·대부호이다.

1870년 스탠더드 오일을 창립, 석유 사업으로
많은 재산을 모아 역대 세계 최고의 부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2010년 기준 세계 최대 석유 기업인 엑슨모빌도 그가 세운
스탠더드 오일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생애]
뉴욕 주에서 순회 판매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1853년 가족을 따라 오하이오 주로 이주했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고,
16세 때 클리블랜드에서 농산물 중개 상점에 근무하다 곧
자신의 중개 사업을 시작했다.

185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 광맥이 발견되자,
1862년에 석유 정제업에 손을 대었다.
1870년 스탠더드 오일 회사를 창립하고 뛰어난 경영 수완으로
얼마 안 되어 미국 최대의 정유 회사가 되었다.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조직하여 석유업의 독점적 지배를
확립하였으나, 반 트러스트 법 위반으로 인정되어
1899년 트러스트를 해산하였다.
이어서 뉴저지 스탠더드 석유 회사를 설립하였으나,
1911년 미국 대법원에 의해 해산을 명령받아 은퇴하였다.
(은퇴를 했지만 회사의 지분은 대부분 그가 소유했다.)
그 후 자선 사업에 몰두하여 시카고 대학교를 설립하고,
록펠러 재단을 세워 병원·의학 연구소·교회·학교 등의
문화 사업에 전념하다 1937년 97세로 사망하였다.

그는 1남 4녀를 남겼는데, 아들 존 D. 록펠러 2세가
사업을 계승하였으며, 부통령을 지낸 넬슨 록펠러 등
그의 많은 후손들이 정계·재계에서 활동하여
미국의 유명한 록펠러 가문을 형성했다.


존 데이비슨 록펠러 [John Davison Rockefeller]
미국의 석유 재벌

[출생 - 사망] 1839년 7월 8일 ~ 1937년 5월 23일

[1937.5.23 '석유왕' 록펠러, 숨을 거두다]
록펠러가 20세기 초 ‘미국의 석유 왕’ 이라고 불리기 전까지
그의 행보는 현대의 어떤 기업들도 흉내내기 힘든 대단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는 1878년 4월, 미국 전체의
정유 능력에 해당하는 연간 360만 배럴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미 1881년 록펠러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를
손에 쥐고 있었다. “신대륙이 개척되기 시작했을 때,
영국 여왕이 개인에게 독점 사업권을 하사했던 때를 제외하곤,
이 땅에 이런 절대적인 독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net

당대를 같이 살았던 미국의 신화적인 부자들인 앤드류 카네기,
J. P. 모건과 더불어 록펠러라는 이름은 현대 경영자들에게
별과도 같은 존재이다.
자산가치는 현재의 빌 게이츠의 3배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엄청난 기부금을 낸 자선사업가이기도 하다.
그의 경영기법, 근검절약을 그대로 따라하는
우리나라 재벌회장들도 많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를 독점]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부를 축척할 수 있었을까?
우선은 석유다. ‘쥬라기 공룡’의 시체가 땅 속에서
수만 년 동안 썩어 만들어진 석유. 이미 현대인들의
산소, 공기와 같은 이 연료가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록펠러를 공룡 기업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고래 기름으로 등잔을 밝히던 시대에 태어난 록펠러는
석유를 원료로 하는 내연기관이 필요한 시대를 살았으니
그의 사업은 번창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시대를 잘 타고난 거인이었다.
한국.net

물론 록펠러만이 석유 사업을 한 것은 아니다.
당대의 그 수많은 석유업자들은 모두 록펠러의 희생양이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나 독점한
록펠러는 기업인으로서 무자비한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이’ 타 기업을 흡수·통합하고,
시쳇말로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악덕 재벌기업의 전형이었다.
술도 여자도 음악, 미술 감상도 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서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이토록 거대한 재산을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건실한 사람이기도 했다.
한국.net

["내가 저기서 주급 4달러로 처음 일을 시작했지"]
미국 사회의 전설적인 가문인 록펠러가의 시조인
존 데이비슨 록펠러.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이주민들이 몰려들던 서부 시대의 개막 10년 전인
1839년 7월 8일 뉴욕 북부 리치포드에서 부자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윌리엄 에이버리 록펠러,
어머니는 일라이지 데이비슨 록펠러다.

어린 시절 간혹 떼돈도 벌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성장한 록펠러는 돈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지금까지도 자기 개발서의 원조가 되기도 하는
그의 근검절약, 시간절약, 성공의 지름길과 같은 이야기와
잠언들은 모조리 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가 돈에 대해 남긴 감동적인 일화들도
인터넷 공간에 차고도 넘친다.
이러한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순간은 1855년 클리블랜드의
센트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월 26일 ‘휴이트 앤드 터틀’에
경리과 직원으로 입사해 ‘회계장부 A’를 기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회사는 곡물과 여타 상품의 위탁판매와
생산물 하송도 담당하는 업체였다. 록펠러는 첫 직장에
취업한 9월 26일을 그의 두 번째 생일로 기념한다.
훗날 대성한 록펠러는 매년 이 날이 되면 ‘자신의 영지’에
깃발을 올리고 그 때의 일을 축하했다.
이 지역을 지나가다 운전사에게 차를 세우게 하고
록펠러는 살짝 눈물을 머금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봐! 저기 장방형의 건물 좀 보라구.
내가 저기서 주급 4달러로 처음 일을 시작했지”
한국.net

그의 회계장부는 그의 인생 그 자체였다.
록펠러처럼 성공하고 싶다면 그의 ‘회계장부 정신’을
일단 배워야 한다. 록펠러 가문의 평전인
<록펠러 가의 사람들>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장부를 기록했으며,
한 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수입과 지출금, 저축과 투자금,
그리고 사업과 자선금의 내역을 작성해 나갔다.
매주 그는 싸구려 하숙집의 집세로 1달러를 지불하는 것 외에도
소액기부 모임에 75센트를, 그리고 이리 스트리트 침례교회의
주일학교에 5센트, 빈민구제 활동에 10센트, 해외선교 활동에
10센트를 헌금했다.” 그는 4달러 주급 시절부터 기독교 정신의
핵심인 십일조, 즉 자신의 수입의 10%를 헌금으로 평생을
낸 독실한 신자였다. 또한 미국 사회에 엄청난 기부금을
선사한 자선사업가이기도 했다.

['이 시대 최고의 범죄자'라는 비판 그리고 자선단체의 설립]
20세기 초, 거금 10만 달러의 기부금을 낸 록펠러에게
한 목사가 록펠러의 이 돈은 ‘더러운 돈’이라면서 설교를 했다.
‘더러운 돈’이 그 사회의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록펠러는 그 기부금을 내던 시절만 해도 ‘
이 시대 최고의 범죄자’라는 비판을 들어야만 했다.
이러한 비판의 이유는 그의 석유회사 스탠더드 오일의
성장 배경에 있다.

오늘날에도 문제가 되는 정경유착, 무자비한 기업 인수,
문어발식 회사 확장 등 록펠러는 회계 장부를 들고 섬세하고
꼼꼼하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며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손에 무너져 버린 수많은 정유회사와 경쟁자들은
이를 갈았지만 록펠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나 단정하고 엄정한 눈빛으로 적들을 관대하게 바라보면서
‘석유왕’의 품격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재산을 증식했다.
어떤 기독교인은 그의 재산에 대해서, 아담이 낙원에서 추방된
직후부터 매일 500달러씩 저축을 해도 아마 록펠러의
재산만큼은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net

록펠러는 이러한 엄청난 부를 사회에 반드시 환원해야만 했다.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쩌면 그 눈덩이에 록펠러가 깔려
죽어버릴 수도 있었다. 이때 프레데릭 게이츠 목사가
혜성처럼 나타나 그의 재산을 자선사업에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게이츠 목사는 록펠러 이름을 딴
자선단체를 설립하고, 미국 최초의 의학 연구소인
록펠러 의학 연구소(손자에 의해 훗날 록펠러 대학으로 개편),
교육사업 등을 통하여 실추된 이미지의 록펠러를
자비로운 자선사업가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부각시켜 주었다.
97년을 살다 간 만년의 록펠러는, 그를 증오하던 세대가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새로운 이미지로
미국의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한편 게이츠 목사는 탁월한 사업 감각으로 록펠러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면서도 당시 카네기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철강사업에도 손을 뻗어 재산을 늘렸다.
록펠러에게는 정말 신이 내려준 존재와 같은 인물이었다.
그가 사람 쓰는 법은 이렇다. “내가 바라는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서 모든 것을 맡겨라.” 게이츠 목사 이외에도
그를 비방하던 많은 적들이 록펠러 밑으로 들어와 가장 충직한
사업가로서 활동했다.

[록펠러는 엄청난 재산을 기부와 사회산업에 쏟아 부었다]
록펠러의 시간은 바로 돈이었다.
그 정신으로 근 100년 동안 돈을 벌었고,
평생 동안 많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
록펠러는 1937년 5월 23일에 97세를 일기로 눈을 감을 때까지
부에 관한 한 개인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장례식은 25일에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치루었다.
이 장엄한 날, 전 세계의 스텐더드 오일 계열사에서
5분간 일손을 놓고 20세기에 누구보다도 활활 타올랐던
석유 왕을 추모하였다. 죽기 얼마 전에 그는 간신히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힘든 목소리로
“스텐더드 오일에게 축복을, 우리 모두에게도” 라고 말했다.

록펠러는 석유 세상을 움직이는 왕이었다.
이 말은 자본의 왕이라는 말과도 상통했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재산을 기부와 사회사업에 쏟아 부었다.
비판자들이 비아냥거려도 독실한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그의 방식대로 성경을 읽고 사랑을 실천한 신자였다.

록펠러는 우리에게 참으로 어려운 존재이다.
어떻게 보아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을 수도 있다.
무턱대고 비판을 하기에는 그가 행한 ‘선행’의
그림자가 너무 넓다.

한국.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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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July 8,1839, Richford, New York
[Died] May 23, 1937 (aged 97)
The Casements, Ormond Beach, Florida
[Resting place]
Lake View Cemetery, Cleveland, Ohio

[Occupation]
Founder and former chairman of the Standard Oil Company
Founder of the University of Chicago
and Rockefeller University
Funded the establishment of Central Philippine University
Founder of the General Education Board
Founder of the Rockefeller Foundation

[Net worth]
Increase US$336 Billion in 2007 dollars,
according to List of wealthiest historical figures,
based on information from Forbes – September 2007.

[Religion] Baptist
[Spouse(s)]
Laura Celestia Spelman
(m. 1864–1915; her death)

[Children]
Elizabeth Rockefeller
Alice Rockefeller
Alta Rockefeller
Edith Rockefeller
John Davison Rockefeller, Jr.

[Parent(s)]
William Avery Rockefeller Sr.
Eliza Davison
-----------------------
John Davison Rockefeller Sr. (July 8,
1839 – May 23, 1937) was an American
business magnate and philanthropist.

He was a co-founder of the Standard Oil
Company, which dominated the oil
industry and was the first great U.S.
business trust. Rockefeller
revolutionized the petroleum industry,
and along with other key contemporary
industrialists such as Andrew Carnegie,
defined the structure of modern
philanthropy. In 1870, he founded
Standard Oil Company and actively ran
it until he officially retired in 1897.

Rockefeller founded Standard Oil as an
Ohio partnership with his brother
William along with Henry Flagler, Jabez
A. Bostwick, chemist Samuel Andrews,
and a silent partner, Stephen V.
Harkness. As kerosene and gasoline grew
in importance, Rockefeller's wealth
soared and he became the world's
richest man and the first American
worth more than a billion dollars,
controlling 90% of all oil in the
United States at his peak. Adjusting
for inflation, his fortune upon his
death in 1937 stood at $336 billion,
accounting for more than 1.5% of the
national economy, making him the
richest person in US history.

Rockefeller spent the last 40 years of
his life in retirement at his estate,
Kykuit, in Westchester County, New
York. His fortune was mainly used to
create the modern systematic approach
of targeted philanthropy. He was able
to do this through the creation of
foundations that had a major effect on
medicine, education and scientific
research. His foundations pioneered the
development of medical research and
were instrumental in the eradication of
hookworm and yellow fever.

Rockefeller was also the founder of
both the University of Chicago and
Rockefeller University and funded the
establishment of Central Philippine
University in the Philippines. He was a
devoted Northern Baptist and supported
many church-based institutions.
Rockefeller adhered to total abstinence
from alcohol and tobacco throughout his
life. He was a faithful congregant of
the Erie Street Baptist Mission Church,
where he taught Sunday school, and
served as a trustee, clerk, and
occasional janitor. Religion was a
guiding force throughout his life, and
Rockefeller believed it to be the
source of his success. Rockefeller was
also considered a supporter of
capitalism based in a perspective of
social darwinism, and is often quoted
saying "The growth of a large business
is merely a survival of the fittest."

(from naver.com wikipedia.org 네이버 지식백과)


superior Businessman and someting more(+)~

Positive Influence GRADE (PIG):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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