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김용환 金龍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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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金龍煥, 항일 독립운동가, Korea
한국.net

[출생] 1887년 2월 27일, 경북 안동시
[사망] 1946년 7월 10일 (59세)

[국적] 대한민국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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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공훈록]

성명: 김용환 金龍煥
생존기간:1887년 2월 27일~1946년 7월 10일
출생지: 경북 안동
운동계열: 국내항일
훈격(연도): 애족장 (1995)


[공적내용]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08년 이강년
의병장의 의진에 참가하여 김현동(金賢東)과 함께
적정(敵情) 탐지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1911년에는
김상태(金尙台) 의진(義陣)에 참가하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그는 독립군기지 개척을 위해 도만(渡
滿)한 독립운동자들과 연결되어 거액의 군
자금을 제공하였다가, 이 일로 인하여 일경
에 세 번이나 피체되어 고초를 치렀다.

그럼에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오히려 독립운동 조직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3
·1운동 이후 조직된 의용단(義勇團)에
가입하여 경북 지단(支團)의 서기(書記)로
활약하였다. 의용단은 김찬규(金燦奎) 등
이 만주 길림(吉林)의 군정서(軍政署)와 연
결되어 군자금을 지원하기 위하여 결성된
독립군 지원단체였다.

주로 경상북도와 남도지역을 무대로 활동
한 의용단은 경북 안동을 비롯하여 영천(永
川)·군위(軍威)·영일(迎日)과 경남 창녕
(昌寧) 등지의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때 이들은 독립
운동자금요구서 및 시국에 대한 경고문, 길
림군정서 발행의 사형 선고서와 같은 문서
들을 각처의 부호들에 우편으로 우송하였으
나 친일부호들의 외면으로 인하여 큰 성과
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러던 중 이러한 일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그는 1922년 12월 28일 피체되어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註·형사사건부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
부) 208·211면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
사편찬위원회) 제6권 934·938면 ·회문 김
현동선생 약사(1984) 5면 ·안동판독립사
(김을동편저, 1985) 115면 ·매일신보
(1922. 12. 21, 12. 30) ·동아일보(1922.
12. 20, 12. 22, 12. 23,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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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金龍煥, 1887년 ~ 1946년)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생애]
[독립운동]
의성 김씨 학봉파의 후손으로, 학봉 김성일
의 13대 종손으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사촌
이자 의병장이었던 김흥락이 일본군에게 사
망한 모습을 목격한 후 항일의 뜻을 품었다.

1908년 의병장 이강년, 1911년 김상태 의진
등에서 의병활동을 하면서 한편으로 독립
군 기지 개척을 위해 도만(渡滿)한 독립운
동자들과 연결되어 거액의 군자금을 제공하
였다가, 이 일로 인하여 일경에 세 번이나
피체되어 고초를 치르기도 했다.


3·1 운동 이후에는 의용단에서 서기를
역임해 활동하였다.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으며, 1922년에
다시 일제에 피체되었다. 한편 그가 지원
한 군자금은 현재 시가로 환산하면 200억원
이라고 한다. 그는 독립운동을 숨기기
위해 도박으로 종가 재산을 모두 날린 노름
꾼 행세를 하였다. 이 때문에 파락호로 불리었다.

[사후]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김용환의
외동딸인 김후옹 여사는 부친의 건국훈장
을 추서된 1995년에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라는
서간문을 남겼다.


....................................
"그럭저럭 나이 차서 십육세에 시집가니
청송 마평서씨문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때 농 사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디에다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날 늦추다가
큰어매 쓰던 헌농 신행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붙어 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
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간장 그 광경 어떠할고.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보낸 농값 그것
마저 다 바쳤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내 생각한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

(from 국가보훈처,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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