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플라톤 Pl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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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Plato, BC 5~4Century, Greek Philosopher
[출생] 기원전 427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
[사망] 기원전 347년

[직업] 학자(철학)

(인류역사 인물 100명중 40위)


플라톤 (기원전 428/427 또는 424/423,
기원전 348/347)은 서양의 다양한 학문에
영향력을 가진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사상가
였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었으며, 아리스토
텔레스의 스승이었고, 현대 대학의 원형이
라고 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고등 교육 기
관인 아카데메이아(academia)를 아테네에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각에서
는 그의 실제 이름은 '아리스토클레스' 였
을 것으로 여겨진다.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에서
폭넓은 주제를 강의하였으며, 특히 정치
학, 윤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등 많은
철학적 논점들에 대해 저술하였다.

플라톤의 저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대화편이다. 비록 일부 편지들은 단지 그
의 이름을 붙여서 내려오고 있기는 하지
만, 플라톤에 의한 진짜 대화편은 모두 온
전하게 전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
재 학자들의 합의에 따라, 그리스인들이 플
라톤의 것으로 생각하는 '알키비아데스
I'과 '클레이토폰' 등과 같은 대화편들은
의심스럽거나 또는 '데모도코스'와 '알키비
아데스 II' 등과 같은 대화편들은 대개는
위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편지들은 대개 거
의 모두 위조된 것으로 여겨지며, 일곱번
째 편지만이 예외로서 위조되지 않았을 가
능성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자주 등장
하는 주요 등장인물이었다. 이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있는 내용과 주장 중 어디까지가
소크라테스의 견해이고, 어디까지가 플라톤
의 견해인지에 대한 많은 논쟁을 불러왔
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것도 글
로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종종 "소크라테스의 문제" 이라 부른다.

그러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으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확실하
다. 따라서 플라톤의 많은 아이디어들, 적
어도 그의 초기 연구들은 아마도 소크라테
스의 것을 빌려오거나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가 이성 우위의 전통을 가진 서양 철학
에 미친 영향은 더할 수 없이 크다. 영국
의 철학자인 화이트헤드는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라고 말했으며, 시인 에머슨은 "철학은 플
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 이라 평하였다.

[삶]
플라톤은 아테나이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
다. 젊었을 때 소크라테스에게 배우고 결정
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저서는 모두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된 변증론에 관
한 대화편이어서 그와 스승과의 학설을 구
별하기 힘들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정치가로서의 꿈을 버
리고 정의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 이탈
리아를 여행하여 키레네 학파로부터 이데아
와 변증법의 기초를 얻고 피타고라스 학파
에 접하며 실천적 정신과 실생활에의 흥미
를 얻어 그의 독자적인 사상을 반성하게 되
었다. 그 사이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라케스〉 등을 쓰고, 40세
에 귀국하여 〈고르기아스〉, 〈대(大)히피
아스〉, 〈소(小) 히피아스〉를 썼다.

그는 그의 이상 국가를 실현해 보고자 친구
인 디온의 권고로 시켈리아의 참주 디오뉘
시오스 1세의 초청에 응하였으나, 그의 과
두 정치를 비난함으로써 분노를 얻어 노예
로 팔리기까지 하였다. 후에 그의 저작을
본 퀴레네 사람 덕분에 구출되어 귀국한
뒤,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건립하고 제자 양
성에 전력하면서 저작에 몰두하였다. 〈향
연〉, 〈파이돈〉, 〈국가〉, 〈파이드로
스〉 등 주요 저술이 여기서 이루어졌고,
이 학원은 529년까지 계속되었다. 대학교
의 초기 형태인 '아카데미(Academy)'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357년 디오뉘시오
스 2세의 간청을 받자 망설이던 끝에 다시
시켈리아로 가서 이상 정치를 펴보려 하였
으나, 실패하고 1년 만에 귀국하여 〈법
률〉 등 몇 개의 저서를 더 쓴 뒤 81세에
세상을 떠났다.

['플라톤의 교육관' 목적]
그는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결합된 충동적
이며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는 정욕과, 육체
와 결합되지 않으며 불사적인 순수한 이성
으로 되어 있다고 하고, '이성'은 매우 순
수한 것이지만 이 세계의 배후에 있는 완
전 지선의 실체계인 이데아를 직관할 수 없
으며 세상에 탄생하여 육체 속에 듦으로써
이데아를 잊고 있다. 이 잊었던 이데아를
동경하는 마음이 에로스이며, 현상을 보고
그 원형인 이데아를 '상기'하여(상기설),
인식하는 것이 진리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
의 이성적 부분의 덕이 지혜이며, 정욕적
부분의 덕을 절제,이성의 명령에 복종하여
정욕을 억압하는 기개의 덕을 용기라고 하
는 것이다. '올바름(dikaiosyne, 또는 '정
의')란 여러 덕이 알맞게 그 기능을 발휘
할 때의 상태를 말한다.' 그는 이러한 덕론
을 통하여 인간 개인의 윤리학을 논하였
다. 그러나 정의의 실현은 개인의 덕을 달
성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사회 전체의 윤리설을 주장하였다. 그것이
그의 '국가(Politeia)'다.

[플라톤의 교육방법]
그는 국가를 개인의 확대로 생각하여 개인
에 있어서의 정욕의 부분이 농·공·상업
의 서민이며, 기개의 부분은 군인·관리,
이성의 부분은 통치자라고 하고, 이성은 당
연히 선의 이데아를 인식하여야 하므로 "철
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한
다"고 하는 유명한 철인 정치론을 전개했
다. 이러한 통치자의 교육 제도와 방법에
서 그의 교육학을 엿볼 수 있다.

[귀족주의]
철인 정치론을 전개한 플라톤은 기본적으
로 귀족정을 옹호한다. 일반적으로 귀족정
은 평등사회가 아닌 신분사회를 옹호하는
데, 플라톤 또한 신분사회를 옹호한다. 그
러나 그가 말하는 귀족정의 궁극적인 목적
과 그 실현 양태는 일반적인 귀족정과는 다
른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귀족정에서의 왕
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높은 신분
으로써의 도덕적 의무를 중시해야 하는
데, 그 실현은 한가지 예를 들면 왕의 사유
재산의 형태로 나타난다. 플라톤은 왕의 사
유재산은 오직 공익을 위해서만 쓰여야한다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 밑
의 귀족들까지도 사유재산을 공유하자는 것
이 아니라, 가장 높은 신분의 상징인 왕이
라면 그만큼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해야함
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4주덕'에서는 조화라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데, 4주덕에 맞는 각각
의 신분이 각자 맡은 일만을 해야하며 그것
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일을 한다거나 서민이 전쟁을 한다는
것과 같은 용기를 보이는 것은 플라톤의 관
점에선 사회적 부조화를 야기한다는 것이
다.

[저작]
35편의 대화편과 13편의 서간은 전통적으
로 플라톤의 것으로 여겨졌으나 현대 학자
들은 최소한 일부 저작에 대해서는 진위 여
부를 의심하고 있다. 플라톤의 저작은 여
러 방식으로 간행된 바 있는데, 그에 따라
플라톤의 글을 명명하고 배열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되었다.

플라톤의 글을 분류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16세기 앙리 에티엔(헨리쿠스 스테파누스)
의 플라톤 판본에서 비롯되었다.

또 플라톤의 글을 배열하는 방식으로 4부극
에 따르는 전통이 있었는데, 디오게네스 라
에르티오스는 이 방식이 고대의 학자이자
티베리우스 황제의 궁정 점성가였던 트라쉬
불로스의 것이라고 여겼다.

아래 플라톤의 저작 목록에서 학자간에 플
라톤이 쓴 글인지 합의가 되어 있지 않은
책은 (1) 표시를, 그리고 일반적으로 플라
톤의 저작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책은
(2) 표시를 달았다. 표시가 없는 저작은 플
라톤이 쓴 것으로 여겨진다.
I.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
톤, 파이돈II. 크라튈로스, 테아이테토스,
소피스트, 정치가III. 파르메니데스, 필레
보스, 향연, 파이드로스IV. 알키비아데스
1 (1), 알키비아데스 2 (2), 히파르코스
(2), 에라스타이 (2)V. 테아게스 (2), 카르
미데스, 라케스, 뤼시스VI. 에우튀데모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메논VII. 대 히
피아스 (1), 소 히피아스, 이온, 메넥세노
스VIII. 클레이토폰 (1), 국가, 티마이오
스, 크리티아스IX. 미노스 (2), 법률, 에피
노미스 (2), 편지들 (1)
그 밖에 저작은 플라톤의 이름을 빌었으나
상당수는 고대에 이미 위작으로 여겨졌으
며, 트라쉴로스는 자신의 4부극식 저작 배
열에서 이런 류를 넣지 않았다. 아래 작품
은 "위작"(Notheuomenoi) 또는 "위
서"(Apocrypha)라 불린다.
악시오코스 (2), 정의 (2), 데모도코스,
시, 에뤽시아스 (2), 할퀴온 (2), 올바름
에 대하여 (2), 덕에 대하여 (2), 시쉬포
스 (2)

(from wikipedia.org 위Home)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객관적 관념론의 창시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귀족 출신.
40세경 아테네 교외의 아카데미아에 학교
를 열어 교육에 임하였으며, 또한 많은 저
작(30권이 넘는 대화편)을 썼다. 그의 철학
은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
토스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당시의
유물론자 데모크리토스의 사상과 대립하였
다.

그는 유명한 이데아설을 제창, 이데아(혹
은 형상)는 비물질적, 영원, 초세계
적인 절대적 참실재이며 이에 대하여 물질
적, 감각적인 존재는 잠정적, 상대적이고,
이 감각에 호소하는 경험적인 사물의 세계
는 이데아의 그림자, 모상(模相)이라는 이
원론적 세계관을 내세웠다. 세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세계 영혼이며, 인간의 영혼
은 세계 영혼이 주재하는 이데아계에 있던
것으로 이 영혼은 불멸(不滅)이며 이데아
를 상기하는 것에서 진정한 인식이 얻어진
다고 하였다.

감각적 지식은 단순한 '억견'(doxa)에 지나
지 않고 영혼에 의한 지적 직관으로써 상기
되는 것이 참지식으로, 이들 양자 사이에
는 합리적 지식인 수학적 대상의 지식이 있
다. 이때 그는 개념적 인식에 대하여 변증
법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점차 일반적인
개념으로 전진하여, 가장 일반적인 것에
이르는 과정과, 이 발전적 개념으로부터
점차 일반성의 낮은 단계로 하향(下向)하
는 2개의 과정을 취한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인간에게는 육체에 임시로 머물
고 있는 영혼에 의해 이데아계를 인식하는
곳에 인간의 최고의 기쁨이 있으며, 철학자
는 현실 세계를 이 이상에 근접(近接) 시키
는 역할을 한다. 그는 아테네 귀족의 대표
로서 이상적 귀족국가의 구상을 내놓고
철학자에 의한 지배를 제창하여 이 지배자
아래에 군인이 있고 그 아래에 상인이
있는 계층을 생각하였다. 이것은 그가 영혼
에는 이성적, 의기적(意氣的), 욕정적(欲情
的)인 것이 있다고 한 것에 대응한다.
플라톤의 철학은 그 후 계속 관념론 철학
에 강력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경력사항]
아테네 교외의 아카데미아에 학교를 열어
교육에 임함

(from 네이버 지식백과)
======================================
플라톤: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 Platon ]

[요약]
『국가』로부터 시작되었던 ‘누가 다스려
야 하는가?’에 대한 플라톤의 정치 철학
적 여정이 『법률』로 막을 내린다. 표면적
으로 볼 때는 이상주의적인 『국가』로부
터 현실주의적인 『정치가』와 『법률』로
의 변화다. 그러나 아테네 민주정의 몰락
이후, 플라톤이 당면했던 현실 정치의 문제
를 ‘올바름’에 대한 성찰로 극복하려는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이러한 의지가 없었
다면, 플라톤 이후 수많은 사상가들이 그
의 정치 철학에 대한 끝없는 찬사와 지속적
인 비판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혁명적 철학자의 탄생]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 아테네 명문가문에
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아리스톤
(Ariston)은 아테네 마지막 왕으로 알려진
코드로스(Kodros)의 후손이고, 어머니 페릭
티오네(Periktione)는 아테네 민주정의 윤
곽을 잡은 솔론(Solon)의 자손이다. 어머니
가 아테네 정치가이자 페리클레스의 친구
인 피릴람페스(Pyrilampes)와 재혼했기에,
펠로폰네소스 전쟁 과정 속에서 아테네가
당면했던 많은 정치적 문제들을 가까이에
서 보고 배울 기회도 있었을 것이다. 한마
디로 플라톤은 아테네 정치의 세밀한 부분
까지 살펴볼 수 있는 집안 환경에서 자랐
고, 그래서인지 그는 어려서부터 공직에 참
여하려는 강한 의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후 정치적 격변
들을 지켜보면서, 플라톤은 정치가의 꿈을
접었다. 첫 번째 계기는 기원전 404년에 일
어난 과두 혁명이었다. 외당숙인 크리티아
스(Kritias)가 가담한 ‘30인 정권’은 너
무나 무능력했고, 플라톤은 얼마 안가서 이
전의 형편없었던 민주파의 통치가 오히려
‘황금기’(chryson)였다는 생각을 갖게 되
었다. 두 번째 계기는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었다. 플라톤은 기원전 403년에 복원된
민주 정체에 적지 않은 기대를 했다. 정치
적 보복을 삼가고 공정하게 국정을 운영하
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원전 399년 소
크라테스를 사형으로 몰아 간 선동가들의
지배욕과 인민들의 무분별이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이때 플라톤은 ‘철학’이
라는 인생의 새로운 좌표를 세웠다.

[플라톤의 아카데미]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이후, 플라톤의 행
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남이탈리아
타라스(Taras)의 정치가이자 수학자인 아르
키테스(Archytes)와 함께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오스 1세를 방문한 것 외에, 40세
까지 특기할만한 사건이 없다. 단지 소크라
테스의 행적이 주로 담긴 초기 대화편들을
집필했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반면 40세 이후의 행적은 비교적 잘 알려
져 있다. 특히 기원전 385년 경, 그가 시라
쿠사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카데미아를 설립
했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그가 또 다른 의미에서 정치 활
동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러주
기 때문이다.

어쩌면 플라톤이 ‘혁명적’ 철학자였다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
시로서는 ‘좋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정치’와 연관시킨다는 것 자체가 상식
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 누구도 ‘올바름’
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때, 그리
고 ‘정치’는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
이라는 인식이 팽배할 때, ‘올바른’ 철학
자의 양성을 통해 ‘좋은 정치’를 만들어
내겠다는 생각은 ‘혁명적’일 수밖에 없었
다.
정치적 권위가 다수의 동의만으로는 형성되
지 않는다는 주장이 보수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치의 기술과
다수의 지지만으로 사악한 권력을 정당화하
려는 아테네 몰락기의 정치인들에게, 그의
정치철학이 ‘혁명적’으로 느껴졌을 것이
라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
다.

[『국가』 1권: 정치와 철학의 만남]
『국가』(BC 375)는 ‘누가 다스려야 하는
가?’와 관련된 플라톤의 주요 저작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다. 초기 플라톤의
저술에서 발견되는 소크라테스적 대화
와는 달리, ‘알 수 없음’에 대한 자각에
그치기보다 ‘올바름’또는 ‘정의’
(justice)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
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책이다. 그러기
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구별하려는 입장
에서, 『국가』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로부
터 벗어나 자기만의 정치철학을 담기 시작
했을 무렵의 대표적인 저술로 이해된다. 그
러나 『국가』가 초기 저작들과 완전히 구
분된 서술양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특히 대화가 발생
한 저술 속의 맥락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는, 초기 대화편에서도 특정 주제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확신이 드러났다며 서술양식
을 근거로 삼는 것에 반대한다.

어떤 입장에 서든지, 초기 저술의 서술양식
을 보여주는 『국가』 1권은 매우 중요하
다. 한편으로는 이전 대화편과의 연속성을
보여준 의도가 무엇인지 논의될 수 밖에 없
고, 다른 한편으로는 책의 서문 역할을 하
기에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가 토론될 수 밖
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첫 문장이 주목을
끄는데,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과 함께
피레우스(Peiraieus)로 내려갔었다
(kataben)”고 말하는 것이다. 이때
‘내려가다’(katabaino)라는 단어는 『오
디세이』에 자주 사용된 표현으로, 신이 삶
의 세계로 내려오는 모습을 지칭한다. 즉
플라톤은 ‘철학’ 또는 ‘추상의 세계’로
부터 ‘정치’ 또는 ‘삶의 세계’로의 여
정을 시작한 소크라테스를 부각시킨 것이
다. 따라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왜 현실
의 세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
장’으로 발길을 옮겼는가라는 질문이 자연
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가』 1권은 ‘정
치’와 ‘철학’의 오랜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케팔로스(Kephalos)와의 대화도 마찬
가지다. 비록 ‘돈’과 ‘늙음’을 다루지
만, 문제는 ‘올바름이란 빌린 것을 돌려주
는 것’이라는 케팔로스의 주장에 대한 소
크라테스의 질문에 그치지 않는다. ‘돈’
이든 ‘늙음’이든, 인간의 ‘영혼’이외
의 것들로 ‘올바름’을 규정하려는 태도
에 대한 부정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케팔
로스의 재산도 몇 년 뒤에 벌어진 아테네
의 정치격변으로부터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케팔로스의 아들에게 억지로 이끌려 ‘올바
름’에 대한 대화에 참여했듯이, 물질적 풍
요와 다수의 동의로 유지되는 민주주의 사
회도 철학의 도움이 없이는 ‘올바름’을
향유할 수 없다는 자각이 생기는 것이다.

보다 본격적인 정치와 철학의 긴장은 트라
시마코스(Thrasymachos)와의 대화에서 드러
난다. 사실 “올바름이란 더 강한 사람의
이익”이라는 트라시마코스의 말에 담긴
정치적 태도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발견된
다. 왜냐하면 ‘법이란 결국 정치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명령’일 뿐이라는 법(法)
실증주의적 관점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트라시마코스의 생각을 쉽게 풀자면,
‘올바름’은 법에 의해 강제되어야
가능한 것이고, 동일한 맥락에서 ‘올바
름’이란 법을 제정하는 ‘더 강한 사람’
의 이득이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크라테스의 반박은 단순
히 ‘올바름이란 지배자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는 도덕적 충고에 그치지 않는
다. ‘통치’란 본질적으로 ‘자기 이
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좋은 것’을
위한 행위라고 설득한다. 즉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는 후자를 위한 통치만
이 정치와 철학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으리
라 본 것이다.

[『국가』: 올바른 정체와 진정한 철학자]
『국가』 2권에서 4권까지 플라톤의 형제들
은 소크라테스의 ‘올바름’이란 그 자체로
도 결과적으로도 좋아야한다는 주장에 맞선
다. 사람들은 결과에 집착한다는 점을 지적
하면서, 소크라테스에게 ‘결과’와는 무관
하게 ‘올바름’을 추구해야하는지를 설명
하라고 다그치는 것이다. 이미 플라톤은 소
크라테스가 시장으로 내려온 목적은 정치
적 야망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이 ‘올바른
정치’에 대해 고민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고 말한 터였다. 그러기에 플라톤은 소크라
테스에게 ‘이상적인 정체’에서 올바름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개개인
이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설득하도록 기술한다.

이렇게 기술된 ‘이상적인 정체’의 모습
은 플라톤의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우
리에게도 충격적이다. 사실 플라톤은 소크
라테스에게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로부터 완
전히 동떨어진 ‘이상적인 정체’를 이야기
하도록 만들었다. 당시에 존재했던 정치체
제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성격의 정체를
설명함으로써, 민주제든 과두제든 기존 정
치체제에 대한 거부감을 뚜렷하게 드러낸
것이다. 한편 이런 태도는 이상적인 제도
의 청사진을 갖고 사회를 총체적으로 바꾸
려는 입장을 혐오하는 현대인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점진적으
로 사회적 문제를 개선해가는 방식을 채택
하기보다, 올바르게 교육받은 사람들이 없
이는 좋은 정체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전제
에서 보다 총제적인 개혁을 의도했기 때문
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상적인 정체’에 대
한 지나친 우려는 그가 지향한 ‘교육’
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그
의 교육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각기 정해
진 역할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지식
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다. 영혼을 ‘이
성’(logos), ‘기개’(thymos), ‘욕구’
(epithymia)로 나누지만, 공동체에서 개개
인의 성향은 추구하는 바의 상대적 강도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또한 플라톤이 말하
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개인이 추구
하는 바를 올바르게 통제해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따라
서 추구하는 바의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받지만, 플라톤의 ‘이상적인
정체’가 태생적으로 결정되거나 고정 불변
한 사회적 지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이상적인 정체’에서 통치는 지혜
를 추구하는 철학자에게 맡겨진다. ‘욕
구’를 따르는 사람들이 ‘돈’을 벌고,
‘기개’를 통해 ‘명예’를 취하려는 집단
들이 공동체를 지키며, ‘진정한’ 철학자
가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철학자들이 통치
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만이 무엇이
그 자체로 좋은지를 알기 때문만은 아니
다. 플라톤은 철인왕의 통치만이 구성원 각
자가 영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믿는다. 이들의 통치만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법의 강제가 없이도 조
화롭게 살아가는 성향을 갖게 만들고, 이들
의 통치가 다른 성향을 가진 집단의 통치
가 당면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
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기에 그는
철학자들이 정치적 활동에 종사하도록 강제
되어야 한다고까지 말하는 것이다.

[『정치가』: 정치적 기술과
유능한 운영자]
두 번째로 살펴볼 저작은 『정치가』
(Politikos)다. 이 저작은 제목부터가 흥미
를 끈다. 당시 ‘정치가’를 지칭하는 단어
는 크게 두 가지가 사용되었다. 하나는 플
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즐겨 쓰던 '정치
가'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아테네 민주정의 발전과 함께 널리 통용되
던 ‘정치가’란 말이다. 비록 둘 모두
‘정치가’로 번역될 수 있지만, 전자와 후
자는 매우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전자는
‘통치’에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공동체
전체를 위해 헌신해야 할 위치에 있는 개
인 또는 집단을 지칭한다면, 후자는 민회
나 법정에서 대중을 설득함으로써 자기의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개인 또는 집단에게
붙여졌던 이름이다. 따라서 플라톤이 『정
치가』의 제목으로 전자를 사용했다는 것
은 후자가 ‘조언자’와 같은 긍정적인
의미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던 아테네
민주정의 몰락기와 무관하지 않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정치가』가 집필
된 시기다. 이 저작은 기원전 367년과 기원
전 360년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알려져 있
다. 즉 이 기간은 플라톤이 디온의 초청으
로 시라쿠사를 방문한 기원전 367년 이후,
또는 디오니시오스 2세의 요청으로 시라쿠
사를 다시 방문했던 기원전 364년 이후에
『정치가』가 집필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
다. 앞의 시기의 정치적 실험도 실패로 끝
났지만, 기원전 364년의 마지막 방문은 정
말 치욕스러운 결과를 안겨주었다. 타라스
의 아르키테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감금 상
태조차 벗어나지 못했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학자들은 『정치가』가
‘참주’를 ‘철인 왕’으로 바꾸려던 기획
이 실패한 이후의 플라톤의 생각을 담고 있
다고 본다.

사실 플라톤은 『정치가』에서 ‘누가 다스
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새로운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에서는 ‘진정한
철학자’였다면, 『정치가』에서는 책의 제
목이 암시하듯 그의 대답은 ‘정치가’
(politikos)다. 특이한 것은 『국가』에서
상술된 ‘철인 왕’ 교육에 대한 특별한 언
급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통치자를 무
리의 우두머리로 받아들였던 그리스 사회
의 전통적 견해도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플라톤은 통치를 일종의 ‘기술’로, 그리
고 정치가를 씨실과 날실을 엮는 ‘베를 짜
는 사람’, 즉 공동체 구성원의 상이한 정
치적 이해를 조정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국가』와 비교할 때, 『정치가』에 나타
난 플라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
서 우리의 주의를 끈다. 첫째는 ‘정치적
지식’과 관련된 논의다. 『국가』에서 통
치를 위한 지식은 정치적 활동을 초월한 것
으로 규정된다. 반면 『정치가』에서 ‘정
치적 지식’은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됨으로
써 ‘통치에 필요한 기술’처럼 취급된다.
게다가 ‘정치적 지식’을 의사가 환자를
다룰 때 필요한 지식과 동일한 것처럼 말하
고, 정치가들 중에도 의사들 사이에서처럼
더 숙련된 전문가가 있다고 언급하는 것이
다. 물론 ‘지성’과의 결합을 강조함으로
써 ‘정치가’의 도덕적 품성을 강조하려
는 서술도 있다. 그러나 『국가』에서 보여
주었던 ‘정치적 지식’의 초월적이고 절대
적인 특성이 『정치가』에서는 상당히 완화
되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둘째는 철학자의 정치 참여와 관련된 논의
다. 『정치가』에서는 철학자가 정치에 참
여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말이 없다. 『국
가』와는 시작하는 질문부터가 다르다.
『국가』가 ‘올바름’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다면, 『정치가』는 무엇
이 ‘정치적 기술’인가로 시작한다. 그리
고 철학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는 당위도,
철학자가 정치에 참여하기를 꺼린다는 걱정
도 없다. 정치가가 통치에 최선을 다해야한
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정치적으로 탁월한
사람이 혹시 가지고 있을 도덕적 결함에 대
해서는 침묵한다. 철학자가 정치에 참여해
야할 필연성이 줄어든 만큼, ‘정치’와
‘철학’의 긴장도 그만큼 약화된 것이다.

[『법률』: 법의 지배와 최선의 정체]
『국가』와 『정치가』의 차이에서 볼 때,
플라톤의 가장 긴 저술이자 최후의 저작으
로 알려진 『법률』(BC 360)이 갖는 의미
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국가』에서 논의
되었던 ‘이상적인 정체’를 어떻게 실현하
느냐는 질문이 다시 등장한다는 점, 그리
고 법을 제정함에 있어서만큼은 철학자들
의 역할이 필수적인 것처럼 서술된다는 점
이 주목을 끈다. 한편으로 『정치가』보다
『국가』에 더 가까운 입장을 보인다는 측
면에서는 이상주의로의 회귀처럼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입법’이 정치 공동체
의 정치적 덕성과 도덕적 수준을 유지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부각됨으로써 『국가』의
‘이상적인 정치체제’와는 다른 ‘최선의
정체’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
다. 일종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흥미로
운 타협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에서 제시된 이상과 현실
의 조합을 ‘인치’로부터 ‘법치’로의 전
환, 또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
는 식으로 단순화하려는 견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법
률』의 ‘최선의 정체’도 이상적인 정치
체제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인 이
상 철학자들도 죽게 되고, 그들을 이어 통
치할 사람들이 그들과 같지 않을 수 있다
는 자각이 전제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
다. ‘공유’와 같은 극단적인 제도가 오
직 ‘신이나 신의 자녀들’에게만 가능한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사유’로 대체되
는 것도, 철인 왕이 될 사람도 그가 권력
을 잡는 경우도 드물다는 지적도, 계속적
인 철인 왕의 출현을 기대할 수 없다면 법
의 지배를 통해서라도 최선의 정체를 실현
하겠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법률』에서 플라톤
이 아테네 이방인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명예를 중시하는 정체’를 ‘이상적인 정
치 체제’로 전환시키는 것과 관련된 이야
기들은 매우 흥미롭다. 우선 ‘명예를 중시
하는 정체’가 부각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플라톤이 ‘절제’보다 ‘기개’를 중
시하는 집단이 통치하는 현실을 염두에 두
었다고 볼 수 있다. 철학자가 아니라 정치
가가 정체 변동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
하는 것처럼 기술한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
다. 또한 이상적인 도시로 제시된 마그네시
아(Magnesia)가 군주정적 요소와 민주정적
요소를 혼합한 형태라는 점도 유의할 필요
가 있다. 인민의 동의를 통해 능력이 있는
통치자를 선출하는 현대적 의미의 ‘선거’
에 내재된 정치적 원칙이 모습을 드러낸 것
이다.

『법률』을 통해 『국가』로부터 시작되었
던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에 대한 플라
톤의 정치 철학적 여정은 막을 내렸다. 표
면적으로 볼 때는 이상주의적인 『국가』로
부터 현실주의적인 『정치가』와 『법률』
로의 변화다. 그러나 아테네 민주정의 몰
락 이후, 플라톤이 당면했던 현실 정치의
문제를 ‘올바름’에 대한 성찰로 극복하려
는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자유’의 과잉
으로 민주정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지
적도, ‘기개’를 중시하는 집단의 정치적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도, 법
의 지배를 통해서라도 ‘최선의 정체’의
실현하려던 노력도, 이러한 의지의 표현이
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지가 없었다면, 플
라톤 이후 수많은 사상가들이 그의 정치 철
학에 대한 끝없는 찬사와 지속적인 비판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from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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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428/427 or 424/423 BCE Athens
[Died] 348/347 BCE (aged c. 80) Athens
[Nationality] Greek
[Era] Ancient philosophy
[Region] Western philosophy
[School] Platonism
[Main interests]
Rhetoric, art, literature,
epistemology, justice, virtue,
politics, education, family, militarism

[Notable ideas]
Theory of Forms, Platonic idealism,
Platonic realism, hyperuranion, metaxy
--------
Plato (428/427 or 424/423 BCE –
348/347 BCE) was a philosopher, as well
as mathematician, in Classical Greece,
and an influential figure in
philosophy, central in Western
philosophy. He was Socrates' student,
and founded the Academy in Athens, the
first institution of higher learning in
the Western world. Along with Socrates
and his most famous student, Aristotle,
Plato helped to lay the foundations of
Western philosophy and science.
Alfred North Whitehead once noted: "the
safest general characterization of the
European philosophical tradition is
that it consists of a series of
footnotes to Plato."

Plato's dialogues have been used to
teach a range of subjects, including
philosophy, logic, ethics, rhetoric,
religion and mathematics. His theory of
Forms began a unique perspective on
abstract objects, and led to a school
of thought called Platonism. Plato's
writings have been published in several
fashions; this has led to several
conventions regarding the naming and
referencing of Plato's texts.

(from wikipedia.org naver.com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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